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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폭스의 마라톤이 끝난 날, 세계인들의 마라톤은 시작됐다

입력
2015.09.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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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캐나다방송협회(CBC)가 벌인 ‘가장 위대한 캐나다인’설문조사에서 1위는 토미 더글라스(Tommy Douglas, 1904~1986)가 차지했다. 목사이자 사회주의 정치인인 그는 서스캐처원 주지사이던 1961년, 의사들의 완강한 저항을 뿌리치고 ‘포괄적 공공의료보장제도’를 도입했다. 연방정부는 5년 뒤 그의 포괄적 공공의료를 연방 정책으로 채택했다. 캐나다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의료복지국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캐나다 국민이 뽑은 두 번째로 위대한 캐나다인은 만 22년을 살다 간 청년 테리 폭스(Terry Fox, 1958~1981ㆍ사진)였다. ‘희망의 마라톤(Marathon for Hope)’으로 불리는 ‘테리 폭스 마라톤’의 주인공이다.

고교 시절 육상ㆍ농구 선수로 활약하던 그의 꿈은 체육교사가 되는 거였다. 그는 77년 사이먼 프레이저대 체육학과에 진학한 뒤 골육종으로 오른쪽 다리를 잃는다. 16개월간의 항암치료와 재활훈련. 그에겐 의족이 생겼다. 80년 그는 엄청난 계획을 세운다. 대서양 연안 뉴펀들랜드의 세인트존스에서부터 매일 마라톤 완주거리를 달려 서쪽 끝 빅토리아의 태평양에 닿겠다는 것, 기금을 모아 항암연구에 보태겠다는 거였다. 목표액은 2,400만 캐나다 국민 1인당 1달러, 해서 2,400만 캐나다달러였다.

그의 마라톤은 4월 12일 시작됐다. 의족에 쓸려 살갗이 벗겨지고 성한 발바닥도 금세 물집으로 엉망이 됐지만 그는 다리를 끌면서도 매일, 단 하루도 멈추지 않고 그날의 거리를 주파했다. 응원하는 시민들이 늘어났고, 한 기업이 자기 회사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달리면 거액을 기부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폭스는 자신의 행위가 영리에 이용되는 걸 거부했다고 한다.(‘테리폭스 재단’공식 기록에는 없는 얘기라 누군가 덧붙인 얘기일지 모르지만, 뭐 어떤가.)

9월 1일, 온타리오 주 선더베이를 지나던 그가 쓰러졌다. 기침으로 숨이 너무 가빠서였다. 진단 결과 폐암이었다. 1890년 오늘은, 그러니까 143일간 5,375km를 달린 그의 ‘희망의 마라톤’이 끝난 날이다. 하지만 그의 뜻을 잇는 세계인들의 마라톤이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테리 폭스 재단은 매년 그가 멈춘 9월의 하루를 ‘테리 폭스 런-데이(run-day)’로 정한다. 올해는 9월 20일이다. 캐나다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시민ㆍ학생들은 기록도 우승자도 없는 그날의 테리 폭스 마라톤에 기금을 챙겨 참여할 것이다.

폭스 기금은 81년 2월 2,400만 달러를 돌파했고, 그는 넉 달 뒤인 81년 6월 28일 숨졌다. 향년 22세. 재단은 지난해 총 기금이 6억 달러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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