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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성 기자

등록 : 2017.03.17 04:40

다윈도 보지 못한 새로운 종의 탄생... 진화, 그 순간을 목격하다

[리뷰] 조너선 와이너 ‘핀치의 부리’

등록 : 2017.03.17 04:40

‘종의 기원’ 증거를 찾기 위해

갈라파고스 제도에 들어간 부부

작은 새 핀치 40여년 연구하며

이종교배로 태어난 새 種 보고

갈라파고스 제도의 작은 새 핀치. 다윈은 갈라파고스를 자기 "세계관의 기원"이라 불렀지만, 정작 핀치의 부리가 보여주는 다양한 변이가 지닌 의미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다윈의 빈 공백을 그랜트 부부는 40여년의 현장 조사로 메웠다. 동아시아 제공.

핀치의 부리

조너선 와이너 지음ㆍ양병찬 옮김

동아시아 발행ㆍ528쪽ㆍ1만8,000원

“평균 1.5㎜입니다.” 1976년 3월 이후 1년 10여개월 동안 이어진 혹독한 가뭄으로 핀치의 85%가 굶어 죽었다.

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결정적 요인은 부리 크기였다. 씨앗 등을 파먹고 사는 핀치에게 크고 두터운 부리가 생존에 유리했다. 그러면 부리는 얼마나 커야 할까. 죽은 중간땅핀치와 살아남은 중간땅핀치 부리 크기 차이를 보니 평균 1.5㎜였다. 고작 이 차이로? 말이 되는 얘긴가. 다음으로 넘어가보자.

“1987년 중간땅핀치의 부리 폭은 8.74㎜로 예상됩니다.”

1984년 중간땅핀치의 부리 폭은 평균 8.86㎜였다. 그 해 비가 많이 와 먹이가 풍부해졌다. 가뭄 때와 반대로 부리가 가늘고 작은 핀치들도 살 수 있다. 먹잇감들의 증가추세, 부리 크기의 유전 가능성 등을 감안한 수학 공식에다 수치를 넣었다. 추정치는 이전보다 0.12㎜ 좁아진 8.74㎜로 나왔다. 1987년 실제 측정 결과 또한 8.74㎜였다.

‘핀치의 부리’는 피터·로즈메리 그랜트 부부가 남미의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진행한 핀치 연구 결과를 대중과학저술가 조너선 와이너가 쉽게 풀어 쓴 책이다.

찰스 다윈이 정립한 진화론엔 남다른 고민이 있었다. 화석을 늘어놓은 뒤 어떤 종이 어떻게 생겨나 진화했는지 설명하긴 좋은데 진화가 발생하는 그 순간, 그러니까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그 순간을 딱 잡아내진 못한다는 점이다. 붕어빵엔 붕어가 없듯, 다윈의 ‘종의 기원’엔 정작 종의 기원이 없다.

창조론자의 생각엔 이 부분이 유용한 공격 포인트다. 그랜트 부부의 연구 자체, 그리고 이 책이 1994년 선보인 뒤 퓰리처상 등을 받고, 또 2014년 20주년 기념으로 재출간된 것도 그 때문일 게다. 말하자면 미국적 풍토인 셈인데, 어쩌면 그 덕에 우리도 이 좋은 책을 소개받을 수 있으니 고맙기도 하다.

그랜트 부부가 40년 이상 현장 연구를 벌여온 태평양 갈라파고스 제도의 대프니 메이저 섬. 대륙에서 1,000km 가량 떨어진데다 해양의 화산활동으로 융기했기에 이 섬은 대륙과 전혀 무관한 지질성분을 지니고 있다. 동아시아 제공

진화의 그 순간을 잡아내기 위해 갈라파고스 제도에 그랜트 부부가 들어간 건 1973년이었다. 내 눈 앞에 증거를 내놓으라는 우격다짐에는, 또 다른 우격다짐 ‘전수조사’로 맞설 수 밖에 없다. 그랜트 부부는 갈라파고스 제도에 속한 19개 섬 가운데 어느 정도 다양한 종의 핀치가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외부 영향이 덜한 작은 섬, 대프니 메이저를 터전으로 삼았다. 이후 섬 안의 모든 핀치를 잡아다 몸집 크기, 부리 치수, 생년월일, 가족관계, 교미횟수 등을 기록했다. 심지어 노래 소리까지 녹음해 분석했다. 배 댈 곳조차 마땅치 않아 ‘태평양이 태평할 때’(이건 저자가 구사한 ‘아재’개그다)에나 들어가볼 수 있는 거친 화산섬에서 여든 한살이 된 지금까지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다.

기록이 쌓여가면서 그랜트 부부는 “양치기가 양을 모두 알아보듯” 섬 안의 핀치들을 구별할 수 있었고, 그 가운데 상당수는 족보까지 외울 수준에 이르렀다. 1.5㎜ 차이라는 관측치, 8.74㎜라는 예측치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 부부는 유전학자들과 공동연구를 통해 2004년엔 핀치의 부리 변화에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 BMP4까지 찾아냈다. 인간으로 치면 얼굴에 관한 유전자인데, 그래서인지 암컷 핀치는 교미하기 전에 수컷의 부리를 유심히 본단다. 불과 몇 ㎜ 차이로 뭐가 얼마나 잘 생겨질까 싶지만, 여하간 수컷은 잘 생기고 볼 일이다.

40여년 이상 태평양 갈라파고스 제도 현장 연구를 통해 핀치의 모든 것을 연구한 그랜트 부부. 이들은 집요한 추적 끝에 ‘종의 기원’ 그 자체를 증언하는 연구를 쌓아나가고 있다. 동아시아 제공

한 발 더 나아가 2009년에는 새로운 종의 탄생을 학계에 보고했다. 원래 이종교배로 태어난 개체는 열성이다. 불임 등으로 후손을 남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과 당나귀 사이에서 난 노새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외부의 강한 충격이 있을 땐 이종교배인데도 후손을 남기는 경우가 생긴다. 일종의 ‘유전자 풀가동!’ 상태다.

그랜트 부부는 이종교배한 핀치들을 추적했고, 이종교배한 핀치들끼리 교미해 후손을 낳은 지 7세대 만에 생물학적으로 새로운 종이라고 판별할만한 것이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마침내 종의 ‘기원’ 그 자체를 목격한 것이다. 부부는 지금까지도 네이처, 사이언스 등에 이에 관한 논문을 내놓고 있다.

핀치 책이라고 새 얘기만 있는 건 아니다. 역량 있는 과학저술가답게 저자는 초파리나 나방 등 다른 연구에 대한 설명도 잘 버무려놔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적당한 비유와 농담으로 긴장도 풀어준다. 생물학 관련 번역에 전문성을 인정받는 양병찬의 매끄러운 번역도 좋다. 무엇보다 먹고 먹히는 식의 ‘동물의 왕국’보다 자연계의 악전고투를 더 잘 드러낸 흥미진진한 기록이라는 점이 좋다. 성인 뿐 아니라 중ㆍ고등학생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생명은 항상 땅을 박차고 오를 준비가 되어 있다. 멀리서 보면 그것은 밝은 하늘이나 어두운 땅을 배경으로 조용히 실루엣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이쪽저쪽으로 가볍게 몸을 움직이고 있다. 마치 1,000가지 방향 중 어느 한 곳을 향해 언제라도 이륙할 준비를 하고 있음을 세상에 은근히 과시하듯.” 저자의 말이다. 우리 안에 약동하는 유전자, 그 생생한 기록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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