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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79)미주순회공연(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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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79)미주순회공연(上)

입력
2002.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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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나의 이력서’를 읽은 네티즌들이 글을 쓰는 코너가 있다.우선 쾌차를 기원해준 그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며칠 전 그분들의 글을 죽 읽어봤는데 유난히 눈에 띈 글이 하나 있었다. ‘미국 LA에 사는 동포인데 선생님의 LA 공연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꼭 나으셔서 다시 한번 이곳으로 와 주세요’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미주순회공연. 지금 생각해도 가슴 떨리는 말이다. 한국일보 미주지사 초청으로 1982년부터 내리 5년 동안 미국과 캐나다 순회공연을 떠난 그 때는 정말 내 인생의 전성기였다.

길고 긴 무명의 설움에서 벗어나 한 해 최고의 스타들과 30~40일 외국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갖는다는 것은 크나큰 영예였다. 미국을 가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 점은 다른 연예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만 해도 외국에 나가는 일이 지금처럼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한국일보가 과감하게 일을 벌였다.

82년 6월 조용필(趙容弼) 하춘화(河春花) 혜은이 등 인기 가수를 데리고 무려 한 달 동안 미국과 캐나다의 주요 도시 30여 곳에서 해외동포 위문공연을 연 것이었다. 사회자 겸 코미디언은 물론 나였다.

공연은 보통 가수들의 히트곡 열창, 나의 코미디 연기, 참가자 모두가 꾸미는 코믹 연극으로 구성됐다.

한 동포는 내 코미디에 대해 “이주일 쇼를 기다리는 재미로 한 해를 보낸다”고까지 말했다.

‘코미디의 황제’ ‘한국의 자니 카슨’이라는 말은 한국보다도 먼저 미국에서 들었다.

이후에도 공연은 탤런트 이덕화(李德華) 정혜리(鄭愛利), 가수 김세레나 이은하(李銀河) 이 용(李 龍) 김연자(金蓮子) 정수라(丁秀羅), 코미디언 이상해(李相海) 등 당시 최고의 스타로만 구성됐다. 특별한 출연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국내 인기관리에 큰 지장이 있는데도 이들은 기꺼이 공연에 참가했다. 오히려 크나큰 자랑거리로 여겼다.

그때는 스타들도 순수했기 때문에 ‘해외동포 위문공연’이라는 명분 하나로 한 달 이상씩 국내무대를 비울 수 있었던 것이다.

동포들의 반응도 엄청났다. 82년 첫해 첫 공연을 LA의 ‘슈라인 오라토리움’이라는 대형 공연장에서 가졌는데 4,000석을 가득 메우고도 못 들어온 사람이 1만 여 명이나 됐다.

공연장에 입장하지 못한 이들이 우리들이 탄 버스에 분풀이로 페인트 칠을 했을 정도로 열광적인 분위기였다.

그때만 해도 미국에서 고국 연예인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포들의 뜨거운 열기를 더욱 진하게 느낀 것은 미국의 한 소도시에서 열린 공연이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면 소재지 정도의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주한미군과 결혼해 미국에 정착한 한국 여성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다.

그들이 우리 숙소에 몰려와 “수십만 명이 모여 살아야만 동포냐? 우리 앞에서도 공연을 해달라”고 사정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선 무대였다.

결국 군부대 식당에서 공연을 가졌는데 관객은 고작 100명.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상상외였다.

그들은 우리가 노래를 시작하기만 하면 울었다. “안녕하십니까”라는 말 한마디만 해도 울음바다가 됐다.

공연 후 부대장이 “당신들이 우리 가족들을 즐겁게 해준다고 해서 공연을 허락했는데 슬프게 하면 어떻게 하냐? 헌병대에 고발하겠다”고 농담을 건넬 정도였다.

그 사람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고국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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