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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새우 짓 한국외교

입력
2015.08.2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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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히 한국 무시한 아베 담화

정부의 갈팡질팡 행보 웃음거리로

투트랙 외교의 의미 분명히 알아야

1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시민이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전후 70년담화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담화에서 '일본의 식민지배, 침략'을 명시 하지 않았으며, 과거형으로 사죄를 했다. 뉴시스
1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시민이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전후 70년담화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담화에서 '일본의 식민지배, 침략'을 명시 하지 않았으며, 과거형으로 사죄를 했다. 뉴시스

누차 얘기했듯이 투트랙은 두 가지를 균형 있게 추구한다는 것이다. 명분만 고집한다든지 실리만 좇는다든지 해서는 국익을 극대화할 수 없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대일외교가 비판을 받은 것은 명분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베 담화는 정부의 잘못 꿴 단추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담화에서 뭘 특별히 기대해서가 아니다. 관성적으로 달려온 측면이 있는 대일외교의 궤도를 수정할 ‘구실’로 삼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정부는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아베 담화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아니 훨씬 못했다. 지난 전쟁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해 왔다고 했으나 누가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언급하지 않았다. 전쟁과 무관한 다음 세대들에게 사과를 계속하는 숙명을 지워서는 안 된다며 사과 무용론까지 제기했다. 을사늑약 체결과 국권침탈로 이어진 러일전쟁에 대해서는 “식민지 지배 아래 있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줬다”며 오히려 자랑스러워 했다. 전쟁에서 명예와 존엄을 빼앗긴 여성을 거론했지만 위안부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반성과 사죄는 “지난 대전에서의 행동”에 대한 것일 뿐 식민지배는 뺐다. 내선일체의 황국신민이자 한일합방으로 내지인(內地人)이 된 조선인에게는 사죄할 게 없다는 인식이 곳곳에 배어 있다. 한마디로 3인칭 과거형 간접인용 화법, 주체와 객체가 모호한 유체이탈 화법으로 일관한 궤변과 변명, 꼼수의 종합판이었다.

이런 담화에 대한 박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미적지근했다. 비판한 대목은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역사는 가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고 한 게 고작이다. 나머지는 “사죄와 반성을 분명하게 밝힌 것에 주목한다” “이런 공언을 행동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등 칭찬과 당부가 대부분이다. 이런 담화를 보고 어떻게 이런 논평이 나올 수 있을지 의아할 따름이다. 오죽했으면 일본 언론조차 차라리 (담화를) 내지 못한 것만 못하다고 했을까. 일본 내에서도 비판 받는 아베 담화를 박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평가했다고 한 보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교류도 좋고 관계개선도 좋지만, 그 전에 해야 할 것은 우리의 일관된 입장을 분명하게 전하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관이 무엇이고, 일본의 행동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흔들림이 없어야 ‘한국은 밀어붙이면 통한다’는 인식을 불식시킬 수 있다. 일본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독도에서 위안부에서 교과서에서 야스쿠니에서 계속 역사도발을 할 게 분명하다. 그 때도 지금처럼 ‘아쉽다’ 한마디로 끝낼 것인가, 아니면 또 다시 관계를 끝장낼 것처럼 요란을 떨 것인가. 일본이 경축사에서는 그렇게 평가해 놓고 이제 와서 왜 또 그러느냐고, 또 골대 움직이는 거냐고 하면 뭐라고 할 것인가. 마이클 그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이 신문에 기고한 것처럼 이번 아베 담화는 과거사에 대한 일본 국민의 ‘뉴 노멀(new normal)’이 될 지 모른다. 당장 박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유일하게 해결을 당부한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다.

박 대통령은 얼마 전 중앙부처 실ㆍ국장 세미나에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외교인식은 패배의식”이라고 말했다. 곧 일곱 번째로 5030클럽(인구 5,000만명 이상,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에 가입한다며 더 이상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가 아니라 돌고래라고 했다. 그러나 정부의 행태는 여전히 새우 짓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고작 아베 담화 갖고도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니 덩치가 훨씬 큰 미국, 중국은 어떻게 상대할지 걱정스럽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중국 전승절 등도 새우 짓 때문에 논란이 커진 측면이 분명히 있다.

아베 담화가 끝났다고 가슴 쓸어 내린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최종 목적지인 헌법개정으로 향하는 일본의 질주는 지금부터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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