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중독자인 푸틴, 국내외 뉴스 동향 날마다 비교 분석
민영 언론 고사 작전, 언론 사주 횡령 등 전방위 비리 감찰
언론 통제 오래갈 듯, 국영 방송 시청률 점차 하락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000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러시아를 장악해왔다. 대외적으로는 크림반도를 강제합병하며 옛 소련 제국의 부흥을 꿈꾸고 있다. 미국과도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신(新) 냉전’시대가 도래했다는 말도 나온다. 과거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경쟁했던 두 가지를 꼽으라면 핵무기 등을 통한 군비 확장과 선전 선동을 통한 이념 대결을 들 수 있는데, 신 냉전 시대에도 이 잔재들은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달 9일 2차 대전 승전 70주년 기념일을 맞아 최신형 탱크와 핵미사일까지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를 통해 선보였다. 이 자리에서 푸틴 대통령은 “미국 유일 강국 체계를 막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등 서방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통해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것을 정면 비판한 것이다.
소련의 붕괴로 이념 대결은 종언을 맞은 것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차원의 대립이 현재 진행형이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세계관을 반영하는 편향적 정보들이 방송과 신문, 인터넷 등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며 “러시아는 거짓이 아닌 진실을 알리기 위해 적극 대항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세계 정보 유통망을 서방 언론이 장악하면서 러시아에게 불리한 정보만이 생산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의미에서 언론은 푸틴 대통령에게 ‘무기’에 불과하다. 서방의 반(反) 러시아 선전 선동을 막아내고 러시아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언론은 철저히 국가의 전략적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의 언론 탄압은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다”면서 “러시아에서 언론이 공공재(public goods)라는 의미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 아닌 국가의 소유물이라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과 언론
“푸틴 대통령은 뉴스 중독자(news junkie)다.”
언론 비서관이자 크램린궁 대변인인 드미트리 페스코브가 푸틴 대통령의 언론 소비 습관을 묘사한 말이다. 푸틴 대통령은 하루 중 업무가 없는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정보기관에서 보고하는 국내외 언론 동향을 매일 빠짐없이 확인한다고 페스코브는 전했다. 차량이나 헬리콥터로 이동할 때나 자기 전 침실에서까지 뉴스를 들고 가 읽는다. 페스코브는 “푸틴 대통령은 과거 정보기관인 KGB 요원으로 활동하면서 독일어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면서 “직접 서방 방송을 챙겨보고 신문도 따로 구독해 읽는다”고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인터넷에도 자주 접속해 온갖 뉴스를 훑어보면서 러시아 정보기관과 대외 공관 등에서 보고하는 국내외 뉴스 동향들과 비교, 분석하며 읽는 것으로 알려졌다.
페스코브는 “푸틴 대통령은 이러한 과정에서 심각한 괴리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크림반도 병합만 하더라도 서방과 러시아가 바라 보는 관점의 차이인 양론이 있을 수 있는 사안인데, 러시아를 비판하는 기사들만이 인터넷에 유통되고 있는 것을 보며 서방 언론의 일방적 정보 패권을 실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푸틴 대통령의 언론관은 간단하게 요약된다. 언론을 소유하는 자가 뉴스 내용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거의 유일한 독립 라디오 방송인 ‘모스크바의 메아리’(Echo of Moscow)의 알렉세이 베네딕토브 편집국장은 과거 푸틴 대통령을 접견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의 언론관을 전했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폭스뉴스 등을 소유한 미디어 거물 루퍼트 머독을 보라. 머독이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이든 곧 그게 뉴스가 된다”며 “그런 의미에서 국가가 소유한 국영방송은 정부의 관점을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고 베네딕토브 편집국장에게 역설했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민간 언론사라도 편집권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푸틴 대통령은 언론사가 국영이 아닌 민영으로 운용될 경우 사주의 사적 이득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13년 초 연례 기자회견에서 “언론사 사주 등 정보 자산을 다루는 인물들은 애국주의적 가치관을 지녀야 한다”며 “이들은 러시아 연방의 이익에 복무해야 하며, 곧 국가 자산의 성격을 띄고 있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 같은 언론관을 바탕으로 취임 이후 국영 언론사를 확대하는 동시에 민영 언론사를 압박해 고사시키는 전략을 수행해나가고 있다. 페스코브는 “정보는 21세기 가장 강력한 무기”라면서 “서방의 정보 독점을 분쇄하고 진실을 찾기 위해 러시아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의 언론사 통제 방식
푸틴 대통령의 언론사 통제 방식은 은밀하고 교묘하게 진행된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과거처럼 군대나 경찰을 앞세워 방송사를 포위하거나 언론인을 겨냥한 테러 등을 가하는 것은 사라졌다. 대신 러시아 정부는 언론사 사주에 대한 횡령과 세금 탈루 등 전 방위적인 비리 감찰을 벌인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러시아 미디어 거물 블라디미르 구신스키에 대한 체포였다. 푸틴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0년 당시 러시아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올리고 있던 TV 방송인 NTV의 회장이었던 구신스키에 대한 비리 조사에 전격 착수했다. 당시 구신스키는 NTV와 라디오 ‘모스크바의 메아리’, 일간지 세보드냐 등을 소유한 언론 재벌이었다. 조사 결과 구신스키가 약 1,000만 달러를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고, 이를 빌미 삼아 러시아 정부는 국영기업인 가즈프롬 미디어를 통해 NTV를 인수했다. 구신스키에 대한 조사부터 언론사 인수까지 딱 1년 안에 모든 과정이 이뤄졌다. NTV는 현재 러시아 최대 규모의 방송사로 중립을 표방하고 있지만 러시아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관영방송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
온갖 조사에도 범죄 혐의가 발견되지 않으면 뉴스 등을 매일 모니터링 하며 꼬투리를 잡는다. 해당 언론사에 국세청 직원을 보내 끊임없는 조사를 진행하며 위협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해당 방송사의 사업 동업자들에도 조사를 확대한다. 꼬투리가 잡힐 때까지 먼지를 탈탈 터는 것이다.
2010년 창립한 러시아 민간 독립 TV방송인 도즈드는 크레믈린의 압박 속에 결국 내리막길을 걸은 사례다. 도즈드는 러시아 정치인들의 권력 부패는 물론 2011년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 크림반도 사태 등을 잇따라 보도하면서 러시아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지 않은 유일한 언론으로 꼽혔었다. 하지만 뉴스 보도 한 건이 문제가 됐다. 지난해 1월 수많은 학살을 막기 위해 2차 대전 당시 레닌그라드를 독일 나치에게 순순히 내줬어야 하는지를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이게 러시아 시민들의 상처를 들쑤신 것이었다. 나치의 레닌그라드 포위 작전은 러시아인 수십만 명을 기아로 몰아 넣어 사망케 한 사건이다.
러시아 정부는 도즈드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도즈드의 방송 송출을 불허했다. 도즈드의 간판 앵커인 미하엘 피쉬맨은 “이러한 과정은 푸틴 대통령의 직접 지시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면서 “TV 채널에서 도즈드가 퇴출 당한 것은 분명 푸틴 대통령의 재가 하에 진행된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 채널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도즈드의 뉴스는 인터넷으로만 볼 수 있다. 그래도 시청자는 약 600만명에 육박한다. 도즈드는 현재 모스크바 근처의 조그만 아파트를 빌려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언론사로 쓸 공간을 빌리는 곳조차 러시아 정부로 허락 받지 못했다. 피쉬맨은 “아파트 거실에 뉴스룸을 만들었고 욕실은 분장실로 쓰고 있다”면서 “크레믈린의 눈 밖에 났을 경우 처해지는 러시아 민영 언론의 현주소”라고 말했다.
러시아 언론에 대한 반감 커지고 있어
푸틴 대통령은 현재 러시아 통신사인 RIA의 규모를 확대하며 전세계 45개 국가에 14개 언어로 번역해 러시아 뉴스를 송출하고 있다. 서방의 뉴스 독점에 대항하고 러시아의 목소리를 확대하기 위해 관련 뉴스를 직접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러시아 내 최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브콘탁테’(VKontakte)도 친 푸틴 세력이자 러시아 부호인 이고르 세친과 알리세르 우스마노프의 손에 넘어갔다. 브콘탁테의 창업자인 파벨 두로프는 해외로 망명한 상태다.
다만 러시아 내에서도 최근 푸틴의 강압적인 언론 정책에 대한 반감이 서서히 커지고 있다. 러시아 국영방송인 러시아 투데이(RT) 등에 대한 시청률이 점차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한 국영방송 관계자는 “시청률이 꾸준한 추세로 감소하고 있다”면서 “시청자의 일탈은 곧 푸틴 대통령이 만들어놓은 관영 언론 체제에 대한 반발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서방 언론에 대한 러시아 시민들의 피해 의식도 만만치 않아 푸틴의 언론탄압이 오랜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의 한 시민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서방 언론을 통해 러시아와 관련해서 긍정적인 뉴스가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서방에 의해 러시아의 진실은 호도되고 전세계로부터 고립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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