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시장과 증권가의 큰손으로 통하며 수천억원대의 이자수익을 챙겨 온 국내 최대 사채업자가 국세청의 고강도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세청은 이 사채업자와 거래한 코스닥 업체들에 대한 세무조사도 병행할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코스닥 시장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12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지난달 중순 사채업자 최모(58)씨의 서울 여의도 자택과 사무실, 친인척 집 등 10여 곳에 대해 예치조사를 실시했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국세청의 중수부'로 불리며 예치조사는 검찰의 압수수색과 같은 개념이다. 국세청은 예치조사를 통해 최씨의 비밀금고 2개를 확인, 최씨가 지난 5~6년간 각종 업체와 거래한 비밀장부와 차명거래 내역이 적힌 통장 등을 확보했다.
국세청이 확보한 자료에는 최씨에게서 돈을 빌린 코스닥 업체와 비상장업체 100여 곳의 리스트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리스트에는 거액 불법대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전일저축은행과 유명 엔터테인먼트 회사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들이 다수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최씨가 돈이 필요한 업체들에 최소 50억~60억원, 최대 500억원을 빌려 주고 하루에 이자 수억~수십억원을 챙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업체들은 이른바 '찍기' 방식으로 돈을 빌렸다. 찍기는 업체가 거래은행에 현금시재를 제시할 필요가 있을 경우나 유상증자를 받은 것처럼 위장할 때, 회계감사시 자금 사정을 속이기 위해 일시적으로 현금을 조달해 채워 넣는 것을 가리킨다. 최씨 주변 인사들은 "최씨는 100억원을 빌려 주면 다음날 원금을 포함해 3억~5억원 정도를 이자로 챙겨갔지만 세무신고는 전혀 하지 않았다"며 "돈을 빌린 업체들은 횡령 등 문제가 있는 기업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국세청은 최씨에게서 돈을 빌린 업체의 탈세나 횡령 혐의가 확인될 경우 관할 세무서에 통보해 추가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될 경우 검찰에 수사를 의뢰할 방침이다.
최씨는 무등록 대부업소를 차려 연리 300% 이상의 고금리로 돈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최씨가 이런 식으로 최근 5~6년 동안 거래한 금액만 6조원 정도로 추산되며, 국세청에 신고하지 않은 이자수익이 1000억~2000억원 정도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가 끝나는 대로 최씨를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다.
사정당국은 최씨가 수년 전 소위 타짜들을 고용해 사기도박으로 벌어들인 수십억원을 종자돈으로 사채시장과 증권가로 진출했으며, 현재도 전국의 도박판을 장악하며 전주 노릇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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