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일하는 직원들 위로를”
지인 제안에 자필엽서ㆍ시집
검사 대상 특강 인연 떠올리며
“국민 한 사람으로 힘 주고 싶어”
‘감사, 더 깊어지고/ 사랑, 더 애틋해지고/ 기도, 더 간절해지는/ 아름다운 삶 이루어가소서!’
최근 광주지검에 이런 시가 적힌 편지가 도착했다. 이해인(71) 수녀가 검찰 직원들에게 삶을 노래하는 시 20여편을 손수 적어 보낸 것. 고소장이 날아드는 검찰청에 수녀는 무슨 연유로 편지를 보냈을까. 사연은 이랬다.
6년째 검찰 시민모니터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송련(58ㆍ여)씨는 주 2~3일을 검찰청 민원실로 출근한다. 전 재산을 잃고 억울한 마음에 10여년 간 매일 검찰청에 민원을 접수하는 60대 남성, 이미 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났지만 여전히 승소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두툼한 사건기록을 내미는 휠체어 탄 치매 노인, 글을 읽을 줄 몰라 자신이 왜 고소됐는지 묻기 위해 찾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송씨의 일이다. 여비도 나오지 않는 무보수 봉사직이다.
그렇게 가까이에서 검찰을 지켜보면서 송씨는 최근 비리 의혹 등으로 얼룩진 이미지와 달리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의 검찰 직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민원인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팩스를 추가로 설치하고, 수없이 반복되는 똑 같은 민원에도 귀 기울여주는 직원들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송씨는 “검찰이 비판을 많이 받지만 청사 안에서 들여다본 검사와 검찰 직원들은 무척 인간적이고 보통사람들과 같은 마음을 가진 집단이었다”고 말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송씨로부터 이런 말을 전해들은 이해인 수녀는 송씨가 보호관찰 대상 청소년들과 쉼터 거주자들에게 선물하겠다며 사온 130여권의 시집에 일일이 친필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작은 기도’ ‘작은 기쁨’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 ‘민들레의 영토’ 등 이해인 수녀의 시집들이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시라도 직접 적어 응원하고 싶다”며 엽서에 손글씨로 시를 적어 김회재 광주지검장과 구본선 광주지검 차장 등 검찰청 인사들에게 보냈다. 시집과 엽서라는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검사와 직원들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해인 수녀는 12일 한국일보에 “공동선과 정의구현에 수고하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간접적으로나마 감사하는 뜻을 전하기 위해 한마디씩 시구를 적어드렸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부산에서 검사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던 인연을 떠올리며 “검찰청이라면 다들 무섭고 딱딱하다는 인상을 받지만 시 한 줄에 그토록 기뻐하고 감동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며 웃었다. 이해인 수녀는 “검찰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작은 위로와 감사로 힘을 실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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