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행보에 직ㆍ간접 도움 요청한 듯
“내년 1월에 뵙겠다” 예방 뜻 피력
공적 통신 수단, 사적 활용은 논란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충청권의 맹주였던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에게 서신을 보내, 내년을 기약하며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사무총장 임기종료 이후 ‘충청 대망론’을 등에 업고 대권행보에 나서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풀이된다.
20일 김 전 총리의 핵심 측근에 따르면, 지난 5월 28일 김 전 총리의 서울 신당동 자택을 예방했던 반 총장은 최근 친필 서신을 보내왔다. 서신에는 지난 5월 예방 때 김 전 총리와 함께 찍은 사진도 동봉했다.
서신에서 반 총장은 “지난 방문 때 정말 감사했다”며 “내년 1월에 뵙겠다”고 적어 유엔 사무총장 임기가 끝난 뒤 김 전 총리를 다시 예방할 뜻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반 총장은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계속해 지도편달을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정치권에선 반 총장이 차후 대권행보에 김 전 총리의 직ㆍ간접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보고 있다. 충청 출신인 반 총장이 충청 대망론 바람을 일으키려면 충청권의 상징적 정치인인 김 전 총리의 지지가 절대 필요한 상황이다.
반 총장은 이 서신을 우리 외교부의 외교행낭(파우치)을 통해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대권행보와 관련한 사신(私信)을 극비리에 전달하려 한 의중이 읽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반 총장이 외교행낭으로 서한을 보냈다면 공적 외교통신 수단을 사적으로 활용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행낭은 본부와 재외공관간 비밀문서를 비롯한 공문서 및 공용물품을 운송하는 통신수단으로서,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따라 주재국 정부나 제3국이 이를 들여다 볼 수 없는 특권이 보장돼 있다. 외교부의 운영지침을 보면, 행낭 내용물은 업무수행상 공문서, 보안유지가 필요한 서신 등 공용으로 제한된다. 또, 담당관과 확인관, 취급자를 지정해 행낭문서목록표를 작성하고 확인ㆍ감독하도록 하는 등 외교행낭의 관리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반 총장이 김 전 총리에게 보낸 서한은 올해 작성된 외교부 행낭문서목록표에는 기록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문제의 반 총장 서한이 외교행낭으로 전달됐는지 알 수 없다”면서도 “다만 반 총장이 국내 인사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요구하는 각종 메시지 등을 외교행낭을 통해 전달해온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를 사적인 업무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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