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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신년 트리(12월 28일)

입력
2017.12.28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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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 시내의 신년 트리. wikipedia.org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의 신년 트리. wikipedia.org

신년 초 러시아나 터키, 베트남 등지를 여행하는 외국인들이 보게 되는 거리의 트리 장식은, 미처 철거하지 못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아니라 ‘신년 트리(New Year Tree)’일 확률이 높다. 모양은 크리스마스트리와 다를 바 없지만, 신년 트리는 의미가 다르고 유래도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

1935년 12월 28일, 소비에트 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신년 트리’의 전통을 복원하자는 우크라이나 당서기 겸 소비에트 정치국원 파벨 포스티세프(Pavel Postyshev, 1887~1939)의 기고문을 실었다. “혁명 전 제정시대, 부르주아와 자본가 계급이 자녀들을 위해 신년 트리를 장식하는 전통이 있었다. 노동계급 아이들은 부잣집 아이들이 형형색색의 트리 주변에서 뛰어 노는 모습을 창 밖에서 지켜보며 부러워하곤 했다.(…) 왜 오늘날 학교와 고아원과 보육원, 청소년클럽과 청년궁전은 소비에트 노동자 아이들에게 그 즐거움을 선사할 수 없는가? 일부 극좌적 인사들이 그 전통을 부르주아적 퇴폐적 전통으로 과장한 것은 아닐까. 이제 그 그릇된 비난을 극복하고 아이들에게 기쁨을 선사할 때이다.”

신년 트리는 풍운아 기질이 다분했던 제정 황제 표토로 1세가 유럽 여행 중 독일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고 17세기 무렵부터 유행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러시아정교회는 트리 장식을 이교적 전통이라며 배격했고, 1차 대전이 터지면서 적국(敵國)의 전통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금기시됐다. 트리는 1917년 공산혁명 이후 반 종교 이데올로기 공세 속에 거의 잊히다시피 했다. 포스티세프의 저 주장은 가히 파격이었다.

시베리아 볼세비키 출신으로 25년 우크라이나 당권을 장악한 포스티세프는 30년대 우크라이나 대기근의 기획자이자 당원ㆍ각료 대숙청의 지휘자로서 ‘교수형 집행자’라 불리던 이였다. 스탈린의 신임이 도타웠던 무렵의 그의 저 주장은 큰 호응을 얻었고, 이듬해 초 모스크바 주요 학교와 소년궁전 등은 소비에트 체제의 약속인 양 화사한 신년 트리를 내놨다. 그렇게 러시아의 트리는 살아남았지만, 포스티세프는 지역 민족주의에 편승한 분파주의자로 몰려 38년 숙청돼 이듬해 처형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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