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찾은 시민축구단, 공정 기회 보장하니 목숨 걸고 뛰어
프로축구연맹에 쓴소리, 판정 비판 영구적 금지는 잘못
이재명(51) 성남 시장은 지난해 연말 국내 축구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프로축구 성남 FC 구단주이기도 한 그는 팀이 K리그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쓴소리를 거침없이 토해냈다. 이 일로 구단주 사상 최초로 프로축구연맹 상벌위원회에 회부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이 시장의 행동을 두고 “속이 시원하다. 구단주로서 할 말은 했다”라는 반응과 “축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 시장은 17일 성남시청 집무실에서 가진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시끄러웠던 일들도 축구 발전의 거름이라고 생각한다. K리그와 성남 구단의 관계도 원만하게 됐다”면서 “팀도 대한축구협회(FA)컵에서도 우승을 하고 1부 리그에 잔류했다. 구단주로서의 첫 해는 해피 엔딩”이라고 소회했다.
이 시장은 성남 FC가 추구하는 방향에 대해 “공정하고 투명한 축구단을 만드는 것이다. 지연과 혈연, 학연 등을 배제해야 한다. 모든 선수들이 ‘성남에 가면 내 실력대로 뛸 수 있다’라는 믿음을 주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이 시장은 축구에 대해 “선수단을 조직하고 선수들을 격려하고 상대를 꺾고 우승을 향해 나아가는 측면은 정치와 아주 유사하다”며 “성남 축구단을 통해서 민주사회가 갖는 효율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시장으로서 축구단 구단주까지 됐다. 축구와의 특별한 인연이 있다면.
“어린 시절 새끼줄을 꼬아서 공을 만든 뒤 논바닥에서 차 본 것이 축구와의 첫 인연이다. 국민 스포츠니까 갖게 되는 일반적 관심 외에는 특별히 없었다. 축구공 대용이던 돼지 오줌보도 귀했던 시절이었다.”
-시민 축구단 창단이 쉽지 않았을 텐데. 성남 FC를 창단하게 된 동기는.
“지난해 초 일화가 운영을 포기하면서 시즌을 끝내고 나면 구단이 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구단을 무상 인수하라는 비공식적 타진이 들어왔다. 머리가 복잡했다. 프로축구단에 들어가는 재정투자는 많고 기업의 관심은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괜히 떠 안았다가 끙끙 앓고 고생만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 게 사실이다. 제대로 운영 못하면 운영 못한다고 비난 받을 것이고 예산을 낭비한다는 비난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시즌 끝나갈 때쯤 대체로 의견이 모아졌다. 시민사회에서 ‘인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새누리당도 인수를 요구하면서 인수에 대한 정치적, 재정적 부담이 많이 줄었다. 축구계에서는 성남을 인수하지 않으면 팀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있었다. 국민 스포츠에 대한 의무, 모아지는 시민 여론, 정치적 부담 등이 해결됐다.”
-1년 동안 축구단을 운영하면서 발견한 희망이 있다면. 시민 축구단의 자립 발전이 가능한가.
“그야말로 생 난리를 쳤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절박함, 다급함이 맺은 최종적인 결론은 해피 엔딩이었다. 시끄러웠던 일들도 발전의 밑거름이라고 생각한다. K리그와 성남구단의 관계도 원만하게 됐다. K리그 스스로도 발전의 계기, 질서를 만들기 위해 힘쓰는 것 같고 시민들도 FA컵 우승이라는 망외의 소득을 통해 재미를 느끼게 된 것 같다. 선수 운영, 프런트 구성도 생각 외로 잘 해결됐다.”
-올해 축구단 예산은 많이 증액됐나.
“구단의 예산은 늘어났고 성남시의 부담은 많이 줄었다. 지난해 100억원에서 올해 70억원으로 줄이려다가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 출전하면서 15억원 늘려 85억원으로 편성했다. 시의회도 15억원 증액에 대체로 합의했다. 시 예산이 85억원이고 기업 후원은 목표치를 넘어서 70억원 가까이 된 것 같다.”
-비 시즌 동안 김두현을 영입하는 등 전력보강이 많이 이뤄졌는데.
“선수단, 프런트 구성에 대해서는 세부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가지고 있다. ‘이재명 시장이 정치적으로 낙하산을 꽂는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다. 선수단 구성은 99% 김학범 감독의 작품이다. 김 감독이 구상하는 대로 김두현이라는 공격형 미드필더를 영입했다. 성남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공정하고 투명한 환경이다. 선수, 직원들이 맘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축구 선수들이 ‘성남에 가면 내 실력대로 뛸 수 있다’라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다. 선수들을 선발하고 조직하고 뛰게 할 때 지연ㆍ혈연ㆍ학연, 그 끈적끈적한 연을 배제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나도 압력을 느낀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한 일이 그것이다. 좋은 사람 뽑아서 기회 주고 ‘너의 인생을 열어 봐라’라고 하니까 목숨을 걸고 뛰는 것 아닌가.”
-올해 성남 FC의 목표는.
“1차 목표는 상위 스플릿(1~6위)에 가는 것이고, 2차 목표는 상위 스플릿에서 중상위에 오르는 것이다. 리그 초반에 성적을 낸다면 해볼 수 있는 목표라고 생각한다.”
-지난 해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구단주로서 내가 할 일은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좋은 지휘자를 고르고, 실력을 뽐낼 수 있게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창단 감독을 선정할 때 현 김학범 감독과 박종환 감독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두분 다 유능하고 비주류 성향이다. 비주류라는 것은 주류가 아니긴 하지만 자기 색깔이 뚜렷하다는 의미다. 박 감독은 본인이 절대 (폭력 행사)하지 않겠다고 다짐 했지만 그 후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석 코치를 하던 이상윤 감독한테 기회를 주고 싶었는데 초반에는 좋았지만 후반에 수비가 무너지고 평균 득점 허용이 2배로 올라가니까 감당이 안됐다. 새 감독 선임 고민을 했는데 윤정환 감독하고 먼저 접촉을 했다. 윤 감독에게 기회를 한번 줘보자 생각했는데 그게 잘 안됐다. 바로 김학범 감독에게 맡기게 됐는데 그 이후로 안정되고 있다. 지옥을 갔다 온 느낌이 든다.”
-바쁜 시정 활동 때문에 경기 관전이 쉽지 않았을 텐데. 지난해 몇 번 축구장을 찾았나.
“원정 경기는 네 번, 홈 경기는 거의 다 본 것 같다. 원정 경기는 갈 때마다 팀이 져서 징크스 때문에 잠깐 쉬었다. 하위팀이라 지는 경기가 더 많으니까(웃음). 집사람도 축구를 좋아해서 함께 다닌다.”
-축구단을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는다면. 기뻤거나 아쉬웠던 순간은.
“역시 FA컵 승부차기다. 골키퍼가 막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관중석에서 펄쩍 뛰었다. 거의 당선됐을 때의 기쁨과 비슷했다. 선거야 여론조사를 통해 대충 알 수 있지 않나. 몇 퍼센트 정도 이길까 계산하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게 선거지만 축구는 승패를 전혀 모른다. 준결승, 결승 모두 승부차기로 넘었는데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의외성이 축구의 매력인 것 같다.”
-지난해 연맹과 심판 판정 문제로 충돌하기도 했다. 연맹에 정확히 주문하고 싶었던 것은.
“축구를 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우리나라 축구계의 환경이 투명하고 공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철저하게 지키면서 경쟁이 가능하도록 하면 새로운 장이 열리겠다 싶었다. 내가 추구하는 정치적 이익은 구단 개입을 통해 자잘한 이익을 얻는 게 아니다. 구단에 대한 외풍을 차단하고, 훌륭한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는 게 더 큰 이익이다. 엉터리 운영을 하고 엉터리 선수를 집어넣다가 축구단이 망하는 사례가 한 둘이 아니다. 시민구단에서 제일 우려하는 게 이것인데 울타리를 잘 만들어주면 상당한 정도의 성과를 낼 것이고, 결국 더 큰 것이 돌아올 것이다. 축구단이 잘 운영되는 결과를 보여주는 게 진짜 정치다. 연맹과의 다툼도 그런 차원에서 한 것이다. 연맹측에서 심판에 대한 비판은 영구적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징계를 하겠다는 것인데 나는 그것이 과잉금지라는 것이다. 잘못은 지적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 출발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발전의 원동력이다. 판정 비판을 영구적으로 금지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연맹도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잘못이다. 리그는 일종의 연합체다. 구단들이 만든 연합체에 불과하다. 연맹이 구단의 위에서 지배하는 관계가 아니다. 구단이 연합해서 하는데 왜 말을 못하나. 이건 폭압이다. 비민주적이다. 심판 판정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다. 나는 ‘어떤 징계든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연맹은 ‘그렇게 약하게 주는데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러냐’라는 입장이었다. ‘축구계와 축구계를 둘러싼 주변, 내가 겪고 있는 시민들의 세상, 팬들의 세상과는 큰 장벽이 놓여있구나’라는 생각 들었다. 언론의 논조와 기사에 대한 독자의 반응도 다르게 나타났다. 서로 악의를 가져서 생기는 게 아니라 다른 세계를 살고 있구나, 한국 스포츠계와 대중들 사이에 뭔가 넘을 수 없는 틈이 있구나(라고 느꼈다). 이 틈을 메워야 한다. 팬들 입장에서도 애정을 갖고 바라봐 줘야겠지만 스포츠계도 자신을 낮춰야 비로소 단단하게 성장할 것이다. 그 동안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았다. 그래서 프로 스포츠와 대중과의 간극을 내가 메우겠다는 의욕을 갖게 됐다. 그 경험이 큰 자산이 될 것 같다.”
-연맹과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웠는데, 도중에 물러선 이유는.
“재심 청구를 심의하는 자리에 직접 가려고 했다. 거기서 기각되면 법원에 소송을 내고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려고 했다. 최종 결과에 대해서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K리그 구성원이 연맹에 할말을 못한다는 것은 계원이 계주가 곗돈 쓴 것에 대해서 말을 못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그것 때문에 잃게 될 것을 비교해 봤다. 성남 구단은 어떨까, 내 정치적 입지는 어떻게 될까, K리그는 어떻게 될까. 최종 승리를 한다 해도 그 과정에서 잃게 되는 것이 너무 많았다. ‘싸움질이나 하고 있네’하는 국민들의 눈초리, 체육계가 받을 상처, 독불장군 같은 이미지, 등등 잃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맹이 개선하려는 노력도 했다.”
-계원 입장에서 계주에게 바라는 점은.
“대중들 마음에 깔려있는 축구에 대한 열망이 있다. 이 열망은 월드컵 등 국가간 경기에서 드러났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축구에 대한 열망과 사랑을 일상적으로 표출할 수 있게 하고 관심을 갖게 하려면 TV중계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중계를 안 하니까 안보고, 안보니까 중계 안 하는 악순환이 있다. 초기 손실을 감안하더라도 자주 봐야 친해진다. 국민들이 축구에 관심 갖게 하고 그걸 기반으로 축구도 발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1차적 책임이 연맹에 있다.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서 중계료를 받지 말고 지급하는 한이 있더라도 중계 해야 한다. TV중계는 생명이다. 성남은 자체적으로 방송사와 계약해 주중ㆍ주말 홈경기를 중계할 계획이다. 주말 경기는 OBS와, 주중 경기는 지역 방송사 ABN과 계약할 예정이다. 처음에는 손실이 날 것이다. 하지만 투자를 안 하면 리그 자체가 점점 축소될 것이다.”
-축구와 정치의 공통점은.
“일단 투자한 만큼 성과가 나온다. 국민들을 설득해서 내 편을 많이 만들고 이를 통해 권력을 차지하면 전체를 위한 행정을 한다. 선수단을 조직하고 선수들을 격려하고 승리해 가는 과정은 정치와 아주 유사하다. 내 편을 만들고 힘을 키워서 상대를 제압하면 이기는 것이다. 그 과정이 거의 비슷하다. 정치에서 대한민국 희망을 만들고자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세상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효율성을 갖게 될 것이다. 지도자가 사회 전체를 위해서 자기 역량을 투자하느냐 자기 집단을 위해 투자하느냐에 따라 사회 흥망이 결정된다. 축구도 똑같다. 공정하고 투명한 환경에서 기회를 주고 신상필벌을 분명하게 하면 선수들은 진짜 자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성남 축구단을 통해서 민주사회가 갖는 효율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정적들도 내가 성남시장으로 열심히 하는 것은 인정 하지만 덩치가 커서 (결과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축구는 곧바로 순위, 점수가 나오기 때문에 그 효율성을 잘 보여줄 수 있다.”
-유니폼에 공익 광고를 넣은 이유는.
“서민 빚 탕감 프로젝트인 ‘롤링 쥬빌리’(Rolling Jubilee)공익 광고를 하기로 했다. 미국 월가 시위 때 태동한 사회 운동인데 일정 시기가 지나면 빚을 탕감해주는 성경 속 제도를 발전시킨 것이다. 장기 연체로 거의 가치가 없는 채권들을 사서 소각해 없애는 운동이다. 성남시가 주축이 돼서 하고 있다. 채권자에게는 어차피 받을 수 없는 돈이지만 채무자 입장에서는 살아있는 채권이다. 악성 채권을 없애주면 채무자는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할 수 있다. 장기 연체 채무자들에게 기회를 주고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해보려고 하고 있다. 후원하는 기업들도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기업들은 캠페인을 후원하고 우리는 공익 사업을 후원하는 삼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유니폼에 ‘롤링 쥬빌리’가 있으면 그것이 뭔지 궁금해 할 것이다. 홍보에 축구가 수단이 되는 것이다. 축구에 세금을 집행하는데 기본적으로 공익성을 가져야 하고 성남시가 최대 스폰서니까 시의 가장 중요한 정책 서민 빚 탕감 프로젝트를 홍보하는 것이다.”
-성남FC가 축구단 자체로 자립할 수 있는 가능성은.
“프로축구단이 독자적으로 생존하기는 어렵다. 기업 환경, 국민 정서, 인프라, 연맹의 역량과 지향하는 가치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 쉽게 독자생존하기는 어렵지만 앞으로 가능성 커진다고 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의 스포츠로 축구를 키우겠다고 공언했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축구 교육을 시켜 1억3,000만명이 축구를 배우고 있다. 거대한 축구시장이 열리게 될 텐데 거기에 우리가 대비하면 상당한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성남 FC의 비전이 있다면.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을 때 매우 큰 효율을 발휘할 수 있다. 시민이 주축이 된, 선수가 주축이 된, 팬이 주축이 된 잔뿌리가 많은 구단을 만들 것이다. 시민들 속에 자리잡은, 시민들의 에너지로 넘쳐나는, 돈이 아니라 사람들의 열정이 발산될 수 있는 새로운 모범을 만들 수 있을 거라 본다.”
성남=노우래기자 sporter@hk.co.krㆍ이현주기자 memor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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