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아트센터 기획전
영화 ‘솔라리스’에 나오는 미지의 행성 솔라리스에는 ‘생각하는 바다’가 있다. 바다는 지성을 지닌 유기체로 인간의 기억을 포함한 모든 정보를 비추는 거울 능력을 지녔다. 21세기에 확산된 새로운 미디어, 즉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솔라리스의 바다를 닮았다. 개인의 기억과 감정을 정보라는 형태로 펼쳐놓고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유도하지만, 그 전체의 작동양식을 해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백남준아트센터의 새 기획전 ‘슈퍼 전파자-미디어바이러스’는 21세기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양상을 표현한 미술작품을 모은 전시다. 작가들은 ‘21세기 뉴미디어는 무엇을 어떻게 전파하는가?’라는 질문에 자신이 상상하는 이미지를 응답으로 내놓았다.
작가들의 응답은 대략 세 가지로 나뉜다. 뉴미디어의 핵심인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 그 첫번째다. 설치미술작가 2인조 뮌(Mioon)의 ‘솔라리스의 바다’는 8개의 큰 원형 고리 아래 170개의 거울을 매달았다. 고리는 공공미술관과 갤러리 등 전시공간을, 거울은 큐레이터 평론가 갤러리스트 등 미술계 사람들을 상징한다. 2001년부터 14년간 활동해 온 두 사람이 만난 미술계의 인적 네트워크를 시각적으로 재현한 것인데 인터넷의 연결망처럼 복잡하고 화려하다.
미국 미디어작가 나탈리 북친과 일본의 미디어작가 2인조 유클리드는 뉴미디어 안에서 개인들이 익명화되는 모습에 주목했다. 북친의 ‘나의 치료약들’은 브이로그(영상을 업로드하는 블로그)에 자신의 정신치료 경험을 밝힌 사람들의 영상을 수집한 것이다. 여러 사람이 같은 말을 할 때마다 그 얼굴이 동시에 화면에 나타난다. 동일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집단의 이야기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유클리드의 영상 작품 ‘지문의 연못’에서는 개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지문들이 연못 속에서 몰려다니는 물고기 떼처럼 춤을 춘다. 관객은 자신의 지문을 연못에 넣을 수도, 다시 건져낼 수도 있다. 하지만 연못 속에서 떠도는 자신의 지문을 찾기란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뉴미디어 시대는 거대담론이 사라지고 단편적인 이미지만 난무하는 시대임을 지적하는 작품들이 있다. 인세인 박(박영덕)은 네온사인으로 만든 문자열 ‘이즘 이즈 미싱(Ism is missing)’, ‘이즘’과 ‘잊음’의 발음이 같다는 것을 활용한 언어유희를 통해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영국 작가 나타니엘 멜로스의 ‘우리집’은 영국 시트콤을 흉내낸 영상이지만 출연진들은 드라마 내용과 상관없는 엉뚱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전체 이야기는 하나로 연결되지 않는다. 뉴미디어 시대에 이야기는 통속화되고 파편화된다.
이 전시는 대안공간 루프를 이끌던 독립기획자 서진석이 3월 백남준아트센터의 신임 관장으로 임명된 후 첫 기획전이다. 서 관장은 “백남준 선생이 1980년대에 텔레비전이 통제의 수단인지 자유 확산의 수단인지 질문을 던졌다면 지금의 작가들은 새 미디어를 놓고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며 “다양한 각도에서 인터넷을 조명하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