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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ㆍ출신ㆍ사진… 요란한 스펙 가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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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ㆍ출신ㆍ사진… 요란한 스펙 가렸지만

입력
2017.07.0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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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ㆍ학점 등 기재도 없애

불공정 요소 배제시켜

“실력만 평가 취지 공감” 여론 속

각종 편법 동원될 소지에

“필기 시험 난이도 높이거나

면접전형 세분화 할 수밖에

일부 현장에선 볼멘소리

이성기(왼쪽) 고용노동부 차관이 5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룸에서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도입'관련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이성기(왼쪽) 고용노동부 차관이 5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룸에서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도입'관련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정부가 이달부터 공공부문에 출신지와 가족, 신체조건 등 인적사항과 학력과 성적 등 스펙, 그리고 사진을 배제한 채 입사 전형을 치르는 ‘블라인드 채용’을 전면 도입한다. 평가의 불공정 요소 논란을 빚었던 요소들을 배제하고 실력만을 평가하자는 취지에는 대부분 공감을 하지만, 일선에서는 “도대체 뭘 보고 뽑으란 말이냐”는 불만도 적지않다. 각종 편법이 횡행할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갖고 전국 332개 공공기관은 이 달 가이드라인 배포 후부터, 149개 지방 공기업은 인사담당자 교육 후인 8월부터 ‘블라인드 채용’을 시행하기로 했다. 이번 시행안은 지난달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서 지시한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에 대한 후속 조치다.

고용노동부가 이날 공개한 예시 입사지원서를 보면 ‘인적사항’ 란에는 성명, 주소, 연락처, 이메일 등만 기재하게 된다. 키, 몸무게 등 신체조건이나 출신지, 가족관계 등을 적는 칸은 없다. 학력도 마찬가지다.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 전공은 뭔지, 학위가 뭔지, 심지어 학점은 얼마인지도 기재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특정 조건을 요구하는 일부 직무에는 예외가 적용된다. 예를 들어 보안 업무를 담당하는 특수경비직처럼 우수한 시력 등 우수한 신체 조건이 필수인 경우 입사지원서에 시력란을 만들 수 있다. 학문적 배경 지식이 요구되는 연구직에도 학위나 관련 논문을 기재할 수 있을 전망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공무원 시험처럼 서류만 접수하면 모두가 필기시험을 볼 수 있는 경우에는 본인 확인을 위해 입사지원서에 사진도 부착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인재 채용할당제 적용 대상자의 경우에는 ‘최종학교 소재지’를 적을 수 있다.

대신 지원서는 직무 관련 항목에 초점을 맞춘다. 채용 공고 때 각 기관은 해당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기술과 지식 등을 사전에 공개하고 지원자는 지원서 ‘교육사항’ 항목에 이와 관련된 학교교육이나 직업훈련에서 배운 교과목, 교육과정 등을 적어낼 수 있다. 기존처럼 자격사항(국가기술ㆍ전문자격 등)과 경험 또는 경력사항(인턴ㆍ동아리ㆍ대외활동 등)을 적어내는 항목은 유지된다. 이성기 고용부 차관은 “청년들이 똑 같은 출발선에서 실력으로 경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번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블라인드 채용’은 서류는 물론 최종 면접에도 유지된다. 최고위 임원들을 포함해 모든 면접위원들은 서류 심사 시 제출됐던 지원서, 자기소개서와 함께 면접 평가서 등을 받을 수 있지만 여기에는 지원자의 인적사항 정보가 포함돼서는 안 된다. 아울러 면접자는 블라인드 채용 관련 사전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며 지원자에게 인적사항에 대한 질문도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결혼계획을 묻는 것도 기혼 여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금지 질문에 해당된다.

블라인드 채용은 공공기관ㆍ공기업을 시작으로 공무원, 민간 부문에도 확대 적용될 계획이다. 중앙부처 및 지자체 경력채용에서 활용될 ‘경력채용 부문별 표준화 방안’을 마련해 하반기 경력채용 시험부터 모든 행정기관에서 표준화된 서류 양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아울러 공공부문 경과를 지켜보면서 민간 기업에 필요한 가이드북 배포 및 컨설팅 지원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공공부문에 적용된 것과 같이 인적사항 기재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도 추진할 계획이다.

현장에서는 우려도 상당하다. 이미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기반 채용을 도입하고 있는 상당수 공공기관들은 “지금까지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일각에선 “현실적으로 제대로 된 평가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다 보니 편법이 작용할 요소도 다분하다. 예를 들어, 입사지원서 외 자기소개서에서 ‘OO지역 한 대학을 졸업하고…’라고 명시하거나 특정 대학에만 존재하는 동아리 등을 언급하는 등 지원자가 은근히 자신의 출신지나 학력 등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면접관들 역시 얼마든 이런 편법을 동원할 소지가 있다.

더 큰 문제는 민간기업이다. 기존 서류 심사의 한 척도였던 학력을 대신할 평가 요소를 놓고 고민이 깊다. 지난해 하반기 2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한 중소기업의 인사담당자 A씨는 “비슷한 지원자가 많아 학력과 자기소개서 등으로 1차 필기까지 10배수를 뽑았지만 앞으로 뾰족한 대안이 없으면 필기 시험 난이도를 높이거나 면접 전형을 세분화해 지원자를 거를 수밖에 없다”라며 “이렇게 되면 기업은 면접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지원자도 복잡해지는 전형에 지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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