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ㆍ캠코더 등 본뜬 아이콘
원형 모르는 이용자들 점차 늘어
갈수록 형태 묘사하기보다
기능을 선ㆍ색으로 간단히 표현
[사례 1] “이게 실제로 있는 거였어요?” 서랍 속에서 우연히 플로피 디스크를 발견한 초등학생 딸이 엄마에게 물었다. 아이는 PC에서 과제를 저장할 때 클릭하는 ‘저장하기’ 아이콘과 똑같이 생겼다며 신기해했다.
[사례 2] 대학생 박민지(22)씨는 얼마 전 스마트폰을 구입한 외할머니가 ‘통화’와 ‘카메라’ 아이콘만 알아본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런 손녀에게 외할머니는 “수화기랑 사진기는 실물처럼 생겨서 알겠는데 다른 건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고 푸념했다. 박씨는 외할머니에게 사진 앨범과 메시지 아이콘을 설명하다 결국 포기했다. 그리고는 “그냥 색깔이랑 모양을 외우세요”라고 말했다. 다음에 또 물어보시면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모두가 쉽게 이해하고 만족할 만한 아이콘은 애초부터 없었다. 세대 혹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아이콘의 의미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옮겨 가던 시기 수화기나 플로피디스크 등 사물의 모양을 차용한 아이콘 덕분에 기성세대도 비교적 쉽게 디지털에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기기를 써보지 못한 세대가 디지털 시대의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아이콘 디자인은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사물의 형태보다 기능의 특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통화’ 버튼에서 수화기가 사라질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아이콘으로 부활한 아날로그 기기들
스마트폰 또는 PC를 들여다보면 이미 사라졌거나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아날로그 기기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스마트폰에 밀려 잊혀 가는 수화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스마트폰의 ‘통화’ 버튼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옛날의 카세트테이프가 ‘음성 사서함’을 상징하고 있다. ‘DMB’를 시청하려면 안테나 달린 구닥다리 브라운관 TV를 찾아야 하고, 디지털 잠금장치에 밀려난 열쇠와 자물쇠도 보안 관리나 화면 고정 표시로 여전히 사용 중이다. PC에서 문서를 저장할 때 클릭하는 아이콘 속 3.5인치 플로피디스크는 10년 전에 단종된 ‘유물’이다.
#디지털 충격 완화해 준 사물 묘사 아이콘
이처럼 사물의 형태를 본뜬 아이콘은 아날로그 환경에 익숙한 사용자들이 디지털 기기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아날로그 시대 느꼈던 감성을 디지털에서도 경험하게 함으로써 급격한 매체 변화에 따른 이질감을 줄여 준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인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iOS 6까지)은 아직까지 ‘혁신’의 모델로 꼽힌다.
#아이콘에서 플로피 디스크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그런데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에 접어든 지금까지 아날로그 시대의 '구닥다리’들이 건재한 까닭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비슷한 기능을 갖춘 최신 기기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대표성을 갖춘 모델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진단한다.
한 예로 ‘저장하기’ 아이콘의 경우 PC 등장 후 최초의 저장 장치인 플로피 디스크를 대체할 만한 모델을 찾기가 쉽지 않다. 플래시 메모리부터 USB, 클라우드 등 최근 등장한 다양한 저장 기기 중 어느 하나도 ‘저장하기’의 대표성을 띠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개발된 앱 대부분이 자동 저장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만큼 플로피 디스크가 ‘저장하기’ 아이콘의 처음이자 마지막 모델이 될 가능성도 있다.
#모델은 그대로 디자인은 추상적으로
변화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디지털 기기의 주된 사용자로 등장한 젊은 세대의 특성에 맞춰 기기의 형태를 자세하게 묘사하는 방식 대신 기능의 본질적 특성만을 추상적이면서 간결하게 표현하는 디자인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2015년 ‘Journal of Integrated Design Research’에 게재된 논문 ‘정보기술의 수용 특성에 따른 세대 간 아이콘 인지의 차이(대표저자 서종환)’에 따르면 젊은 세대일수록 사물의 모양을 본뜬 아이콘보다 기능을 추상화한 아이콘을 더 잘 인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변화는 아이폰의 경우 iOS 7에서, 갤럭시는 S7과 S8에서 뚜렷하다. ‘음성 메시지’ 또는 ‘녹음’을 상징하던 카세트테이프나 마이크가 목소리를 형상화한 파장 이미지로 바뀌고, ‘카메라’나 ‘통화’처럼 모델을 교체하지 않은 아이콘 역시 입체적인 묘사에서 평면적인 선과 색깔로만 단순하게 표현한다.
#통화 버튼에서 수화기가 사라질까?
사물을 실물에 가깝게 표현한 아이콘에 익숙한 기성세대들 중엔 갈수록 추상적으로 변하는 아이콘을 보며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주부 윤지환(50)씨는 “같은 제조사인데도 휴대폰을 바꿀 때마다 아이콘 모양이 암호처럼 변해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이러다 수화기 그림도 없어지는 건 아닌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콘 속의 아날로그 기기들이 당장 퇴출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대의 교체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UX 혁신팀 관계자는 “기능의 특징을 극대화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최적의 의미 전달을 하는 것이 목표인 만큼 아이콘 디자인의 모델을 시대 변화에 맞춰 업데이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통화’를 가장 잘 나타내는 모델이 수화기라고 판단하고 있는 만큼 다른 대상으로 교체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희지 인턴기자(이화여대 사회학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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