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별한 아내 “쌈짓돈 기부” 유언
본인도 지병에 수급비로 홀로 어렵게 생활
거실 벽 아내 사진 가득 “보고 싶어”
“할마이 유언대로 했으니, 하늘나라서 만나면 같이 행복하게 살려고예…”
최식만(87) 옹은 2년 전 암투병 끝에 별세한 아내 서정남(당시 80세)씨를 생각하며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아내 서씨는 2015년 2월 15일 급격한 지병 악화로 찾은 응급실에서 최 옹에게 “장롱서랍 보자기 안에 돈이 들었는데 당신이 쓰지 말고 나 같은 환자나 더 어려운 사람에게 써달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아내를 보낼 수 없었던 최 옹은 “그런 말 말고 어서 일어나야지”하고 타일렀다. 그러나 그 게 아내의 유언이 됐다.
장례를 마치고 홀로 집에 돌아온 최 옹은 보자기를 보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는 “오래된 수표와 1만원짜리 구권 10장, 동전이 한 가득 있었다”며 “아내가 생각나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서씨는 18년간 갑상선암, 위암, 당뇨병으로 인한 투병생활을 했다. 4~5년 전에는 당뇨병이 악화, 합병증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모두 제거했다.
그래도 최 옹은 아내를 지극 정성으로 간병했다. 궂은 날도 거르지 않고 아내가 탄 휠체어를 밀며 매일 동네를 2시간씩 산책했다. 갑상선암으로 목에 꽂은 호흡용 관에 가래를 1~2시간마다 제거해줘야 해 밤잠을 설치는 게 일상이었다. 당뇨 합병증 수술 후 숟가락으로 매 끼니를 떠먹여주는 것도 최 옹의 몫이었다. 최 옹은 “힘들긴 했어도 같이 있는 게 좋았다. 아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었다. 하루는 간식으로 사과를 깎아서 먹여주는데 싱긋이 웃더라.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최 옹이 아내의 유언을 지키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20년 전 방광암으로 수술을 받아 몸이 편치 못한 최 옹은 기초생활수급비로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다급히 가다 넘어져 팔까지 부러졌다고 한다. 그는 “팔 치료비에 보태려고도 했고 몇 번을 쓰려고 했지만 그 때마다 아내가 밟혔다”며 “남긴 돈이 없으면 생각이 안 난다 싶어서 늦었지만 유언대로 기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 옹은 요즘도 아내를 그리워하고 있다. 40㎡(12평) 남짓한 임대아파트의 거실 한편에는 아내의 사진과 최 옹이 아내를 생각하며 쓴 편지, 노래가사가 빼곡하다. 아내가 좋아했던 노래 ‘추억의 소야곡’을 매일 밤 부르다 지쳐 잠들 정도였다. 최 옹은 “의사가 ‘어르신 그러면 큰일 난다’고 해서 지금은 바깥 활동도 하고 많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아내가 여전히 그리운 이유를 묻자 최 옹은 “그걸 어떻게 말로 다하겠나”며 “옛날에 퇴근하는 나를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다 만나서 손을 잡고 함께 돌아오곤 했다. 그게 좋았다”고 말했다.
최 옹은 25일 오후 3시 부산 사하구 자택에서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금을 전달할 계획이다. 그는 기부금 증서를 가지고 아내가 있는 부산추모공원을 방문할 예정이다.
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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