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통해 이기주의 급속 확산
비슷한 '그들만의 커뮤니티' 형성
견해 다른 무리에겐 배타적 성향
외국인 등 약자 혐오 현상 부추겨
추석 연휴가 끝난 30일. 20, 30대 여성들이 주로 찾는 한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는 시댁 식구와 명절을 보낸 며느리들의 경험담이 400여개나 올라왔다. 시어머니나 시누이와 다툰 이야기, 자신 편을 들어 주지 않는 남편을 성토하는 글이 게재되면 어김없이 맞장구를 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한 회원은 아예 ‘저랑 채팅으로 시댁 욕하실 분’이라는 제목을 올리고 시댁을 흉볼 사람을 찾기도 했다. 해당 카페를 즐겨 찾는 A(37)씨는 “남편과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말 꺼내기를 포기했다”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고 그들의 위로에 위안을 받는다”고 말했다.
비슷한 지위에 있거나 이해관계가 맞는 무리 안에서만 이뤄지는 ‘끼리끼리’ 공감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측은지심(惻隱之心)’같은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보편적 공감은 이제 옛말이다. 공감도 맘에 맞는 사람끼리만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가뜩이나 세대, 계층, 지역, 이념으로 쪼개진 한국 사회의 분절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 같은 배타적이고 선별적인 공감 세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자이자 소수자로 분류되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난달 시리아 꼬마 난민 아일란 쿠르디(3)의 죽음에는 누구나 슬퍼하면서도, ‘우리 안의 아일란들’을 되돌아보자는 자성적 움직임에 대해서는 일부 네티즌들이 극렬한 외국인 혐오를 드러냈다. 이들은 자신들의 커뮤니티 안에서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발의한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에 대해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법” “경제도 어려운데 불법 체류자까지 세금으로 도와야 하냐” 등의 논리를 주고 받으며 여론을 주도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창궐하던 지난 6월에는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의 극심한 여성 혐오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남성 혐오 움직임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해당 커뮤니티에는 “김치남들 하루 이틀 봐줬더니 XX한다” “수탉XX들 재수 없게 밤낮 없이 징징대고 앉았노” 등 거침없는 남성 비하 표현이 등장한다.
전문가들은 사회 양극화와 맞물려 집단ㆍ계층별로 사회가 분화되고 무한경쟁으로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는 것을 원인으로 꼽는다. 각박해진 현실로 인해 수많은 형태의 계층이 등장하면서 자신이 속한 계층에서만 동질감을 느끼게 됐다는 얘기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 계층에 따른 분화뿐만 아니라 지역ㆍ성별 등 다양한 층위의 공감 집단이 만들어져 그들만의 소통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미디어의 발달도 공감의 양극화에 한몫하고 있다. 과거에는 다른 의견이나 생각을 갖고 있어도 주변 시선을 의식해 이를 표현하고 공유하기가 어려웠지만 다양한 소통 수단의 출현으로 뜻을 모으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익명에 기반해 형성된 집단은 다른 견해를 가진 무리에 더욱 배타적 성향을 보이기 마련“이라며 “어느 정도 집단의 힘이 생기면 응집력을 높이기 위해 공격 수위를 올리는 등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기 쉽다”고 설명했다.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가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함인희 교수는 “서로 공감하는 집단의 범위가 작아질수록 사회 전체적으로는 소통이 줄어들고 결국 우리 사회를 폐쇄적 공간으로 만든다”며 “약자들을 품을 수 있는 여유와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관용과 배려를 생활화해야 이러한 부끄러운 모습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