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의 동북아] 1. 중국의 패권확대와 한미동맹 中, 과거사로 악화된 한일관계 이용, 공세적 한미 동맹 흔들기 압력 美, 한국 MD참여로 中 견제 노려 "美中 간 갈등 역이용의 지혜 필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 4일 방한으로 우리 정부로서는 더욱 복잡해진 동북아 안보 정세를 헤쳐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시 주석과 박근혜 대통령이 달라진 한중 우호 관계를 다시금 과시했으나 동북아를 둘러싼 미중 패권 경쟁 구도를 감안하면 한중 밀월관계는 우리에겐 위기가 될 수도,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다.
한일 관계 악화 파고드는 중국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중국이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고리로 대일(對日) 공조를 공세적으로 제안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시 주석은 3일 정상회담에 이어 4일 특별오찬에서 광복 70주년이자 전승 70주년을 맞는 내년에 대규모 기념 행사를 공동 개최하자는 얘기를 꺼냈다. 박 대통령이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으나, 우리 정부로서는 쉽지 않은 숙제다.
시 주석이 서울대 강연에서 양국 국민이 일본 군국주의의 공동 피해자임을 강조한 것처럼,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한중 공동행사를 거부할 명분이 많지 않다. 특히 최근 일본의 우경화 행보로 반일 감정이 고조되는 국내 여론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요소다. 하지만 일본을 겨냥한 공개적인 한중 공조는 한미일 삼각 동맹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다. 당장 미국 언론들은 “중국이 악화된 한일 관계를 이용해 한미일 동맹을 흔들고 있다”는 분석을 일제히 내놨다. 한중 정상이 특별 오찬이란 비공식 자리를 빌리긴 했으나, 일본의 집단 자위권 확대에 공개 우려를 표명한 것을 두고서도 미국이 상당히 불편해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중의 ‘역사 공조’가 미국 입장에선 중국의 동아시아 안보 패권 확대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미중 안보 패권 경쟁에 낀 한국
시 주석이 지난 5월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연설에서 CICA를 아시아 다자 안보협력기구로 개편하자고 제안한 것은 중국의 대외 행보가 경제 협력 분야를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급성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 중심의 아시아 안보체제 구축에 본격 나선 것이다. 중국의 안보 주도권 팽창은 결국 미국과의 마찰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CICA 연설에서 “아시아의 안전은 결국 아시아인들이 지켜야 한다”는 시 주석의 발언이 겨냥한 것도 미국인 셈이다.
다급해진 쪽은 미국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우리를 비롯한 아시아 4개국 순방에 나선 것을 두고 중국을 겨냥한 행보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Pivot to Asia) 자체가 미국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려는 의도란 게 일반적 해석이다. 미국이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를 찬성하는 것도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무관치 않다.
이 같은 동북아 정세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아시아 안보 방파제는 한미일 삼각 동맹이다. 특히 이를 위해 미사일 방어체제(MD) 구축을 밀어 붙이고 있어 한국에 대한 MD 편입 요구는 더욱 거세지는 상황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과 4월 방한해 가진 한미 정상회담에서 MD 참여와 한미일 3각 안보 공조를 핵심 의제로 꺼냈다.
미중의 ‘러브콜’ 경쟁 이용해야
중국과의 경제 교역이나 미국의 체제 안정 보장 등을 고려하면 우리로서는 섣불리 한 쪽 편에 서기 어렵다. MD 체제 편입은 중국의 격렬한 반발을 부를 수 있고, 중국의 대일 공조 제안을 무작정 수용했다간 ‘한중 대 미일’ 구도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줄타기 상황은 우리 정부의 행보를 어렵게 하지만, 역설적으로 미중의 경쟁 관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중국과의 적절한 공조는 미국에게 일본의 우경화를 제지할 수단을 제공하고, 중국의 구애는 대북 압박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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