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규모가 1,500조원을 넘어섰다. 정부의 대대적 가계대출 억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가계빚은 올해 들어서만 50조원 이상 늘어나며 금리 인상기에 들어선 우리나라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23일 한국은행의 ‘2분기 중 가계신용(잠정)’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493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금융당국이 집계한 지난달 가계대출 증가액(5조5,000억원)에 이달 증가분까지 합하면 가계빚은 이미 1,500조원을 넘어선 게 확실시된다. 지난해 8월 가계빚이 1,400조원을 돌파한 지 1년 만이다. 2013년 4분기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는 저금리 환경 속에 1년에 100조원씩 불어나는 가파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말 1,450조원 규모였던 가계신용은 올해 1분기 17조4,000억원 증가했고 2분기에는 증가폭을 더욱 키우며 24조9,000억원 늘었다. 이 가운데 22조7,000억원은 가계대출 증가분으로, 2조2,000억원은 판매신용(카드ㆍ할부금융사 외상판매) 증가분이다.
은행 가계대출은 12조8,000억원 늘어 전분기(8조2,000억원)는 물론이고 전년 동기(12조원)보다도 증가폭이 컸다.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포함)은 가계대출 억제책의 타깃인데도 불구하고 지난해 2분기(6조3,000억원 증가)와 엇비슷하게 6조원 늘었다. 신용대출을 비롯한 기타대출은 6조8,000억원 증가해 1년 전 증가 규모(5조7,000억원)를 앞질렀다. 문소상 금융통계팀장은 “은행 주택담보대출은 2분기 아파트 입주 물량 확대로 전세자금대출 및 집단대출이 늘어나면서, 기타대출은 5월 연휴 및 어린이날ㆍ어버이날, 6월 월드컵 개최 등으로 소비가 확대되면서 각각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저축은행, 신협, 농협, 새마을금고 등) 가계대출의 경우 대출심사 강화 등의 영향으로 주택담보대출은 8,000억원 감소했지만, 기타대출은 무려 3조3,000억원이나 급증했다.
한은은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2분기 가계신용 증가액이 1분기보다 7조원 이상 확대되긴 했지만 계절적 요인 등으로 2분기가 1분기보다 가계빚이 많이 느는 것이 일반적인데다 지난해 2분기(28조8,000억원)와 비교하면 상당폭이 줄었기 때문이다. 전년동기 대비 가계부채 증가율로 봐도 2분기(7.6%)는 2015년 1분기(7.4%) 이후 최저 수준이고, 특히 재작년 4분기 이래 6분기 연속 증가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에서 유례없이 가계부채 증가세가 가팔랐던 2015~2017년과 비교하며 지금의 가계부채 상황을 낙관하는 것은 금물이란 지적도 나온다. 올들어 정부가 신(新)총부채상환비율(DTI),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등 강력한 주택대출 규제책을 내놨는데도 은행 주택대출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점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한은이 주택대출 증가의 주요인으로 꼽고 있는 아파트 입주 물량 확대(상반기 22만9,151가구)는 하반기(22만7,527가구)에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시장에선 정부 규제로 주택담보대출이 어려워지자 전세자금대출로 주택 구입자금을 마련하는 편법이 성행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전세계약서만 있으면 실거주 여부 조사 등 까다로운 조건 없이 연 3%대 초반의 낮은 금리로 보증금의 80%까지 빌릴 수 있다 보니, 친인척 등을 세입자로 위장해 만든 계약서로 대출을 받는 경우가 적잖다. 실제 5대 시중은행에서 전세대출 잔액은 2분기 석 달 동안 4조6,000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은행 주택담보대출 증가분의 76%에 달하는 수치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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