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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두면 그만인 자리

입력
2014.10.0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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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취임 이후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거의 전 분야를 망라한 정책들을 쏟아냈다.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며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인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혹평이 다수다. 나라 재정이야 어찌되든 당장 경기만 띄우면 된다는 속내가 고스란하단 거다. 사진은 지난 8월 개최된 제47차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는 최 부총리.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7월 취임 이후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거의 전 분야를 망라한 정책들을 쏟아냈다.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며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인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혹평이 다수다. 나라 재정이야 어찌되든 당장 경기만 띄우면 된다는 속내가 고스란하단 거다. 사진은 지난 8월 개최된 제47차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는 최 부총리.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책 결정은 권력 행사다. 책임이 따르는 이유다. 문제는 괴리다. 세금은 국민 돈이다. 환멸은 환상 뒤에 온다. 그 틈으로 부담이 흘러간다. 공직은 그만두면 그만인 자리가 아니다.

“‘변양호 신드롬’이란 걸 들어봤을 것이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시비에 휘말려 구속된 이후 공무원들이 논쟁적인 사안이나 책임질만한 결정을 회피하고 납작 엎드리게 된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4년이 훨씬 넘는 긴 법적 공방 끝에 그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신드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 그런데, 요즘 들어 ‘변양호 신드롬’보다 더 무서운 건 그 반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정책 당국자로서 법적인 책임은 물론 도의적인 책임조차도 안중에 없이 독단과 독선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인데,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역(逆) 변양호 신드롬’ 쯤으로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변양호 신드롬’은 공무원들이 책임질 일을 아무 것도 안 하면서 문제를 부르지만, ‘역 변양호 신드롬’은 책임지지도 못할 엄청난 일만 벌려놓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이니 어찌 보면 그 피해가 훨씬 더 막대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그런 사례들을 목도하고 있다. 경고등이 연신 깜박대는 나라 재정이 그렇다. 해마다 10조원 가까운 세수 펑크가 발생하고 재정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그 근원을 따져 올라가 보면 거기엔 MB 정부의 부자 감세가 있다. (…) 내리기는 쉬워도 올리는 건 너무너무 힘든 게 세금이다. 그래서 당시의 부자 감세 정책은 우리 경제의 발목을 두고두고 잡게 될 것임에도 어느 누구도 반성하거나 사과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국민들이 그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고 떠민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쪼갰다 붙이기도 마찬가지다. MB 정부에서 산업은행을 민영화하겠다며 산은금융지주-산업은행-정책금융공사로 갈갈이 쪼개놓더니, 불과 4년 만에 민영화는 백지화되고 다시 하나로 붙이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수천억원의 헛돈과 헛시간이 낭비된 건 물론이다. 그런데도 당시 산업은행 분리를 주도했던 한 인사는 요즘 너무나 태연하게 연예인 뺨 칠 정도로 케이블TV를 종횡무진 누비며 활약하고 있을 뿐이다. 예측하지 못한 실패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 그런 것까지 모두 책임지라고 한다면 ‘변양호 신드롬’이 더 횡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자 감세나 산업은행 민영화 모두 당시 상당히 거센 반발이 있었던 사안이었다. 그때는 온갖 논리를 들이대며 정면 돌파하더니, 반대론자들의 주장이 현실화된 지금은 입을 싹 닫는 게 용인되는 현실이 이상할 뿐이다. 현재의 정책 당국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면”이라는 미명 아래 불도저 식으로 각종 정책을 쏟아내는 걸 보면서 불안감은 점점 더 커진다. 이제 이 정부에게 남은 시간은 3년여. “어차피 부작용이 생기더라도 그건 다음 정부의 몫”이라는 생각으로 밀어 붙이는 정책은 정말 없는지 자문해 봤으면 한다.”

-역(逆) 변양호 신드롬(한국일보 ‘편집국에서’ㆍ이영태 경제부장) ☞ 전문 보기

“지난 2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한 패널이 최경환 경제부총리에게 물었다. “2016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박근혜 정부에서 계속 일하는 게 어떤가.” 최 부총리의 답변은 애매했다. “평생 일하는 공직은 없다. 공직은 그만두기 위해 있는 자리다. 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하루를 하더라도 경제를 살리는 게 제 소임이다.” 최 부총리는 3선의 국회의원(새누리당 경북 경산-청도)이다. 지금도 거물이지만 2016년 총선에서 당선되면 정치권의 더 큰 인물이 될 수 있다. (…) 최 부총리는 지난 7월 취임 이후 불철주야 뛰고 있다. (…) 그런데 아쉽다. 점보기가 뜨려면 좌우의 엔진이 같이 불을 뿜어야 한다. 왼쪽 엔진(단기 부양)을 최고치로 가동했는데, 오른쪽 엔진(경제 체질개선)이 꺼졌다면 점보기는 뜰 수 없다. 최 부총리 경제팀의 처방을 보면 강력한 스테로이드제만 곳곳에 투여하고 정작 필요한 체력증진 방안에는 소홀하다는 느낌이다. 부동산부터 불을 질렀다. (…) 이게 오래갈까. 부정적이다. (…) 그런데 최경환 경제팀은 빚 내서 집 사라고 부추긴다. (…) 요즘은 뜬금없이 증시부양 하겠다고 한다. (…) 10여 년 전 이미 관 속으로 들어간 이 단어가 다시 살아나니 참 역설적이다. 이렇게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정책의 배경에는 ‘정치인 최경환’이 있다고 본다. 그는 여권의 대권 후보군에도 올라 있다. (…) 그의 부하인 공무원들이 최 부총리의 다음 자리를 생각할 테고, 거기에 맞춰 눈앞 실적만 챙기는 정책으로 보좌할 공산이 크다. 목표는 단 하나, 2016년 4월 총선 전까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경기를 띄우자는 것일 게다. 이렇게 분칠한 경제, 건강해질 리 없다.”

-국회의원 최경환, 경제부총리 최경환(중앙일보 ‘노트북을 열며’ㆍ김종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 전문 보기

돈 나고 사람 난 게 아닐 텐데. 뒤집힌 세상이다. 목숨을 보태주고 죗값은 깎아주는 게 돈이다. 시장이 잠식하는 건 공동체다. 타인은 경쟁 상대일 뿐이다. 도덕은 사치로 전락한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모든 것이 거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첫 줄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장의 시대’라는 지난 30여년이 유난했다면 사고파는 논리가 물질적 재화에만 적용되지 않고 삶 전체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 샌델은 묻는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돈의 논리가 작용하지 말아야 하는 영역은 무엇일까?” (…)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2일 관훈토론회에서 “외국인 환자를 유치해서 돈을 벌자는 것인데 ‘의료 민영화’니 ‘의료 영리화’니 한다”며 “왜 이런 것들이 이념적인 논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하지만 외국인 영리병원을 그렇게 간단히 봐도 좋을까? 돈이 많건 적건 병원 복도에서 지켜지던 ‘선착순’의 줄서기 윤리가 ‘돈을 낸 만큼 얻는다’는 시장논리로 대체되는 큰 변화의 서곡이 아닐까? 미국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의사가 연간 최고 2만5000달러나 하는 연회비를 내는 환자들에게만 진료 예약이 가능한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기도 한다. (…) 법을 위반해 형을 살고 있는 기업인을 가석방·사면해주자는 얘기도 거래 관계를 법적 정의의 영역으로 확장한 것이다. (…)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믿음을 이렇게 투자와 감형의 거래 관계로 치환해도 되는 것일까?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세월호와 같은 시대적 비극조차 이런 거래적 사고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이다. “이제 세월호 이야기는 그만하자”는 사람들은 “경제도 어려운데…”라는 이유를 댄다. (…) 시장은 교환가치 이외의 가치판단을 배제하지만, 우리는 ‘시장의 도덕적 한계’에 대한 토론을 너무 자주 생략한다. 이래서는 한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한겨레 ‘편집국에서’ㆍ이봉현 경제ㆍ국제 에디터) ☞ 전문 보기

“인류문명의 진화는 따지고 보면 ‘우리’의 범위를 넓혀 온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신 앞에 평등한 개인’으로부터 출발한 서구사회에서 건강한 공동체의 형성이 쉬웠던 데 비해 동양 사회는 아무래도 불리했던 듯싶다. 조선시대, 양반과 상놈의 구별이 엄격했던 당시에 성립될 수 있었던 ‘우리’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우리’의 범위를 한껏 넓히면 사해동포주의를 넘어 동물보호, 아마존 원시림 지키기 운동에까지 이르게 된다. (…) 지구별을 잠시 접수한 종(種)일 뿐인 인간은 범고래와 꽃과 나무들에게도 생존의 권리를 보장하는 동물해방론이나 식물복지론을 껴안아야 한다. 반면 ‘우리’의 범위를 극한으로 좁히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이때는 오로지 최소 단위의 가족 외의 모든 공동체는 와해되고 총칼을 지닌 자들만으로 동아리가 성립된다. 그들 외의 누구라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며, 극악한 경우 자칫 집단 희생의 제물이 되기 십상이다. 살아남은 이들 역시 최소한의 우리, 즉 가족을 지킬 뿐인데 그나마 온전한 모양을 갖출 수 없을 것이다. (…) 요즈음 ‘대한민국’이라는 네 음절은 자주 듣는 데 반해 ‘우리나라’라는 단어는 듣기 힘든 것 같다. 그만큼이나 우리의 ‘우리’는 심각하게 해체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당국이 ‘카톡’을 들여다본다 하여 집단 사이버 망명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지금, 최소한 시위 군중들을 상대로 하는 ‘사진 채증’만이라도 그만두길 권하고 싶다. 그러한 행위는 마치 저 군중이 ‘우리’가 아니라는 선언과도 같으니 말이다. 셔터가 방아쇠 아니기에 망정이지.”

-요즘 듣기 힘든 말 ‘우리나라’(중앙일보 ‘서소문 포럼’ㆍ정재숙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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