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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경제씨]그들이 지주회사로 가려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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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경제씨]그들이 지주회사로 가려는 이유는

입력
2016.12.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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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마법 허용하지 말아야”

野 의원들 속속 법안 발의하고

내년부터 기업집단 자격 강화도

오리온, 매일유업, 현대중공업, 크라운제과, 경동가스, 일동제약. 업종과 규모가 제각각인 회사들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올해 들어 회사의 지배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바꾸기로 한 회사들입니다. 이들뿐 아니라 LG, GS, SK그룹 등은 이미 지주회사 체제를 갖췄고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도 지주회사 체제로 바꾸는 것을 적극 검토 중입니다. 도대체 지주회사는 뭐길래 많은 회사들이 지주회사로 변신하려고 애를 쓰는 걸까요. 이번 주제는 지주회사입니다.

복잡하고 위험한 재벌 지배구조의 대안

우리나라 대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얽히고 설킨 지배구조 탓에 어느 한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그룹 전체가 흔들린다는 점입니다. 계열사들끼리 서로 지급보증을 해주고 돈을 빌려오는 경우가 많아서 어느 한 계열사가 무너지면 지급보증을 한 다른 계열사도 무너지는 거죠. 지급보증이 없더라도 계열사의 위기를 못 본 체 하기는 어렵습니다. A→B→C→A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에서는 어느 한 계열사라도 무너지면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가 깨지니까요.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게 지주회사 체제입니다. 지주회사는 자회사들 지분을 소유하고 거느리는 것이 본업인 회사입니다. 그런 회사를 만들면 대주주는 그 지주회사만 소유하고 지주회사가 계열사들을 병렬식으로 지배하게 하면 적어도 어떤 계열사에 문제가 생겨도 그 계열사만 포기하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 지주회사 체제 안에서는 서로 지급보증을 하지 못하게 하고 모회사가 돈을 빌려서 자회사를 지원하는 걸 막기 위해 지주회사는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유지하도록 규제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재벌그룹의 지배구조 형태 가운데 가장 진화한 형태가 지주회사 체제입니다. 그러나 굳이 재벌그룹이 아니면서도 지주회사 체제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주주의 지배력 확보와 상속이 쉽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A, B 두 개의 회사를 각각 20%, 40%의 지분율로 소유한 대주주를 가정해 보죠. 이 두 회사를 아들에게 물려주면 그 과정에서 세법에 따라 상속재산의 65%(경영권 할증 요율 포함)를 상속세로 내야 합니다. 그러면 아들은 각각 7%, 14%의 지분만 갖게 되는데 그러면 특히 A회사의 경영권 확보가 어렵게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회사를 물려주기 전에 A, B 두 회사를 지주회사 체제로 바꾸면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됩니다. 즉 A와 B라는 회사를 각각 통째로 물려주지 않고, A와 B를 지배하는 지주회사를 하나 따로 만들어서 그걸 물려주자는 거죠. 비유하자면 자동차 두 대를 물려주지 말고 자동차 열쇠 두 개만 지갑 하나에 넣어서 물려주자는 겁니다. 그래도 그 자동차들을 모는 데 지장은 없는 반면 몸집이 가벼워지면서 상속세는 줄어들 테니까요.

인적분할 후 지주회사로 변신하면 지배력 확대 용이

실제로는 이렇게 합니다. A회사를 둘로 쪼갭니다. 이걸 인적분할이라고 하는데 자동차(사업회사)와 자동차 열쇠(지주회사)를 일단 분리하는 겁니다. 그리고 대주주는 자동차 열쇠에 해당하는 지주회사만 갖습니다.

그럼 대주주는 더 이상 열쇠 없는 자동차 본체는 필요 없겠죠? 그 열쇠가 빠진 자동차 본체(사업회사) 지분은 내다 팝니다. 그렇게 해서 생긴 돈으로 자동차 열쇠에 해당하는 지주회사 지분을 더 사지요. 시장에서는 자동차 열쇠보다는 자동차 본체를 더 비싸게 쳐주기 때문에 대주주가 자동차 본체에 해당하는 사업회사 지분을 팔아서 자동차 열쇠에 해당하는 지주회사 지분을 사면 지주회사 지분을 훨씬 더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지주회사 지분이 모자란다 싶으면 카드가 하나 더 있습니다. B회사 지분 40%도 지주회사에 팔고 그 대가로 지주회사 지분을 더 받아오는 겁니다. 대주주는 지주회사의 지분을 많이 갖는 게 목표니까요. B회사가 상장회사라면 대주주는 B회사의 주가를 더 끌어올려서 더 비싸게 팔기 위해 유망한 신사업을 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B회사는 지주회사의 소유가 되지만 대주주 입장에서는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지주회사가 어차피 대주주의 소유니까요. 자동차 본체까지 들고 있는 것보다는 몸도 가볍고 좋습니다.

지주회사 전환의 필수품 자사주

그런데 여기엔 걸림돌이 하나 있습니다. 자동차 열쇠와 자동차 본체를 그냥 분리하면 자동차에 시동이 안 걸린다는 겁니다. 대주주가 20%의 지분을 갖고 있는 A라는 회사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리하면 대주주는 지주회사 지분도 20%, 사업회사 지분도 20%를 갖게 되는 것까지는 좋은데 지주회사가 사업회사를 지배할 지분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그런데 A라는 원래 회사가 자사주(회사가 보유한 자사 주식)를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으면 이 걸림돌이 해결됩니다. 이걸 ‘자사주의 마법’이라고들 하는 데요. 이게 가능한 건 자사주는 원래 의결권이 없는데, 인적분할을 하는 과정에서 의결권이 부활되도록 현행법이 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A라는 회사가 자사주를 15% 보유하고 있었다면 A를 둘로 쪼갤 때 자사주 15%도 지주회사 자사주와 사업회사 자사주로 쪼개지는데요. 사업회사 자사주를 지주회사에 몰아주면 됩니다. 회사를 쪼개면서 자산을 분배하는 경계선은 대주주가 정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나라 대기업의 자사주는 이렇게 대주주의 경영권 승계 목적으로 종종 활용됩니다.

순환출자 등 불투명성 해소 위한 고육책

이런 불합리한 점이 있어서 1998년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걸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재벌그룹 계열사들간에 위험 전이를 막기 위해 지주회사 체제를 허용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벌그룹을 해체하지 않고 지배구조를 바꿀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주회사로 변신을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혜택도 줬습니다.

사실 대기업이 지주회사로 모습을 바꾸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대주주가 갖고 있던 사업회사 지분을 팔아서 지주회사 지분을 더 산다고 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대주주는 사업회사 지분을 팔고 나면 양도소득세를 무겁게 내야 합니다. 창업 후에 주가가 많이 올랐을 테니까요. 그 부담 때문에 지주회사로의 변신이 어려웠던 건데 정부가 그 세금은 그 지주회사 지분을 팔 때까지 안받는 걸로 법을 바꿔줬습니다. 대주주는 지주회사 지분을 어차피 팔지 않고 계속 보유할 것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양도소득세가 면제된 겁니다.

지주회사 체제는 지주회사가 자연스럽게 그룹의 컨트롤타워가 되고 특정 계열사의 위험이 그룹 전체로 전이되지 않으며 그룹 지배구조의 그림이 보다 단순 명확해진다는 이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자체가 투명하거나 민주적인 것은 아닙니다.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대주주의 지배력이 부풀려질 여지가 있고 지주회사 하나만 지배하면 되다 보니 그 지주회사를 아들딸에게 물려주는 과정에서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주가를 낮추거나 기업가치를 떨어뜨렸다가 다시 회복시키는 꼼수도 가능하게 됩니다. 다만 기존 순환출자보다는 더 투명하다는 겁니다.

최근에 갑자기 지주회사를 설립하려는 시도가 부쩍 늘어난 건 그 동안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허용하던 법률들을 하나하나 다시 조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지주회사를 계속 장려하고 허용한다는 입장이지만 최근 야당 국회의원들이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자사주의 마법을 부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법안을 속속 발의하고 있습니다. 인적분할 시에 자사주의 의결권이 부활되지 못하도록 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지주사의 전환이 사실상 힘들어지겠죠.

게다가 지주회사 전환의 각종 특혜가 적용되는 기업집단을 현재는 자산규모 1,000억원 이상이면 되던 것을 내년 7월부터 5,000억원 이상으로 바꿀 예정입니다. 재벌들의 순환출자를 막기 위해 고육책으로 도입한 지주회사 제도를 재벌도 아닌 중견 기업들이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지주회사 전환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으니 서둘러서 지주회사로 바꾸겠다는 게 요즘 기업들의 지주회사 설립 붐의 배경입니다.

이진우 경제방송 진행자(MBC 라디오 ‘손에잡히는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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