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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교육에 올인하는 부모.. 아이는 사랑이라 안 느껴"

입력
2017.04.0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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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경진 기자 jinjin@hankookilbo.com
일러스트 김경진 기자 jinjin@hankookilbo.com

스물 두 살 된 딸이 방에만 처박혀 지낸 지 5년째예요. 은둔형 외톨이라고 하나요. 방에서 컴퓨터만 들여다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집에 식구들이 없을 때만 나와서 씻고 밥을 먹습니다. 만나거나 연락하는 친구도 전혀 없어요.

딸은 엄마인 저를 특히 미워하고 거부합니다. 제 발소리만 들려도 불안하고 두렵다고 해요. 제가 아이를 너무 강압적으로 키워서 그런 것 같네요. 딸은 중학생 때 영재원에 다닐 정도로 공부를 잘했어요. 과학고에 가서 물리학자가 되겠다고 하길래 딸을 밀어 붙였어요. 과학고 진학에 실패한 뒤 딸은 심한 우울증을 앓았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휴학하고 나서 내내 저렇게 지냅니다.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도 시켜 봤지만 나아지지 않네요.

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공부를 제대로 못했어요. 딸에게는 다른 인생을 열어주고 싶었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딸의 모든 것을 통제했어요. 친구 관계부터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 휴대폰을 쓰는 시간까지요. 제가 입시 학원을 운영했기 때문에 교육을 잘 안다고 생각했어요. 딸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 심하게 혼냈습니다. 때리기도 하고 집에서 쫓아내기도 했어요. 딸은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속상하다고 했지만, 충분히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다그쳤어요. 그러면서 책상에 더 오래 앉아 있게 했어요.

딸은 저를 원망했습니다. 제가 자신을 한 번도 믿어주지 않았다고, 삶의 의욕을 꺾었다고 했어요. 저를 기쁘게 해주려고 과학을 좋아하는 척 했다네요. 그런데 저는 딸이 과학을 정말 좋아한다고 믿었거든요.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게 엄마로서 당연히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딸이 잘 되길 바란 것뿐이잖아요. 그런데 딸은 왜 엄마 마음을 몰라 줄까요. 아이를 격려하고 다독이는 엄마가 됐어야 한다고 후회하는 마음과 딸에게 서운한 마음이 엇갈리네요.

딸은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갈 때만 외출합니다. 혼자 다녀요. ‘상담을 받고 있으니 나를 건드리지 말라’고 제게 시위하는 것 같아요. 딸은 상담에서 “이제라도 뭘 다시 시작하려고 해도 엄마가 또 통제하고 억압할까 두렵다”고 한다고 해요. 저는 그렇게 나쁜 엄마인가요? 딸은 저를 왜 그렇게 미워할까요? 딸이 세상으로 나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영선씨ㆍ가명, 48세, 입시 학원 운영)

“부모는 자식을 사랑합니다. 부모와 자식은 본능적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영선씨도 딸을 사랑했습니다. 영선씨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한과 아픔을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지요. 딸을 사랑한 그 마음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거예요.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 공부에 ‘올인’ 합니다. 자기 인생을 포기하다시피 하면서까지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허리띠를 졸라 매면서 사교육을 시킵니다. 참 안타까운 건, 그렇게 키운 많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상처받았다고 느낀다는 겁니다. 부모가 나를 괴롭혔다고 생각하고, 부모가 버겁고 원망스럽게 여겨지고, 능력만 되면 부모 없이 혼자 살고 싶어 해요. 부모도 자식도 억울한 상황이지요. 그 극단적 사례가 영선씨 가족입니다.

부모가 주는 사랑과 자식이 받아들이는 사랑은 다릅니다. 부모는 사랑을 줬다고 생각하는데 자식은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기도 해요. 왜일까요. 부모는 아이를 언제나 완벽하게 이해하고 편안하게 해줄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서운하고 억울하게도 하지요.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굳게 믿고 있다면, 조금 섭섭한 일이 있어도 잘 넘길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믿음이 없는 아이들은 부모가 조금만 섭섭하게 해도 크게 분노해요. 부모를 공격자라고 생각합니다. 영선씨 딸 역시 엄마의 사랑을 믿고 신뢰하지 못했던 거예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아동기까지는 아이와 부모가 친하게 지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추억을 만들고 경험을 공유하며 친해져야 아이에게 부모의 사랑에 대한 신뢰가 생겨요. 함께하는 시간은 ‘양’만 중요한 건 아니에요.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따뜻하게 대화하고 생활을 친밀하게 공유하면 돼요. 반대로 아이가 중ㆍ고등학교에 가면 부모와 멀어져야 합니다. 사이가 나빠져야 한다는 게 아니라 정서적 거리를 둬야 한다는 뜻이에요. 아이와 생각이 달라도 일단 지켜봐 주고 지나치게 통제하거나 개입해선 안돼요.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거꾸로 합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친할 기회는 갖지 않다가 중ㆍ고교 때는 공부 문제로 아이와 딱 붙어버립니다.

왜 그럴까요. 부모들이 아이와 공부로만 상호작용하려 하기 때문이에요. 어린 아이는 뭘 가르쳐주면 넙죽넙죽 잘 받아 먹어요. 공부하면서 엄마와 즐겁게 상호작용 할 수 있어요. 아이는 실은 뭘 배워서 즐겁다기보다는 엄마가 잘했다고 칭찬하는 걸 좋아하는 거예요. 엄마는 아이의 그런 모습에 고무돼서 교육에 가속도를 내지요.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만 돼도 공부를 놓고 항상 즐거운 상호작용만 할 수는 없어요. 학습 내용이 많아지고 어려워지니까요. 아주 똑똑한 아이이거나, 이전까지 아이와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작용 해왔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요. 하지만 부모와 아이가 오직 공부로 상호작용하는 관계였다면, 그 때부터 즐겁게 상호작용할 길이 아예 막혀버리는 겁니다. 아이가 공부에도 흥미를 잃고 부모와 대화도 끊기겠지요.

영선씨는 공부로만 딸과 상호작용하려 한 엄마입니다. 영선씨는 딸에게 뭘 가르쳐 주려고 했나요? 과학고에 합격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전문가가 돼서 밥벌이 잘 하는 사람으로 딸을 키우려 했나요? 그러면 딸이 마냥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나요? 그건 착각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건 인간답게 사는 방법과 스스로 행복한 인생을 택하는 방법입니다. 인간답다는 건 타인을 이해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겁니다. 또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문제들을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사람이 돼야 행복해질 수 있어요. 공부라는 건 수없이 틀리고 다시 배우면서 하는 겁니다. 열 개 중에 아홉 개를 틀려도 하나를 아는 과정을 통해 자신에 대한 신뢰와 효능감이 만들어집니다. 꼴찌를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길러 주면 돼요. 공부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아이들에게 가르쳐 줘야 합니다.

하지만 영선씨는 딸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딸에게 영선씨는 너무나 침습적이고 자신을 통제하려고만 하는 공포스러운 공격자였습니다. 나를 보호하고 사랑해 줘야 하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아이가 어려움을 느끼면 타인들과의 관계도 두려워하게 됩니다. 부모는 세상을 보는 창이니까요. 영선씨 딸의 인생이 가엾다고 말할 수밖에 없네요. 딸은 그저 상처를 받은 수준이 아닙니다. 누가 꽉 밟아서 찌그러뜨린 깡통 같은 처지가 됐어요. 딸을 몰아 붙이지 않고 내버려 뒀다면 과학고에 가지 못했더라도 건강하게 살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딸이 지속적으로 상담을 받고 있다면 다행입니다. 딸이 영선씨에게 시위하려고 상담 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상담자가 정서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만나러 가는 겁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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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씨, 이 세상에 나쁜 엄마는 없어요. 그러나 영선씨가 딸을 사랑했다고 해서 영선씨가 택한 교육 방법이 전부 옳은 것은 아닙니다. 부모는 때로 자식에게 해가 될 수 있어요. 자식에 대한 사랑에 눈이 멀어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어떻게 해도 괜찮다고 착각할 때 해가 되는 겁니다.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불편한 진실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영선씨는 딸에게 해가 되는 엄마였어요. 영선씨를 탓하거나 가슴 아프게 하려는 말이 아니에요. 그걸 진심으로 인정해야 딸도, 영선씨와 딸의 관계도 달라질 수 있기에 하는 말입니다.

영선씨 딸은 엄마가 자기 인생을 또 다시 침범하고 좌지우지할까 두려워하고 있어요. 그 불안이 확장돼서 세상을 향해 견고한 방어의 담장을 쌓았어요. 딸을 달라지게 하고 싶다면, 영선씨 행동이 딸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부터 인정하세요. 그리고 영선씨가 다시는 딸의 인생을 억압하지 않는 안전한 사람이라는 걸 분명히 확인시켜 줘야 합니다. ‘방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 운동이라도 해라’ 같은 말에도 아이는 엄청난 반감을 느낄 겁니다.

딸에게 이렇게 말해 주세요. ‘네가 엄마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 엄마가 눈이 멀었었다. 진심으로 미안하다. 엄마는 이제 다른 것을 바라지 않아. 네가 엄마 딸로 이렇게 살아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네가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 그게 엄마가 원하는 전부란다.’ 그게 시작입니다.

그리고 아이와 공부만으로 상호작용하는 다른 부모님들께도 말씀 드리고 싶어요. 아이들을 공부로 고문하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특히 과학고나 영재고 같은 특목고에 가지 못하면 아이 인생이 실패하는 것처럼 겁 주는 어른들이 제발 정신 차려야 합니다. 아이들이 공부는 잘할지 몰라도, 아직 여리고 취약한 존재라는 걸 부디 명심하세요.”

취재ㆍ정리=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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