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대구 머물며 여론 주시
유승민 원내대표가 목하 고민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공개적인 사퇴 요구에 직면한 만큼 거취 문제에 대한 고민이 크다. 명분이나 여론만 놓고 보면 승산이 적지 않아 보이지만, 현실적인 여권 내 지형으로는 한계가 분명한 것도 사실이다. 당분간 선제적 대응보다 방어에 치중하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유 원내대표는 주말 동안 지역구인 대구에 머물면서 여론의 흐름을 면밀히 주시하는 한편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몇몇 박 대통령 주변인사들을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8일 상경한 뒤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한 측근 의원은 “유 원내대표가 여권 내 분란을 최소화하면서 당청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두루 의견을 듣고 있다”면서 “원내대표직 사퇴 여부는 이에 대한 생각이 정리된 후에 판단할 문제”라고 전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거취에 대한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유 원내대표 주변에선 청와대ㆍ친박계의 거친 사퇴 공세에 대한 반감이 크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무슨 독재국가도 아니고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를 콕 찍어 도려내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초선 의원도 “이미 25일 의원총회에서 국회법 개정안 폐기와 함께 유 원내대표의 유임이 결정됐다”면서 “대통령이 자기 맘에 안 든다고 선출직 원내대표를 쫓아내겠다는 발상은 국민적 웃음거리”라고 동조했다.
하지만 여권 내부의 기류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간 유 원내대표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해온 김무성 대표가 소극적으로 돌아설 공산이 큰 데다 당의 허리격인 재선ㆍ3선 의원 중 적극적으로 유 원내대표를 엄호해줄 만한 인사들을 찾기도 쉽지 않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박 대통령이 내년 총선 영향력까지 거론하며 압박하기 시작한 터라 의원들이 속으로 불만과 반감을 가질지언정 이를 표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유 원내대표 측에선 청와대ㆍ친박계의 노골적인 사퇴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몇 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 물론 사퇴 여부와 시점, 정치적 효과와 재기 가능성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다. 익명의 원내부대표는 “29일 최고위에서 친박계의 공세가 어느 수위인지를 본 후에 구체적인 판단을 내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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