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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경비원이 과자 심부름꾼인가요?

입력
2017.08.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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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시달리는 은행ㆍ우체국 경비

청소ㆍ운반 등 허드렛일 지시에

잠깐 앉았다고 “제대로 일하라”

고객 있는데도 큰소리로 호통

“직원들 힘드니까 잘 생각해라”

다쳐서 병가 냈다가 퇴짜까지

“부당해도 해고 두려워”… 하소연

청경들이 겪은 갑질
청경들이 겪은 갑질

“다른 직원들 힘드니까 병가 쓰지 마세요.”

우체국 경비원 A씨는 지난주 병가 신청을 냈다가 우체국장으로부터 쓴소리를 들었다. 두꺼운 책이 든 택배상자를 옮기다 손목과 허리 관절이 악화돼 당장 병원을 가야 하는 상황이다. A씨는 한 달 전부터 이를 호소했지만 경비 외 잡무를 계속 해야 했고, 급기야 병가 신청을 하면서는 “일을 계속하려면 장기적으로 생각하라”는 말까지 들었다. A씨는 “여름에는 선풍기 바람을 쐬는 것조차 직원들이 보기 싫다고 막더라”며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우체국과 은행 경비원들이 갑(甲)질에 시달리고 있다. “경비 업무가 아닌 동전 세기, 금융상품 홍보, 택배 포장과 운반 등 부당한 업무 지시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부당한 지시라는 이유로 거부하자니 “인사평가는 물론 해고의 두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을 하고 있다.

일부 우체국 경비원은 “우체국 직원들이 본인들 편의를 위해 개인적인 심부름이나 청소, 박스 판매 등 허드렛일을 경비원이 당연히 해야 할 일처럼 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엄연히 우체국 안팎 경비를 하는 게 주 업무이고, 직원들이 너무 바쁠 경우 고객 안내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도 있지만 도가 지나치다는 불만이다. 한 경비원은 “우체국 고객을 대상으로 스마트뱅킹을 모집해 설치해 주거나 초등학생들에게 우체국 사업을 설명하는 홍보 업무까지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은행 경비원 역시 비슷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지점에서 청원경찰로 일하는 B씨는 업무시간이 끝나기 직전 잠시 자리에 앉았다가 은행 직원으로부터 “제대로 안 할거야”라는 호통을 들어야 했다. B씨는 “잠시 앉기만 해도 고객들 앞에서 큰소리로 야단을 맞기 때문에 하루 8시간 가까이 서서 근무한다”며 “직원들의 과자 심부름이나 청소, 현금지급기 수리, 전표 작성, 현금 세기 등 갖가지 부당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퇴근시간 이후에도 은행 마감 업무를 돕느라 남기도 했다”는 B씨는 “직원들 심부름꾼이 아닌 금융경비원으로 존중 받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우체국이나 은행 경비는 대부분 파견 인력이라 직원으로부터 지시를 받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낮은 임금과 언제 해고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진 경비원들이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국 부당한 업무가 주어지지 않도록 원청업체(우체국과 은행)와 파견업체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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