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안희정 충남지사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불펜투수론’을 내세우며 짐짓 진중한 자세를 견지했다. 하지만 탄핵 정국으로 조기 대선이 점쳐지면서 안 지사의 행보가 사뭇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겨냥해 “정치 기웃거리지 마시라”며 날을 세우더니, 지난 3일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향해 정계은퇴를 촉구, 만만치않은 후폭풍을 일으켰다. 그는 일각에서 이른바 ‘차차기 대권 주자’가 아니냐고 비판하자, 4일 이를 부인하는 글을 SNS에 올리며 적극 대응하기도 했다.
그는 사실 충남도정을 통해 이미 대권 도전 의지를 내비친지 오래다. 그는 연안하구 생태복원과 미세먼지 대책을 비롯한 충남의 주요 현안을 정부에 제안하면서 국가운영 능력에 대해 상당한 내공이 축적되어 있음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해 9월, 9개 입법과제를 담은 ‘충남의 제안’을 발표했다. 입법과제는 화력발전소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비롯해 농업직불금 개선, 연안하구 생태복원, 전력 수급체계 개선 등 현안을 망라했다. 그는 정부와 국회가 이들 9개 입법과제의 해결 방안을 도출, 제도화 할 것을 촉구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 제안은 이른바 ‘안희정법’으로 불리우며, 사실상 대선 공약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역 현안의 해결 방법과 범위를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입법화를 통한 전국적 의제로 접근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대권 행보로 분주한 그는 다른 주자와 달리 현직 충남지사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자칫 대권 행보로 인한 도정 누수가 발생하면 큰 그림은커녕 맡은 일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인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속내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의식한 듯 “올해 도정 기조를 ‘위기에 대한 선제적 대응’에 초점을 맞췄다”며 “도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경제위기 조기경보시스템 구축, 지역현안의 국가 정책화와 안정적 도정 운영을 핵심 과제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대권 행보가 도정 누수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민감했다. 그는 대권 행보가 오히려 충남도 살림살이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서산 민항 유치를 통해 육지와 바다, 하늘 길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그는 2015년부터 서산시 및 공군 제20전투비행단과 공조해 민항 유치를 추진, 지난해 용역비 예산 반영으로 가시화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
그는 “이런 사업은 정부의 협조가 없으면 쉽지 않다”며 “일각의 걱정과 달리 대권 행보가 사업 추진에 활기를 불어 넣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도정 현안에 대한 대화가 이어지자 “눈 앞에 닥친 AI 확산 차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방역 강화는 물론 피해농가 보상과 생계 안정자금 지급, 축사 현대화, 동물복지형 축사 전환 등 농가를 보듬기 위한 근본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지난해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대산~당진고속도로 건설사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며 “이 사업이 이뤄지면 대산항 물동량을 원활하게 처리, 동맥경화에 걸린 서산 석유화학단지 입주기업들의 오랜 숙원 해결은 물론 충남도에 상당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4차 국ㆍ국지도 5개년 계획에 16개 지구(사업비 1조697억원)를 반영시켜 중단거리 교통망을 확충하는 사업도 주요 현안으로 꼽았다. 그는 “국도와 지방도가 개선되면 고속도로까지 아우르는 중단거리 도로의 접근성이 좋아질 수 밖에 없다”며 “장거리 대형화물의 이동성 확보 등으로 매년 621억원의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진ㆍ대산항 인입철도와 서해선 복선철도를 연계한 서해축 광역철도교통망 구축에대한 기대도 내놓았다. 그는 이렇게 되면 항만과 철도, 도로의 연결을 통해 충남 서북부지역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충남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꼽히는 석탄화력발전소의 미세먼지 저감 대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전국의 50%를 점유할 정도로 빼곡한 충남의 석탄화력발전소 미세먼지 문제는 전 국민의 문제”라며 “석탄발전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꾸준히 제기한 결과, 지난 연말 산업통상자원부와 석탄화력 발전 5사 사장단이 이행 협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이끌어 냈다”고 말했다.
그는 민선5기 때부터 추진한 ‘3농혁신’에 대해서도 변함없는 확신을 드러냈다. 그는“3농혁신의 핵심은 농업재정의 합리적 사용”이라며 “연간 15조원에 이르는 농업재정이 농업산업 발전과 농가소득 보전에 효과적으로 사용되도록 구조를 혁신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농업정책은 하루 아침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지난해 농민들과 치열한 논의 끝에 기존 농업보조금을 통폐합해 친환경생태프로그램 참여 농가에 충남형 농가소득보존지원금을 지원토록 합의한 것은 커다란 성과”라고 말했다.
이준호 기자 junh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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