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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한 자취방 구하기, 선배가 도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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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한 자취방 구하기, 선배가 도와줄게

입력
2016.02.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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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연세대 재학생 상담사들

방 구하는 신입생과 함께 다니며

임대 사기 막고 채광 보안 확인도

정부 대책, 공공임대와 대출에 한정

대학생 주거상담 지원 창구 없어

학생주거상담사인 고려대생 김정현(왼쪽)씨가 21일 서울 안암동 한 다세대 주택에서 새 학기를 맞아 자취방을 구하려는 후배 이상호씨에게 주거 환경을 설명해주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학생주거상담사인 고려대생 김정현(왼쪽)씨가 21일 서울 안암동 한 다세대 주택에서 새 학기를 맞아 자취방을 구하려는 후배 이상호씨에게 주거 환경을 설명해주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아까 에어컨 봤어요? 휴지 붙여놓은 것 보니까 습기 때문에 곰팡이 생기기 딱 좋은 방이에요.”

첫 번째 고시원을 나오자마자 김정현(22)씨가 말을 꺼냈다. 그는 “문고리도 열기 쉽겠고 폐쇄회로(CC)TV도 없어 위험하다”며 곧장 이상호(21)씨를 다른 고시원으로 이끌었다. 서울 성북구 안암동 일대 1~2분 거리에 있는 고시원들을 하나씩 확인할 때마다 김씨의 눈과 입은 바쁘게 움직였다. 벽을 툭툭 두드리며 방음 정도를 설명해주기도 하고 화장실과 주방에서 물을 틀어 수압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도 월 40만원을 제시한 이씨의 예산에 채광, 보안 등 최소 조건을 갖춘 방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 21일 오전 고시원 9곳을 들락거린 지 2시간 만에 김씨가 “예전에 선배가 지내던 곳”이라며 소개한 집이 이씨의 생애 첫 자취방으로 낙찰됐다.

새학기를 앞두고 부동산 중개인과 대학생이 살 집을 구하려 발품 파는 광경을 떠올리기 쉽겠지만 사실 두 사람은 모두 고려대 재학생이다. 경기 수원시에서 통학하느라 지쳐 자취를 결심한 후배 이씨(사회학과 1년)를 위해 ‘학생주거상담사’ 김씨(미디어학부 3년)가 도우미를 자처한 것이다.

학생주거상담사는 방학 기간 하루 4시간씩 후배들이 캠퍼스 인근 거처를 구하는 길에 동행하고, 임대인과 갈등이 불거지면 상담도 해준다. 이씨는 “혼자 돌아 다녔으면 겉으로 보이는 청결 정도만 간단히 점검했을 텐데 주거상담사 선배 덕분에 안락한 나만의 공간을 찾은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서울에서 보금자리를 찾지 못한 대학생의 고달픔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도시연구소에 따르면 서울 시내 저가 원룸의 평균 월세 및 유지비는 한달 51만원 선. 주거비를 감당 못한 학생들은 결국 고시원 등 주택법 상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곳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주거빈곤층은 서울 1인 청년가구의 36.2%(2010년 기준)에 달한다. 하지만 정부도, 학교도 나서지 않는 바람에 청년층 주거 문제는 도통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대학생들의 주거 질이 낮은 가장 큰 이유는 공급에 치우친 정부의 주거 대책 때문이다. 정부는 청년 주거 문제 대안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대학생 전세임대주택, SH공사 희망하우징 등 대출이나 공공임대주택 물량을 늘리는 데 골몰해 왔다. 그러나 이런 정책 수혜자는 극히 일부일 뿐, 대부분의 학생들은 주거 정보를 얻는 것조차 오로지 혼자 힘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 일반 시민을 위해 LHㆍSH공사 주거복지센터, 서울 전월세보증금지원센터 등 주거상담제도가 구비된 것과 달리, 소득이 낮고 단기 거처를 필요로 하는 대학생에게 특화된 상담 창구는 전무하다.

가까스로 살 공간을 구해도 만성적인 정보 부족으로 인해 주거 만족도는 바닥을 기기 일쑤다. 지난달 고려대 총학생회가 실시한 설문조사(644명 참여)에서도 재학생의 자취ㆍ하숙 만족도는 6점 만점 중 3.16(하숙)~3.86점(자취)에 그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 스스로 주거상담사 역할을 하며 자구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고려대엔 김씨를 비롯한 11명의 재학생이 지난 11일부터 2주간 주거상담사로 활동 중이다. 연세대 총학생회와 생활협동조합 학생위원회 역시 지난해 8월부터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주거상담사들은 ‘민달팽이유니온’ 등에서 부동산 법규와 현장 실습 교육도 받았다. 두 대학 모두 하루 평균 3, 4명의 학생들이 상담 창구를 두드릴 만큼 환영 일색이다.

최지희 민달팽이유니온 주거상담팀장은 “학교 인프라를 활용하면 학생들이 들이는 시간과 돈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 낼 수 있다”며 “대학 학생복지 부서에 우리 사업모델을 넘기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은 “주거환경도 열악하고 임차인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가 부족한 상태에서 학생들에 개별 책임을 지우는 것은 위험하다”며 “대학 단위로 주거상담 플랫폼을 마련하고 정부가 재정 지원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글ㆍ사진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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