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적인 전통사회는 여성에게 억압적이었죠. 이 책에 담긴 여성들의 사연은 참으로 기구합니다. 남편 죽고, 애를 잃고, 버려지고. 그 와중에 깨달음을 얻은 얘기다 보니 정말 감동적입니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도 이 책에서 많은 위로를 얻었다고 합니다.”
초기 불교 원전 번역 작업을 선보여온 전재성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회장이 27일 ‘테라가타 - 장로게경’ ‘테리가타 – 장로니게경’ 두 권을 새롭게 내놨다. 두 책은 부처님의 최초 제자들인 비구 260여명과 비구니 100여명이 깨달음에 대해 부른 노래를 모은 것이다. 비구들의 기록인 테라가타는 1,300여쪽, 비구니들의 기록인 테리가타는 600여쪽에 이른다.
두 문건은 부처 사후인 기원전 6세기경에 완성된 뒤 기원전 3세기 아소카왕 시절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즈음 주석도 한층 더 보강됐을 것으로 본다. 전 회장은 “그간 일정 부분 번역은 있었으나 본문 완역에다 그 뒤에 붙은 주석까지 모두 다 번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책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부처 제자들의 인간적 얼굴을 볼 수 있다. 가령 테라가타에는 부처의 법통을 이었다는 제1제자 마하 갓싸빠(우리나라엔 한역음 ‘마하가섭’으로 통용)의 시가 50여편 실려 있다. 주석에는 그의 전 생애가 10여쪽에 걸쳐 정리되어 있다. 전 회장은 “다른 경전들을 보면 마하 갓싸빠는 원리원칙에 충실하고 고행을 중시하는 완고한 사람으로 비춰지는데 테라가타를 읽어보면 아주 자애롭고 여린, 서정시도 잘 쓰는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고 말했다.
제자들의 출가, 수행, 좌절, 번민이 고스란히 다 드러난 것도 장점이다. 쌉빠다싸는 “집을 떠나 출가한 지 나는 이십오 년이 되었으나 손가락 튕기는 순간만큼도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쌉빠다싸는 그냥 죽어버리려다 마지막에 가서야 깨달음을 얻는다. 전 회장은 “다른 시대, 다른 지역 게송에서는 찾기 어려운, 종교인만 보여줄 수 있는 ‘실존적 치열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며 “어떻게 보면 ‘말씀’이 아니라 ‘생애’로 접근했기 때문에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들의 기록인 테리가타에는 오늘날 여전히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이 공감할 부분이 여럿이다. 이는 여성을 집안의 도구쯤으로 생각하던 당시 사회에서 수행에는 남녀차별이 없다고 한 부처에게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몰려들었는지, 그리고 여성들이 자신들의 삶을 두고 얼마나 고민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오늘날 알쏭달쏭한 화두를 붙잡고 깨달음을 구하는 간화선의 압도적 권위로 인해 깨달음 자체가 너무 추상적이고 권위적으로 변하고 있는 세태를 되돌아보게도 한다. “그야말로 일반 신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성공과 실패담들이 담겨 있는 게 바로 이 책이에요. 수행이나 깨달음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전 회장의 희망사항이다.
글·사진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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