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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구의역 사고는 우연이 아니다

입력
2016.09.0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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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5일 서울시청에서 지난 5월 구의역에서 일어났던 비정규직 청년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진상조사결과가 발표됐다. 서울시와 유족합의에 따라 이루어진 이 진상조사는 노ㆍ사ㆍ민ㆍ정이 모두 참여하여 이루어낸 성과였고, 국내에서는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였다. 서울시는 앞으로 제출된 권고안이 제시한 문제점들을 고쳐나갈 실행방안을 만들고 시스템을 개선해나갈 계획이다.

‘민’을 대표하는 조사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필자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으며 그것도 일 년에 한 건 꼴로 반복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주목하였다. 또 같은 문제가 계속 반복되는데도, 예방책이 마련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 주력하였다. 조사결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시스템 등 모든 분야에서 여러 문제가 똬리처럼 얽혀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선 무리한 의사결정으로부터 시작한다. 무려 1조원에 이르는 스크린도어 예산사업을 결정하는데 고작 1년 반도 걸리지 않았다. 스크린도어에 대한 기술표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계획된 시공을 1년이나 앞당기는 과감함까지 보였다. 기술표준이 없으면서도, 최초 시공은 시공경력에 대한 고려 없이 막대한 광고 혜택을 준 민간사업자에게 맡겼다. 오세훈 시장 시절에 있었던 얘기다.

두 번째는 전반적인 부실시공이었다. 졸속성은 시공부터 준공과정까지 계속 이어지는데, 제대로 된 감리나 시운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개통 첫해 넉 달 동안 수천, 수백 건에 이르는 장애와 부실시공이 확인되었다. 제대로 된 감리가 이뤄지지 못한 것은 기술력과 책임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며, 충분한 시운전을 하지도 않은 것은 계획된 준공 시기를 1년 앞당기면서 무리한 개통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스크린도어가 완공된 후 7년이 지난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크린도어 장애는 서울메트로, 도시철도공사 모두 연간 3,000~4,000건씩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장애가 빈발하면서 결국 스크린도어 유지보수를 해야 하는 노동자들을 무리하게 하였고,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리는 근본 원인이 되었다. 게다가 승객들은 보수 노동자보다 더 많이 피해를 입고, 심지어 죽음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운영과정에서도 문제가 많다. 서울메트로는 이 골칫덩어리 스크린도어 유지보수업무를 헐값에 위탁하였고, 도시철도공사는 정규직이 맡고 있다. 하지만 도시철도공사의 경우 보수 인력들이 더 중요한 신호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스크린도어 유지보수에만 매달리는 형편이다. 결국 서울메트로에서는 위탁용역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사망 사고가 이어지고, 정규직이 투입된 도시철도공사에서는 신호 장애라는 더욱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014년 서울메트로 상왕십리역 열차추돌사고가 신호 장애 때문에 발생한 최대 사고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서울시가 발 빠른 대응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관료적이고 미흡하다. 이런 위험을 막을 핵심 열쇠는 열차가 승강장으로 진입하거나 빠져나갈 때 스크린도어 고장을 감지하고 자동으로 서행을 하거나 멈출 수 있게 하면 된다. 그러면 승객도, 노동자도 다칠 일이 크게 줄어든다. 이는 기술적으로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열차가 좀 늦어지면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누구에게나 무척 안전한 일이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이번 구의역 참사 진상조사 결과, 스크린도어를 포함해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시스템 결함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안전은 결코 지켜질 수 없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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