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중앙은행(ECB) 등 국제채권단이 구제금융 협상에서 처음부터 노렸던 목표는 그리스 급진좌파연합(시리자) 정권의 퇴진이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레프는 29일 국제채권단이 구제금융 연장을 거부하며 그리스를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으로 몰아붙이는 등 강공을 펼치는 데는 향후 그리스와 경제협력에서 시리자 정권과 함께 해나갈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스 정부가 지난 22일 제시한 구제금융 개혁안은 당초 유로그룹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서 구제금융 협상이 타결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당시 재무장관 회의에서 IMF가 돌연 연금삭감 등 재정지출 감축을 요구하는 새 개혁안을 내놓으면서 구제금융 협상이 결국 불발로 끝났다.
이에 대해 텔레그레프는 “IMF의 협상안은 긴축 반대를 내걸고 집권한 시리자 정권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안이었다”면서 “IMF와 ECB,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로 구성된 ‘트로이카’ 채권단은 처음부터 시리자 정권과 협상을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또 국제채권단이 구제금융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시리자 정권이 협상안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시리자 정권이 퇴진하고 중도적인 정부가 그리스에 들어선다면 국제채권단은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유연한 구제금융 협상안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채권단이 구제금융 협상에서 중요하게 문제삼고 있는 건 사실상 부가가치세와 법인세 등 개혁안의 세부항목이 아닌 바로 시리자 정권이라는 것이다.
그리스 정부는 다음달 5일 국민투표를 실시해 국제채권단이 제기한 개혁안의 수용 여부를 물을 예정이다. 투표 결과 반대표가 많을 경우 시리자 정권은 국제채권단과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발판을 얻게 된다. 반면 찬성표가 많은 경우에는 민심을 반영하지 못한 시리자 정권의 퇴진이 예상된다.
그리스 언론에 따르면 지난 27일 긴급 여론조사 결과 국제채권단의 개혁안에 대한 찬성은 47%, 반대는 33%로 집계됐다. 또 응답자의 약 60%는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아야 한다”고 밝혔다. 유로존 장관들도 “국민투표에서 협상안이 거부되면 남는 것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뿐”이라고 경고하며 그리스를 압박하고 있다.
텔레그레프는 “국제 채권단의 개혁안 수용 요구에 그리스 정부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국민투표 밖에 없었다”면서 “시리자 정권의 퇴진이 선택지로 올라간 국민투표는 사실상 국제채권단이 처음부터 짜놓은 게임전략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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