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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존폐 위기 자초한 교육부의 원죄

입력
2017.04.14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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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의 처지가 무척 딱하다. 5․9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교육부 기능과 권한의 축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교육부로선 억울한 구석이 없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정책 실패를 탓한다면 교육부로서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교육 정책의 실패를 온전히 교육부 탓으로만 돌리기 어려운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교육 문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과의 긴밀한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하고 진화한다. 따라서 교육부 혼자서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는 교육 문제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일례로 그간 교육부는 사교육비 경감에 엄청난 화력을 쏟아 부었다. 이 과정에서 대학입시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고 교육제도가 획기적으로 변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효과는 영 신통치 않았다. 때로는 심각한 역효과가 나타나 교육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더욱 떨어뜨리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학교 간에 잘 가르치기 경쟁을 유도해 사교육비 경감을 도모하겠다는 배경에서 추진된 자사고 대거 지정이 대표적이다. 맥을 잘못 짚고 허망한 기대만 키웠으니 특별히 놀랄 일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사교육 경쟁에는 사회 전반의 기회구조에 대한 학부모의 인식이 투사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제한적 기회구조와 고도 성장기에 배태된 물질주의적 욕망 사이의 커다란 간극이 사교육 경쟁을 추동하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사람들의 욕망에는 어느 정도 조정이 발생했다. 하지만 기회구조가 훨씬 더 큰 폭으로 악화하면서 생존전략 차원에서 사교육에 대한 수요가 더욱 증가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여기에다 승자와 패자를 확연하게 갈라 승자에게 과도한 보상을 안기고 학벌에 따라 사람의 서열을 매기는 관행과 문화도 사교육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따라서 지금보다 훨씬 더 공평하고 정의로우며 복지가 강화된 사회가 구현되지 않고는 사교육비 지출은 크게 줄어들기 어렵다. 문제는 이런 사회를 구현하는 데 교육부가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여지는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자신의 한계를 솔직히 고백하고 도움을 청해 좀 더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대신 간단없이 설익은 미봉책을 쏟아냈다. 그리고 급기야 2011년에는 EBS 수능 연계라는 해괴한 정책마저 도입한 바 있다. 다른 부처라면 모르겠지만 교육의 본령에 대한 고민의 끈을 한시도 놓아서는 안 될 교육부가 EBS 수능 연계라는 비교육적 정책을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정책을 존치하면서 어떻게 창의성 신장과 공교육의 정상화를 얘기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 존립 명분을 뿌리째 훼손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표를 먹고 사는 위정자들은 민심의 향배에 극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유력 대선 후보들이 한 목소리로 교육부를 손보겠다고 나선 상황은 민심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많은 국민이 교육부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됐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념 편향을 누구보다 경계해야 할 교육부가 권력의 심기를 앞장서 살피며 정책을 추진해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대다수 역사학자는 물론 국민 10명 중 7명이 반대했던 사안이다. 이런 정책을 대통령 탄핵 이후까지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교육부가 보인 총체적 난맥상은 많은 국민을 실망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교육부로선 통절한 반추와 성찰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차제에 교육부를 확실히 손보겠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의욕이 지나쳐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과도한 환상을 경계하며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을 먼저 도출하는 일이 더 중하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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