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 서울 강남 20대 여성 살해 사건을 대하는 경찰의 태도에 대해 전문가들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 사건을 ‘가해자의 정신질환’문제로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자칫 모든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지난 2월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정신질환 관련 오해와 진실’자료집에는 이런 질문이 나온다. ‘정신질환자는 폭력적 성향이 크며,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을까?’ 답은 ‘NO(아니오)’다.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정상인의 범죄율의 10분의 1도 되지 않고, 최근 들어 그 비율이 높아지고 있지도 않다. 전문가들은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제외한 정신질환의 경우 공격성과 잠재적 범죄성향이 일반인에 비해 높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일시적으로 조절되지 않는 충동성 때문에 자해 또는 타해를 할 위험성이 나타날 수 있지만 매우 드물고, 이마저도 타해의 위험성은 자해의 위험성의 100분의 1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경찰이 이번 사건을 ‘피해망상에 의한 묻지마 범행’으로 단정지으면서 정신질환자는 매우 공격적이며 위험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 상에는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정신질환자들을 격리조치해야 한다”는 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가해자가 평소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여성을 노려 저지른 범죄임에도, 경찰이 여성혐오에 의한 범행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신질환 문제가 좀 더 부각된 측면도 있다. 경찰 실무에서 정신질환과 혐오범죄를 구분해 취급하기 때문에 분류로 치면 정신질환에 의한 범행이라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지만, 명확하지 않은 이유를 들어 여성혐오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과 불안을 가중시켜야 했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심화될 경우 정신질환자가 병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우리사회는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정신질환자=범죄자’라는 편견이 심해질수록 문제가 될만한 이들도 치료를 더 안 받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도 앞서 성명서를 내고 “분노와 혐오가 모든 조현병 환자에게 향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며 “환자와 가족이 낙인으로 인해 질환을 인정하기 어려워지고 돌봄의 손길이 닿지 않지 않은 곳으로 갈 수 있기에 편견을 조장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신질환자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공격성을 가진 극소수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할 순 없었을까. 경찰의 대응이 못내 아쉽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