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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어 부스럼 된 걸개그림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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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어 부스럼 된 걸개그림 소동

입력
2014.08.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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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담의 '세월오월' 전시 유보되자

朴대통령 모습 닭으로 수정해 개막식 날 미술관 앞서 게릴라 전시

보수단체들은 명예훼손 고소 맞불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개막식

축사ㆍ인사말도 없이 5분 만에 끝내

전시 총괄 책임 큐레이터는 사퇴

걸개그림 ‘세월오월’은 전시가 유보됨에 따라 8일 개막식 시간에 광주시립미술관 입구 계단에 게릴라 전시로 펼쳐졌다. 뉴시스
걸개그림 ‘세월오월’은 전시가 유보됨에 따라 8일 개막식 시간에 광주시립미술관 입구 계단에 게릴라 전시로 펼쳐졌다. 뉴시스

전시는 유보됐고 작가는 고발 당했다. 특별전을 총괄해온 윤범모 책임 큐레이터는 10일 전시 파행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광주비엔날레 창설 20주년 특별전의 하이라이트로 8일 개막식에서 선보이려던 대형 걸개그림 ‘세월오월’은 특별전 장소인 광주시립미술관에 걸리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조종하는 허수아비로 묘사한 것이 논란이 되자 작가 홍성담은 이 부분을 닭 그림으로 수정해 제출했지만 전시는 유보됐고 보수단체들은 작가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사퇴 성명에서 윤 큐레이터는 “완성작은 문제가 된 특정인이 없기 때문에 전시하지 않을 명분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며 “예술 표현의 자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며 그것을 지키는 것이 광주정신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걸개그림 논란에 개막식은 간단히 국악 공연만 하고 5분 만에 끝났다. 축사를 하기로 했던 윤장현 광주시장은 오지 않았고 이용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의 인사말도 생략됐다. 대신 미술관 밖에서 벌어진 풍경이 개막식을 압도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가로 10.5m 세로 2.5m의 이 그림을 확대한 프린트 천이 미술관 입구 계단을 덮었다. 본래 원본은 로비에, 확대본은 미술관 외벽에 설치될 예정이었다. 계획에 없던 게릴라성 전시 퍼포먼스를 마친 참가자들은 그림을 둘둘 말아 보따리에 싸서 떠났다. 모든 관심이 걸개그림에 쏠리는 바람에 북적여야 할 전시장은 많지 않은 관객만 남아 썰렁하게 개막 첫날을 보냈다.

특별전 개막 이틀 전인 6일 전시 불허 방침을 밝혔던 광주시는 예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이 일자 “전시 여부는 비엔날레 재단이 결정할 문제”라며 공을 떠넘겼다. 이에 담당 큐레이터 4명은 이틀간 계속 회의를 했지만 의견 조율에 실패, 결국 전시를 유보했다.

이 그림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풍자는 전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중심은 광주정신을 상징하는 광주민주항쟁 시민군과 주먹밥 나눠주는 어머니가 침몰한 세월호를 번쩍 들어올려 배 안에 갇힌 이들을 모두 구해내는 장면이다. 하지만 논란의 와중에 광주정신의 승화와 치유라는 주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뜻밖의 소득도 있다. 보수단체들은 작가를 고발함으로써 탄압받는 예술, 저항하는 예술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 일조했다. 덕분에 작품성에 대한 평가나 호불호와는 무관하게 작가와 작품이 스타가 됐다. 미술평론가 임근준은 “예술적 직관력이나 풍자의 수준이 높은 작품이라고는 보지 않지만, 보수단체들이 작가를 고발하는 것을 보고 이 그림처럼 직설적이고 거친 풍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전근대적 사고에 사로잡힌 채 지금도 박정희 시대를 사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며 “민중미술의 시대는 끝났다고 여겼는데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보수단체들은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이명박, 전두환 두 대통령도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예술을 빙자한 정치 선동이자 패륜’이라고 비난했다.

이번 소동은 긁어 부스럼을 만든 셈이다. 작품을 수정하라는 광주시의 요구에 작가는 더 센 조롱으로 대응했다. 대통령 그림을 허수아비에서 닭으로 바꾼 작가는 닭이 고통받는 민중을 상징한다고 설명했지만 그렇게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개막식 날 미술관이 있는 공원에 산책 나왔다가 이 그림을 본 동네 주민의 해석이 더 정확해 보인다. “박 대통령 별명이 닭이잖어. (고친 게) 더 잘했구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계급장을 떼라는 요구도 반발만 샀다. 작가는 원래 그렸던 군인 모자의 별 두 개를 일본 황실의 상징인 국화 문양으로 고쳐 박 전 대통령이 일본군 장교 출신임을 환기시켰다.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11일 다시 회의를 열어 이 그림의 전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국비 지원을 받아 행사를 치르는 재단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전시를 하면 보수단체가, 안 하기로 하면 예술계가 반발할 게 뻔해 이래저래 난처한 시험대에 올랐다.

광주=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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