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 정책에서 온건 성향을 보여온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터키의 러시아 전투기 격추에 대해서만은 시종일관 매파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터키 공군의 행위를 자위권에 따른 정당한 결정이라고 두둔하는가 하면, 러시아가 화를 자초했다며 러시아를 비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4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터키 지지를 받는 온건 반군을 공격하려다 보니, 터키 국경 부근을 계속 가깝게 날게 돼 전투기 격추 같은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며 “만일 러시아가 공공의 적인 이슬람국가(IS) 공습에 집중했다면 이런 실수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러시아와 터키가 대화를 통해 진상을 파악하고 긴장 정세가 고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도 “터키는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영토 방어 권리가 있다”며 터키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후 이뤄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도 “상황이 격화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주문하면서도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주권 수호에 대한 터키의 권리를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군사당국도 격추 사건을 둘러싼 진실 공방에서 터키 편을 들고 있다. 해당 전투기가 터키 영공을 침입하지 않았다는 러시아 측의 주장을 일축하는 한편, 러시아 전투기가 터키 영공을 침범했다는 점을 연거푸 확인했다. 이는 ‘러시아 전투기가 터키ㆍ시리아의 국경 부근에서 터키 영공을 17초간 침범해 수 차례 경고 후 격추했다’는 터키 측의 설명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도 같은 입장이다. 터키 전투기 조종사들이 격추 전에 러시아 전투기에 10차례 사전 경고를 했으나 어떤 응답도 받지 못했다는 점을 공식 확인했다. AFP에 따르면 스티브 워런 국방부 대변인은 러시아 전투기 격추 사건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답변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돌연 매파적 면모로 변신한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IS의 러시아 여객기 폭탄테러 이후 시리아 공습에 나서면서도 IS보다는 친 서방 성향의 반군에 대해서 공세를 펴는 것에 대해 그 동안 누적된 불만 표출하고 이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ㆍ불 정상회담에서도 “러시아가 IS와 싸우는 것은 환영하지만 시리아의 온건 반군을 공습하는 것은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IS 격퇴 작전에 러시아를 끌어들이려는 올랑드 대통령의 구상에 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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