한국일보>

양승준 기자

등록 : 2017.09.17 09:57
수정 : 2017.09.17 21:25

“좋은 노랜 좋은 마음에서”... 낮고 깊게 울린 조동진 추모

등록 : 2017.09.17 09:57
수정 : 2017.09.17 21:25

추모공연 ‘꿈의 작업2017...’ 열려

애초 후배와 함께 서려 했던 공연

한동준, 정혜선, 이규호, 소히 등

생전 꾸린 음악공동체들 모여

대표곡 부르며 고인 기리는 자리로

“끝까지 함께 노래하고 웃던 분”

가수 장필순이 16일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조동진 추모 공연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에서 고 조동진의 영상을 보며 고인이 남긴 ‘제비꽃’을 부르고 있다. 푸른곰팡이 제공

장필순이 되살린 주인 잃은 ‘제비꽃’

16일 오후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 적막이 흐르는 무대에 노란색 작은 전등 하나가 천장에서 내려왔다.

어둠을 가르는 불빛이 생명이 깃든 듯 영롱하다. 전등이 무대 중앙에 멈추자 스크린엔 가수 고 조동진이 노래하는 영상이 뜬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장필순은 조동진을 보며 고인이 남긴 ‘제비꽃’을 불렀다. 장필순이 그의 오랜 음악지기인 조동진에게 건네는 노래 같았다. ‘제비꽃’은 조동진에게 사연이 있는 곡이다. 조동진은 ‘제비꽃’의 구상을 해두고도 “좀 더 살아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본격적인 작업을 먼 훗날로 미뤘”(시집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ㆍ1991)다. 인간의 성장이 곡의 주제라, 이 생각을 충분히 곡에 녹여내고 싶어서였다. 조동진은 ‘제비꽃’을 서른여덟이 돼서야 세상에 내놨다. 그가 묵혀 냈던 곡을 지천명(50세)을 지난 장필순은 삶을 초탈한 목소리로 주인 잃은 ‘제비꽃’을 되살렸다.

가수 한동준은 16일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조동진 추모 공연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에서 '나뭇잎 사이로'를 부르다 결국 울먹였다. 푸른곰팡이 제공

“소리를 통한 공감과 교감이 기적”

조동진은 지난달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38년 동안 이어왔던 음악의 물줄기는 마르지 않았다. 한동준, 정혜선, 이규호, 소히 등 조동진이 꾸린 음악 공동체 ‘하나음악’과 ‘푸른곰팡이’에서 그와 함께 한 음악인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로 조동진의 이야기를 전했다. 방광암으로 투병하다 지난달 28일 세상을 떠난 조동진을 추모하는 공연 ‘꿈의 작업 2017-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에서다. 애초 조동진이 13년 만에 후배와 함께 설 공연이었지만, 갑작스런 그의 죽음으로 공연의 성격이 바뀌었다.

조동진은 곳곳에서 함께 했다. 공연은 조동진이 직접 찍은 바다 사진 등과 관객들에 띄운 편지로 시작됐다. “음악에 사명감이 주어졌다면 단 하루라도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조동진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그토록 더디게 노래한” 이유를 전하며 이날 만남을 통해 “경이롭고 고요한 세계”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꿈꿨다. 조동진이 후배들과의 무대를 준비하며 고민한 메시지였다.

후배들은 화려하지 않게 마음을 담아 공연을 꾸렸다. 오소영은 “형님(조동진)에게 꼭 들려드리고 싶었던 곡”이라며 ‘작은 배’를 불렀고, 고인의 여동생인 조동희는 ‘그’로 특별한 추모를 했다. 인도 전통 악기인 시타르 연주를 들려주겠다며 오빠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직접 시타르를 연주했다. “좋은 노래는 좋은 마음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조동진이 “좋은 소리는 꽃의 향기 같아 넓게 넓게 퍼져간다”라고 한 말처럼, 후배들의 음악은 낮은 울림으로 관객들을 향했다.

끝내 참았던 눈물은 공연 끝에 터졌다. 한동준은 ‘나뭇잎 사이로’를 울먹이며 불렀고, 정혜선은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를 합창하다 결국 눈물을 쏟았다. 한 여성 관객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앙코르 곡 ‘행복한 사람’이 흐르자 1,000여 관객들은 ‘LED 촛불’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했다.

이 무대는 조동희가 오빠를 잃은 슬픔에 빠질 겨를도 없이 바쁘게 준비한 공연이다. 조동진이 한 마지막 당부 때문이다. 조동희는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푸른곰팡이를 맡고 너무 힘들어 오빠한테 ‘하나음악을 어떻게 운영 했어’라고 물은 적이 있다”며 “그 때 세월이 맺어준 인연과 끝까지 같이 노래하고 웃으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세상에 나서는 걸 누구보다 꺼렸던 조동진이었지만, 그에게 ‘음악으로 더불어 사는 삶’은 일생의 화두였다. 그는 공연 마지막 관객들에 다음과 같은 인사를 하고 떠났다.

“소리를 통해 공감하고 교감하는 상황이 늘 저에겐 기적처럼 느껴져요.”

가수 조동진은 '태풍의 눈'을 좋아했다. "그 고요함은 내 슬픈 에로티시즘의 배경"(시집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이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마지막 이부자리에 놓인 시집과 ‘비움’

모든 가수가 누군가의 추억이 될 순 없다. 1979년 1집 ‘조동진’을 낸 고인이 시대의 흔적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음악으로 정서를 일깨운 힘”(가수 유희열)이 밑거름이 됐다.

조동진의 멜로디는 감미로웠고 세련됐으며, 노랫말은 시적이었다. 1970년대 주류를 이뤘던 저항적 포크와 달리, 그의 음악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다. 피난처에서 배급 받은 옥수수수제비로 끼니를 때운 또래 가수와는 표현 방식이 달랐다.

문학적인 가사는 조동진의 음악에 미감을 더했다. ‘제비꽃’에서 조동진은 ‘소녀’를 세 번 만난다. 볼 때마다 그는 달라져 있다. 처음에 만난 소녀는 ‘새처럼 날으고 싶어’라며 들떠 있지만, 다시 만났을 땐 많이 야위었다.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을 흘린다. 마지막에 본 그는 다행히 아주 평화롭다. 한밤중에도 깨어 있고 싶어한다. 열망, 좌절, 초탈. 제비꽃 소녀는 그렇게 성장한다. 우리의 사는 모습이기도 하다. 조동진은 소박하면서도 관조적인 노랫말로 인생을 긷는다.

이 깊이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조동희는 조동진을 “그림책 보다 세계명작을 끼고 살며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던 소년”으로 기억했다. 세월이 흘러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진 그의 마지막 이부자리 머리맡엔 시집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가 놓여 있었다. 비움에 관한 얘기들이 담긴, 노르웨이 시인 올라브 H. 하우게(1908~1994)의 작품이었다.

조동진의 음악엔 자연의 내음이 가득했다. 조동진은 벚꽃이 필 때면 금강 상류를 자주 찾았다고 한다. 그에게 자연은 창작의 요람이었다. 조동진은 눈(‘흰 눈이 하얗게’), 물(‘물을 보며’), 비(‘겨울비’), 바람(‘바람 부는 길’)을 마주하며 창작의 빈 잔을 채웠다. 늘 같은 자리에 순환하며 더불어 사는 자연에 대한 동경이었을까. 칠순을 앞둔 지난해 ‘나무’(유작 ‘나무가 되어’)가 되길 꿈꿨던 그는 그렇게 음악의 숲이 돼 떠났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가수 조동진이 병상에 누워 마지막에 읽은 책은 시집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였다. 고인의 여동생 조동희는 "시집을 보고 오빠의 노랫말이 떠올랐다"며 "인생을 잘 정리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건넨 선물"이라고 말했다. 푸른곰팡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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