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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 분쟁지를 세계유산에… 유네스코의 강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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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 분쟁지를 세계유산에… 유네스코의 강단

입력
2014.06.23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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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일부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쿠차현의 수바시 사원 유적.
실크로드의 일부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쿠차현의 수바시 사원 유적.
세계유산에 등재된 팔레스타인 바티르 마을.
세계유산에 등재된 팔레스타인 바티르 마을.

세계유산 40년 만에 1000건 등재 돌파 쇼르단강 서안 바티르 마을, 로마때 조성 밭ㆍ관개시설 이용 이스라엘 장벽 건설로 분단 위기, 팔 등재 긴급 요청에 화답 中 실크로드ㆍ대운하, 日 도미오카 제사공장도 등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40여년 만에 등재 1,000건을 돌파했다. 남한산성 등재가 결정된 22일 1,000번째 유산으로 지정된 곳은 다양한 동식물 생태계로 유명한 남아프리카 보츠와나 습지대 오카방고 델타. 25일까지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이밖에도 문화유산 위주로 20여 건의 유산들이 새로 등재됐다.

올해 새로 등재된 유산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팔레스타인 마을 바티르. 베들레헴 근교에 있는 이 마을은 2,000년 전 로마 시대에 조성된 계단식 밭과 관개시설이 남아 있고 주민들은 아직도 이 관개시설을 공유해 올리브와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유산은 남한산성처럼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도록 잘 보존된 문화유산이 아니다. 위기에 처해 보호가 필요한 유산 목록에 올랐다. 이 마을을 가로질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테러를 막기 위한 장벽을 건설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2003년부터 안보상 이유를 내세워 요르단강 서안 지구 곳곳에 철조망과 콘크리트 장벽을 세우고 있다. 바티르의 경우 2년 전 이스라엘 고등법원이 이례적으로 장벽 건설 구간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판결해 주목 받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바티르의 세계유산 등재를 긴급 요청했고 유네스코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유네스코는 성명을 통해 바티르 마을의 등재 요청을 신속히 승인한 것에 대해 “마을 주민들이 수세기 동안 경작해오던 주변 농경지에서 고립될지 모를 분리장벽 건설”을 이유로 들며 이스라엘을 거명하지 않았지만 장벽이 건설되면 바티르 마을에 “돌이킬 수 없는 훼손”이 있을지 모른다고 평가했다.

팔레스타인의 등재 신청은 독립국가 건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제기구 가입에 적극 나선 자치정부의 전략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을 우선하는 미국은 현재 중단 상태인 협상이 결론을 내기 전까지 팔레스타인의 국제기구 가입에 부정적이다. 팔레스타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유네스코는 이미 3년 전에 팔레스타인의 회원국 가입을 승인했다.

그러자 미국은 팔레스타인뿐 아니라 유네스코에도 불만을 터뜨려 무려 22%에 이르는 유네스코 분담금 지원을 중단해버렸다. 유네스코는 새 사업을 중단해야 했고 출장비 등 온갖 경비를 아껴야 했다. 견디다 못해 그만 두는 직원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바티르 마을 세계유산 등재는 이런 형편에서도 미국의 입김에 굴하지 않겠다는 유네스코의 강단을 보여준 결정으로 느껴진다.

올해 유산이 등재된 나라 중에는 중국이 눈에 띈다. 세계유산 보유 건수가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인 중국은 유럽과 교역 및 문화 교류의 통로였던 실크로드, 세계 최대 인공수로인 대운하 두 건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실크로드는 중국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이 공동 신청했는데 옛 실크로드를 따라 세워진 궁전과 불교사원 탑, 사막 등 중국 22곳, 카자흐스탄 8곳, 키르기스스탄 3곳 등 모두 33군데의 유적을 포함하고 있다. 2,4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중국 대운하는 베이징에서 항저우까지 1,794㎞를 잇는 뱃길이다.

실크로드 말고도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에 걸친 3만㎞에 이르는 잉카인들의 안데스길이 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세계유산 중에는 이처럼 여러 나라에 걸친 유적도 31건이 등재돼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400여년 전 조선통신사 길을 우선 기록유산으로, 이어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일본은 메이지(明治)시기 비단실을 뽑아 내던 군마(郡馬)현의 도미오카(富岡) 제사(製絲)공장이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일본의 근대산업 유적이 세계유산에 등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일본이 또 다른 메이지 시기 산업혁명 유산으로 남부 규슈ㆍ야마구치 지역의 공장 유적들을 등재 신청해 놓고 내년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5개 현에 걸친 28개 유적에 한국인 강제징용자들이 일했던 나가사키 앞바다의 하시마(端島ㆍ일명 군함섬)가 포함돼 있다. 일본에서는 이번 도미오카 제사공장 등재로 같은 근대 유산인 하시마 등도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론과 한국 등의 반발로 어려울 수 있다는 비관론이 엇갈리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현황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현황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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