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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의 힘… 미궁 속 뺑소니범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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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의 힘… 미궁 속 뺑소니범 잡다

입력
2015.01.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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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CCTV가 사고 현장 비춘다" 기사 댓글 제보로 용의 차량 추적

과거에도 범인 검거에 위력 발휘… 과도한 신상 털기 등 악영향도

허씨가 탔던 윈스톰 가해 차량. 사고 충격으로 차량 앞 범퍼 부분에 금(동그라미 안)이 가 있다. 청주=뉴시스
허씨가 탔던 윈스톰 가해 차량. 사고 충격으로 차량 앞 범퍼 부분에 금(동그라미 안)이 가 있다. 청주=뉴시스

‘(사고 현장 인근) 차량등록사업소에 폐쇄회로(CC)TV도 있는데 한번 재생하여 보는 것은 어떤지요? 도로를 비추고 있어서 찾을 수 있을 듯하네요.’

26일 오후 4시10분 한 포털사이트에 이런 게시물이 올라왔다. 경찰이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건’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네티즌의 한 마디는 뺑소니범을 잡은 결정적 한방이 됐다. 글을 올린 청주시 차량등록사업소 전모 팀장은 30일 “우리 CCTV가 시설물 보호 때문에 밤에 도로를 비추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에 글을 남겼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튿날 해당 사업소에서 CCTV를 수거해 피해자 강모(29)씨와 가해 차량이 이동하는 시간이 일치한다는 점을 확인했고, 용의 차량을 윈스톰으로 특정할 수 있었다. 17일 동안 미궁에 빠졌던 사건은 CCTV 영상 확보 이후 가해자 허모(37)씨가 29일 밤 자수하기까지 채 사흘이 걸리지 않았다. 사고 지점에서 170m 가량 떨어져 있는 사업소는 범인의 예상 도주로와 반대편에 위치해 있어 경찰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곳이었다.

네티즌의 힘은 이번 사건을 해결한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숙한 온라인 시민의식이 십시일반 작동한 결과, 뺑소니범의 자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강씨가 지난 10일 교통사고로 숨졌을 때만 해도 이 사고는 일반적인 뺑소니 사건으로 잊힐 뻔했다. 하지만 12일 오후 인터넷 자동차정보 사이트 ‘보배드림’에 강씨 가족의 절절한 사연이 올라오면서 네티즌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이어 K7, BMW528i, 재규어 Xj 등 각종 차종에 대한 추측글이 달렸고 ‘리어 보조등이 상단에 위치한 점 등으로 미뤄 BMW5 시리즈로 판단된다’는 등 전문가 뺨치는 780여개의 분석 글이 잇따라 게재됐다.

경찰 수사는 사실상 네티즌 수사대가 터놓은 물줄기를 뒤쫓는 형국이었다. 경찰은 가해자의 예상 도주로인 제2운천교 주변 수십개의 CCTV 동영상 자료를 살폈으나 차량번호조차 판독하기 어려웠다. 엉뚱한 CCTV에 매달려 헛물만 켠 탓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분석 결과 역시 가해 차량과 전혀 다른 차종이 용의차량으로 나왔다. 심지어 허씨가 자수하기 전 보배드림의 한 회원은 ‘크림빵 용의자가 저희 사무실에서 부품을 사갔다’며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확실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했다.

네티즌의 힘은 과거에도 종종 경찰 수사나 범인 검거에 위력을 발휘해 왔다. 2007년 8월 20대 여성 회사원 2명이 실종된 뒤 숨진 채 발견된 ‘홍대 택시 피살 사건’ 역시 경찰이 수사에 혼선을 겪고 있을 때 한 네티즌은 면식범 가능성, 동선 등을 종합해 택시기사를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공범설을 제기했다. 그의 말대로 택시기사와 공범 2명은 구속됐다.

물론 수사 영역에 대한 네티즌의 집착은 과도한 신상털기나 인권침해 등 부정적 결과를 남기기도 한다. 네티즌들은 2012년 8월 정신지체 장애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한 용의자 가운데 A씨가 명문대에 ‘봉사왕’으로 입학한 사실을 밝혀냈지만, 다른 가해 학생들의 신상을 혼동하고 공개하는 바람에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박상진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온라인이라는 실시간 소통 창구의 특성상 네티즌 여론은 경찰 수사의 진전에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정보의 신빙성 판단이나 공권력 발동은 수사당국에 맡겨야 선의의 피해자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청주 흥덕경찰서 관계자는 “네티즌 제보와 무관하게 수사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차량등록사업소 CCTV를 확보했지만, 네티즌의 활동이 가해자의 심리를 압박하는 등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준 것은 맞다”고 말했다.

30일 오전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건의 용의자 허모씨가 충북 청주 흥덕경찰서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청주=뉴시스
30일 오전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건의 용의자 허모씨가 충북 청주 흥덕경찰서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청주=뉴시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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