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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블랙리스트와 배우

입력
2017.01.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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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여러 연설은 재임 내내 국경을 넘어 회자됐다. 대통령 신분으로는 마지막인 10일 고별 연설도 아니나다를까 전 세계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박수를 보냈다. 이 연설에서 그는 시민으로서 정치에 요구하고 개입해야 더 나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50분 연설에서 유난히 귀를 끈 대목이 있다. “민주주의는 획일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 풍토 아래서 “선조들은 논쟁을 벌이고 싸웠고 결국 합의점을 찾았다”고 그는 말했다. 또 “우리 중의 누군가를 남들보다 더 미국적이라고 정의”하고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악의적”이라고 여겨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앞서 메릴 스트립이 골든글로브 공로상을 받으며 한 연설은 신랄한 트럼프 비판으로 화제가 됐다. 그는 트럼프가 대중 앞에서 장애가 있는 한 기자를 흉내 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이렇게 말했다.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 힘 있는 사람이 굴욕감을 주려는 욕망을 드러내면 그것은 모든 사람의 삶에 스며든다. 다른 사람 역시 그래도 된다고 허락하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무례는 무례를 부른다. 폭력은 폭력을 조장한다. 권력자가 지위를 이용해 타인을 괴롭히면 우리 모두 패하게 된다.”

▦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특검이 문화예술계에 파다했던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밝혀 가고 있다. 자유와 창의, 풍자와 조롱으로 숨 쉬는 작가ㆍ예술인들이 정부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지원 배제’ 당한 사실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정권 핵심부는 생각이 다른 사람과 논쟁해 그들을 설득하기보다 악의적이라고 몰아붙여 배제하는 데만 골몰했던 것 같다. 독재 시절을 지배했던 딱지 붙이기, 편 가르기이자 권력자의 무례이며 폭력에 다름 아니다.

▦ 메릴 스트립은 수상 연설에서 배우의 역할을 “다른 사람의 삶에 들어가 그게 어떤 느낌인지 여러 사람이 느끼도록 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배우들끼리 “공감하는 연기를 해야 할 특권과 책임을 서로 일깨워 주어야 한다”며 “마음이 아프다면 그것을 예술로 만들라”는 말도 덧붙였다. 블랙리스트의 전모야 머지않아 밝혀지겠지만, 메릴 스트립이 말한 사회적 책무를 짊어지다가 수많은 문화예술인이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마는 우리 현실이 새삼 서글프다.

김범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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