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시신이 일러준 검·경 실체
확인 발표 일부러 늦췄거나 부실수사
조사특위 구성해서 수사 기소 맡겨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ㆍ정부기관)이 감정하고 경찰(정부기관)이 발표한 세월호의 실질적 소유자인 유병언씨 사체를 두고 말이 많다. 6월 12일에 발견했으나 단순노숙자로 알고 작업을 미루다 보니 7월 22일에야 DNA가 확인됐다고 경찰은 발표했다. 6월 10일까지도 순천에 합동수사본부가 설치되어서 유병언을 잡자고 난리였는데 불과 이틀 뒤 은신처에서 겨우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백발노인의 시신을 의심해보지 않았다면 기본적인 자질부족이다.
5월 25일까지 살아있었다더니 17일 이내에 해골화가 될 수 있느냐, 더워서 해골화가 빨리 되었다면 내복과 겨울파카는 뭐냐, 술은 안 마시는 사람이 7년 전 단종된 소주병은 왜 들고 다녔나, 안경이나 휴대전화 현금은 왜 없나, 부자가 비료포대나 닭튀김집 소스통을 왜 간직했느냐는 분석부터 사체 신고시점이 6월 이전이다, 그 부근에 노숙자가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다는 주민들 제보까지 갖가지 의혹이 쏟아져 나왔다. 머리카락으로 했으면 사흘이면 끝날 DNA 검사를 굳이 오래 걸리는 엉덩이뼈로 조사의뢰한 이유가 뭔가, 무연고 행려자로 봤다면서 굳이 엉덩이뼈 조사까지 했다는 게 말이 되냐는 분석도 나왔다. 의혹제기에 곧바로 안경을 찾았다는 경찰의 발표는 지역 주민 안경으로 밝혀지면서 신뢰를 더 까먹었다.
신뢰를 잃긴 검찰(정부기관)도 마찬가지. 5월 25일 단독으로 순천의 은신처를 수색했던 검찰은 유병언 시신에 시민들의 의심만 커지자 당시에 비밀공간에 숨어있었는데 미처 몰랐다, 거기서 현금가방을 확보했다는 엄청난 사실을 뒤늦게 쏟아놓았다. 그러나 이런 발표로 검찰이 중요 정보를 경찰과 공유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드러났다.
물론 지금 중요한 것은 유병언이 아니다. 이미 침몰사고에서 기업 쪽 책임은 거의 밝혀졌다. 기업과 정부기관의 유착은 더 중요한 문제인데 중간정도까지만 수사가 되었다. 해운업계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이나 선주협회 지원으로 공짜 외유를 한 의원들에 대한 수사가 진척이 없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침몰 후 왜 해경(정부기관)은 구하지 않고 시간만 끌고 있었는가인데 이 부분은 거의 수사된 게 없다. 해경이 해군과 소방방재청, 미군의 구조 지원을 거절하면서 시간을 끈 사실이 확인만 됐을 뿐이다. 대통령(정부기관)이 사고가 난 7시간 동안 행방불명이었다는 건 수사가 아니라 김기춘 비서실장이 국회에서 증언해서 밝혀졌다.
이런 문제는 수사하지 않으면서 유병언을 추적하는 것으로 시선을 끌고 인력을 낭비하던 검찰, 경찰이 이번에는 유병언 추정 시신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이 시신은 유병언이어도 문제고 유병언이 아니어도 문제다. 유병언이 아니라면 이제 정부기관이 대놓고 국민을 속이겠다는 것이고 유병언이라면 정부기관의 수사력을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시신의 등장으로 명확해진 게 딱 하나 있다면 수사기관이 거짓말쟁이거나 바보라는 점이다. 어느 쪽이든 수사기관으로는 실격이다.
세월호 참사의 유족들은 세월호 특별법을 바라고 있다. 정부기관으로 참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사고 진상을 밝히고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을 기소해서 처벌함으로써 재발을 막는다는 것이 골자이다.
그런데도 국회 특위 위원장인 심재철 의원을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들과 친정부 수구단체들은 ‘유족들이 과도한 배상을 바란다, 의사자 선정을 바란다, 학생들의 특례입학을 바란다’며 이들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가기만 할 뿐 근본적인 문제 제기에는 대답하지 않고 있다. 진상조사기구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줄 경우 정부의 체계가 무너진다고 반발한다.
세월호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를 밝히는 일은 똑 같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대한민국이 거듭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그런데 경찰도 검찰도 그걸 밝힐 능력이 없다는 것을 유병언의 시신이 명백히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참사특위를 꾸려 민간에서든 정부에서든 가장 정직하고 유능하고 서로 협조하는 조사인력을 차출해 수사에 나서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논리적인 수순이다. 유병언 시신이 보여주는 진실을 직시하고 해결책에 나서지 않는다면 결국 정부나 여당이 원하는 것은 사건은폐라는 뜻이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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