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문 기간을 좀 주십시요.”
오늘(17일) 오전 해양수산부 관계자 A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오늘자로 보도된 기사(▶ ‘되레 갈등 부채질 하는 해수부’)에 대한 반응이자 그간 수 없이 쏟아낸 비판 기사에 대한 앓는 소리였습니다. 요점은 유기준 현 장관이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세월호 수습에 나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니 그 점을 감안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허니문 기간이라…. 그러고 보니 세월호 참사 1주기였던 어제는 유 장관의 취임(3월16일) 1달 째 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통화 중 저를 불편한 게 만든 건 바로 A씨의 이 발언 때문이었습니다.
“정책에 대한 비판은 좋다. 그러나 장관의 개인적인 이력을 갖고 정책과 연계시키는 건 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선 실제 기사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다음 두 부분을 거론한 거였습니다
『‘친박정치인 출신’인 유 장관이 ‘윗선’ 눈치만 보느라 제 목소리를 못 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내년 총선 출마를 앞둔 ‘시한부 장관’이어서 소극적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위 비판은 해수부 안팎에서 실제 들리는 목소리이자 우려인데요. 현 정권 구성을 살펴보면 이완구 국무총리를 비롯해 최경환, 황우여 두 부총리, 그리고 유기준 해수부 장관 등 상당수가 친박 국회의원 출신으로 이뤄져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책 결정 과정에서 토론이나 비판적인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는 점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요.
특히 유기준 장관의 경우, 세월호 인양 결정 문제를 두고 대통령과 엇박자 발언으로 이 같은 우려를 더 키웠습니다. 유 장관은 지난 6일자 한 언론 인터뷰에서 “세월호 인양,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밝혔는데요. 당시 여당 내에서도 인양론이 대세를 이루던 터라 다소 인양 결정을 유보하는 듯한 그의 발언에 비판적인 반응이 잇따랐습니다. 대통령 역시 곧바로 “적극 검토” 입장을 밝혔고 다소 머쓱한 입장이 된 유 장관은 3일 뒤 “인양 여론이 높아져 (여론조사를) 할 필요가 없어진 듯하다”며 결국 말을 번복했습니다.
인양 추진 일정을 정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또 어떤가요. 해수부는 유가족들이 “조속히 인양 결정을 내려달라”며 수 없이 외쳤지만, 입을 다물다가 결국 1주기 당일인 어제 대통령이 “빠른 시일내에 인양하겠다”고 밝히자, 기다렸다는 듯 보도자료를 통해 “기술검토TF 논의 결과를 다음주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보내겠다”고 밝혔습니다. 부처 장관이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소신을 제대로 밝히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세월호 수습비용과 관련해서도 섣부르게 총액을 공개해 혼선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유 장관은 지난 7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세월호 인양과 배ㆍ보상 등 사고 수습비용에 대해 “총 5,500억원 이상이 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역시 전날 언론을 통해 인양비용이 많게는 2,000억원이 들 거라고 밝힌 터라, 이를 포함해 총 5,500억원이 어떻게 산출된 비용인지 관심이 커졌습니다. 당시 해수부 고위관계자는 ▦선체인양 2,000억원 ▦배ㆍ보상 1,400억원 ▦기존 집행액 1,800억원 ▦피해자 추모 등 기타비용 300억원 등이라고 설명했는데요. 다음날 해수부는 긴급 브리핑을 통해 ▦선체인양 1,205억원 ▦배보상 1,731억원 ▦기존집행액 1,800억원 ▦피해자 지원 등 812억원 등 총 5,548억원으로 내역을 수정 발표했습니다. 불과 하루 사이에 인양 추산 비용이 800억원이 왔다갔다 한 데 대해 해수부는 “기상조건이나 실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판에 박힌 답으로 일관했습니다. 예고없이 이뤄진 유 장관의 발언에 수습 비용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던 해수부 직원들이 황급히 움직였을 모습이 눈 앞에 그려졌습니다.
한가지 첨언을 하자면 어제 진도에 내려간 유 장관을 TV로 지켜보면서 그가 윗옷으로 갖춰 입은 양복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나치게 넓고 노란 칼라가 추모리본처럼 목을 감싸고 있던 건데요. 세월호 사고에 분노하고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하는 소시민들이 가슴 한 켠에 작은 리본을 달고 있는 것과 달리 마치 연미복을 연상시키는 복장을 입고 유가족이 떠난 텅 빈 분향소로 대통령을 안내하는 모습은 ‘과장’과 ‘형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습니다. 리본의 크기가 마음과 비례하진 않으니까요.
사실 취임과 동시에 세월호 수습의 중책을 맡은 해수부 수장으로서 국회, 언론, 유가족 등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하며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란 매우 어려운 일일 겁니다. 또 세월호 이외에 크루즈산업, 항만개발 등 미래 먹거리를 바다에서 찾기 위해 추진해야 할 현안들도 많을 거고요. 하지만 지난 달 24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10개월 시한부 장관 아니냐”, “해양수산 분야에 대한 비전이 무엇이냐”, “유기준 표 정책이 뭐냐”는 질타와 질문에 유장관이 준비되지 않은 답변과 회피로 일관했던 점을 돌이켜보면 안타까움이 더 커지는 게 사실입니다.
“허니문 기간 끝나면 장관님 내년 총선에 출마하는 것 아닙니까?”
A씨의 질문에 받아치자 그는 “제가 답하기엔 곤란하다”며 얼버무렸습니다. 이제 한 달이 지났고 유 장관에게 남은 기간은 길어야 9개월 여뿐입니다. 세월호 참사라는 미증유의 사고를 제대로 수습하기에 턱없이 모자란 기간이라는 건 잘 알테고요. 허니문 기간요? 세월호 사고의 주무부처 장관직 제의를 받았을 때 과연 스스로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진지하게 고민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유가족들이 이주영 전 장관을 여전히 찾고 있다는 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금도 특별법 시행령을 두고 많은 국민과 유가족이 길거리에 나와 있습니다. 유 장관 그리고 A씨를 비롯한 해수부 직원들은 국민들의 아픔에 눈높이를 맞춰주길 바랍니다.
세종=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