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열기가 뜨겁고 성령님이 이 자리에 임하신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저는 교육자도 아니고, 평신도가 이 자리에 올라와서 과연 무슨 말씀을 드려야 될 지 제 가슴이 떨립니다. 특별히 우리 전부 다, 우리 여성, 자매님들이기 때문에 더 마음이 떨립니다.
저한테 무엇을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기도할 것이냐, 그것을 한 번 30분 동안 하나님 뜻을 한 번 전해 달라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짧은 지식으로 우리 자매님들과 함께 30분 짧은 기간이지만 30분 동안 나눠볼까 합니다.
제가 준비를 하는데 ‘출애굽기 19장 4절’ 말씀이 저한테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한 번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이 두 사람에게 행한 일을 너희가 직접 보았고, 독수리 날개 얹어 나르듯 내가 너희를 내게로 데려온 것을 보았다.’
그 다음에 또 한 번 읽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너희가 내게 온전히 순종하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 특별한 내 보물이 될 것이다. 온 땅이 다 내 것이지만’
여기서 제가 이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가슴에 와 닿았던 것은 ‘독수리 날개에 얹어 나르듯이 너희를 내 앞에 가져왔다.’ 하는 말씀하고, ‘너희들이 내 특별한 보물이 될 것이다.’ 그런 말씀이었어요.
제가 한국 역사를 이렇게 공부하면서 정말로 우리 한국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야, 진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독수리 날개에 얹듯이 얹어서 그 어려운 세상에서 여기까지 끌고 오셨구나. 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 ‘내 민족을, 이 대한민국을 내 보물로 삼겠다.’ 하는 말이 ‘아, 이게 진짜 하나님이 우리를 보물로 삼으려고 우리를 이렇게 보호해 주시는 구나.’ 하는 것을 제가 느꼈습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으로 제가 잡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러면 뭘 기도를 할까’ 하면서 생각을 해보니까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무슨 기도를 했을까 그런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무슨 기도를 했을까 하고 제가 한 번 책을 여러 군데를 한 번 들쳐봤습니다.
사실 우리 개신교가 시작된 것은 1880년대부터 시작이 됐습니다. 그 이전에 가톨릭이 조금 있었지만, 실제로 개신교가 들어온 것은 선교사님이 우리나라에 들어오신 것, 즉, 한미 수호조약을 맺었던 1882년 이후에 개신교가 우리 한국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그때 우리 선조들, 그러니까 1880년대 우리 선조들은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기도했을까 하는 것이 제가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대표적인 사람을 두 사람을 골라봤습니다.
한 사람은 윤치호라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잘 아실 거예요. 윤치호라는 분은 1881년에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만국신사관람단인가를 처음 조직해서 미국으로 갔던 사람이에요. 거기에 한 수행원으로 갔어요.
그리고 가서 그 다음에는 미국의 벤더빌트대학이란 데를 또 수학을 했어요. 그때가 언제냐? 1880년대에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130년 전입니다. 그러고 돌아와서는 이 나라 독립을 위해서 독립협회를 만들었고, 그리고 독립신문을 운영했습니다.
그러고서 쭉 지내고서 YMCA 회장도 맡고, 쭉 이러면서 105인 사건이라고 기독교 우리 신자를 중심으로 한 그런 반일운동이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감옥살이까지도 했어요.
그런데 이 양반이 1938년 이후에 일제가 너무 탄압이 심할 때 일제에 일종의 친일을 했다 그런 저기를 받아서 결국 해방된 이후에 1년인가 2년 살다가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런 분이 그러니까 우리 1880년대 초창기 나라를 위해서 이 사람은 무슨 기도를 했을까.
하는 윤치호라는 분을 제가 한 번 살펴봤고, 또 한 분은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이승만 대통령.
그 두 분을 한 번 그러면 그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윤치호 우리 선생님보다는 조금 연한데, 이 양반들이 그러니까 우리 개신교로써는 굉장히 우리 선조라고 해당할 수 있고, 또 그 당시 굉장히 높은 자리에 있었고, 그런 생각을 하니까 이 양반들 기도를 따라가 보면 우리도 또 무슨 기도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생각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제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 당시 한국, 조선이라는 나라는 엄청나게 부패하고, 엄청나게 또 먹을 것이 없고, 엄청나게 가난했던 나라입니다.
선교사들이 와서 보고를 한 것이 있어요. 그것은 1830년대에 선교사가 피츨나프라는 분들이 한 번 오셨어요. 이 사람은 독일 개신교 선교사였습니다. 몽금포로 와서 한국에 와서 문을 열고 우리 개항하고 선교를 좀 하게 해 달라. 그런데 조선에서는 내쫓아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1874년에 마리 왜방 선교사의 달래신부라는 분이 왔습니다. 이 분도 와서 문을 두드렸는데 우리가 열어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한국을 당시 보고 간 거예요. 그래서 리포트를 했어요. 책을 썼어요. 북경 가서. 거기 보면 우리 조선이 잘 나타나 있어요. 제가 잠깐 읽어드리겠습니다. 아주 요약하게
‘조선 사람들은 굉장히 불결했다. 끔찍한 거처에서 살고 있었다. 피부는 때로 덮여서 이가 득실거렸다.’
이게 조선 사람의 특징을 얘기한 거예요. 선교사가 와서 짧게 보고 간 다음에.
그 다음에 왜방 선교사 달래신부는 또 어떻게 봤느냐? 어떻게 병기고를 가서 본 모양이에요. 어느 조그만 데에. ‘병기고 속에는 무기도 탄약도 없었다. 다 팔아먹은 듯하다. 대신에 고철 나부랭이, 헌옷만 갖다 놓았다. 아전과 수령은 그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다 수탈했다. 백성은 곤궁해서 서해안에서는 어린 딸을 쌀 한 말에 팔고 있었다.’
이게 리포트를 한 거예요. 북경에 가서.
그러니까 조선말에 이 나라 상황이 얼마나 형편없었던지 여기 그대로 지금도 책에 나와 있습니다. 공양미 3백석 절에 바치고 눈을 뜨게 한 심청이 알잖아요? 심청이가 쌀에 팔려갔잖아요. 그래도 심청이는 3백석에 팔려갔으니까 그래도 다행이에요. 우리 지금 그 당시 서해안에 있는 딸들을 부모들이 파는데, 쌀 한 말에 중국 사람들한테 팔았단 말이에요. 이렇게 조선이 형편없는 나라였습니다.
서울은 그러면 어땠느냐? 서울이 그 당시 한양에는 비숍여사가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책을 썼어요. 한 1년 반 2년을 조선을 방방곡곡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책은 지금도 다 여러분이 구해볼 수 있습니다.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1894년에 이 사람이 와서 쭉 돌아봤는데, 이 사람도 역시 30년 전하고 똑같은 리포트를 냈어요. 책을 똑같이 냈어요.
왜냐? ‘조선 사람처럼 불결한 데 사는 사람이 없다. 조선 사람처럼 더러운 사람이 없다.’ 이 사람이 동네에서 일본 지역에 가봤는데, 일본 사람이 사는 지역을 가봤는데, 일본 사람 동네에 사는 부산 동네에 가보니까 얼마나 깨끗한지 모릅니다. 그때만 해도. 동네에. 부산 동네에.
그런데 바로 그 일본사람 거주 지역을 벗어나면, 조선 사람이 사는 동네에 가보면 더럽기가 한량이 없다. 서울을 올라와서, 한양을 와서 보니까 한양은 웬 그런 냄새가 많이 나느냐는 얘기에요. 도랑, 하수도도 없고, 상수도도 없고. 그런 우리 한양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냥 길거리마다 누런 도랑물이 막 흐르고, 냄새가 코를 찌르고. 그런 것이 조선이었습니다.
여러분, 그 당시의 사진들 많이 봤을 거예요. 서울 도성, 한양 도성이 어떻게 됐는지. 다 성벽이 다 무너졌어요. 여러분, 서소문이 저희 회사 근처인데, 서소문 지하도를 한 번 가보시면, 옛날 서소문 당시의 모습 1890년대의 모습이라고 사진을 찍은 게 있어요.
그러면 그 도성, 성 있잖아요. 한양 성. 한양 성이 다 무너졌어. 그 안에 초가집이 있는데, 초가집 초가 이영을 못해서 초가가 다 빠져나가 있어. 그런 것이 한양이었어요.
1890년대의 한양이었어요.
이게 우리나라가 진짜로 변변치 못한 나라였습니다. 이런 나라였으니까 너무나 힘이 없는 나라니까 일본한테 뺏기게 됐죠.
이럴 때 윤치호라는 사람이 외국, 미국을 갔다 왔습니다. 그러면서 이 나라를 어떻게 구해야 되나 하고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윤치호라는 사람은 매우 머리가 좋은 사람이어서 그때부터 자기가 죽을 때까지 일기를 매일 썼어요. 그래서 ‘윤치호 일기’라는 책이 있어요. 여러분, 사 보실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건 한글로 쓴 게 아니고 영어로 썼어요. 대단한 분이야. 그러니까.
우리 여러분, 저도 미국서 7, 8년 살고 다 그래봤지만 영어로 일기를 쓰다니. 그 당시, 130년 전에. 그러니까 머리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매일 영어로 썼어. 왜 영어로 썼을까? 하고 뒤에 학자들이 그것을 캐봤어요. 그랬더니 혹시 누가 보고 자기 마음에 불충되고 이런 것을 혹시 들킬까봐 다른 사람 모르게 영어로 썼어요.
그래서 지금 역사학자들이 그 영어 다 번역해서 ‘윤치호 일기’라는 책을 냈습니다. 거기에 윤치호의 일기를 읽어보면, 재미있는 구절이 너무 많아요. 몇 십 년 동안 조선의 얘기를 다 쓴 것이니까.
다 얘기를 해 드릴 수가 없어요. 저한테 30분밖에 안 줬기 때문에.
딱 그 당시 얘기를 몇 가지만 해드리겠습니다. 그 당시 고종과 민비, 우리가 소위 명성왕후라고 해서 떠받드는 요새 무슨 그런 것이 있잖아요. 명성왕후와, 그러니까 민비와 고종을 얼마나 욕을 했는지 몰라요.
고종대왕과 민비는 이것은 이 사람이 쓴 것이지, 제가 한 얘기가 아니에요.
그때는 무당, 무당굿하고 점쟁이, 이것에 빠져 들어갔어요. 그래서 그 덕수궁, 덕수궁 주변에는 점쟁이집, 무당집이 드글드글 했대요.
그래서 제가 조금 후에 얘기하려고 그러는데, 1905년에 러-일 전쟁이 일어났어요. 러-일 전쟁이 일어났는데, 그때는 이미 민비가 시해됐을 때야. 그리고 고종밖에 없을 땐데, 아마 엄비하고 살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때 지금 제물포, 인천에서 일본하고 러시아하고 함포사격을 하면서 싸웠어요. 그러면 그 나라 임금이, 우리나라 왕이 ‘내 나라, 내 땅, 내 바다에서 지금 다른 나라 외국배들이 와서 저 군함들이 전쟁을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얼마나 걱정이 많겠습니까? 그러면 뭘 좀 수단을 강구해야 될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뭐 했느냐? 무당들을 불렀어요. 점쟁이를 불렀어요. 왕궁으로. ‘어떻게 하면 되느냐?’하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왕궁 기둥 밑에 솥을 묻으면 우리나라가 안전합니다. 그래서 실제 솥을 묻었어요. 그때 1905년 러시아 전쟁 때.
1904년 러시아 전쟁 때 실제로 그랬어요. 그렇게 왕궁, 우리나라는 피폐하고 도처에 먹을 게 없어서 딸들은 쌀 한 가마니에 팔려 가는데, 왕은 무당 끼고, 점쟁이 끼고 그러고 백성이 서울, 한양 시내가 코를 찌르듯이 악취가 풍기는데 그런 것 아무 관심 없이 그런 짓을 하고 살았단 이거예요.
그래서 그 한 번 그 사람 일기에 얘기된 것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민비와 고종은 무당에 빠졌다.’ 하고서 지금 얘기하는 그 얘기가 쭉 있습니다.
그러면 양반은 왕이 그렇다면 그 당시 양반은 어땠느냐?
‘양반은 수저를 들고, 붓을 드는 것 이외에 자기 손으로는 아무 것도 안 하려고 그랬다.’
양반은 일을 안 하려고 그랬어요. 아무도... 무슨 일도 안 하고, 아무 일도 안 하고, 숟가락으로 밥 먹고, 붓글씨 쓰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안 했다. 이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 일기에 ‘민영익’이라고 있죠? 민비의 친척. ‘민영익’이라는 사람은 일을 안 하니까, 일할 필요가 없으니까. 왜? 양반이니까.
그 당시 이제 시계가 처음 나왔어요. 시계가 나와 가지고 시계를 가지고 다니는데, ‘양반이 어떻게 시계를 차나? 그 무거운 걸.’ 그래가지고 자기가 가면, 자기 하인한테 ‘네가 시계를 차라.’
양반이라고 시계를 안 차고, 하인한테 시계를 채워 보냈어요.
고종은 거기 외교관들을 불러서 테니스를 했어요. 구경을 하면서 ‘아니, 저 사람들이 왜 저러느냐? 저런 것은 하인들을 시키지 왜 땀을 저렇게 흘리느냐?’ 이런 나라였어요.
백성은 어땠느냐? 그러면.
백성은 이것도 거기, 일기에 쭉 나오는 얘기에요.
‘열심히 일하기보다 남의 수고에 얹혀살려고 했다. 조선 민족은 너무나 자립심이 부족하다.’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 당시에 우리가 조선, 지금부터 120년 전, 130년 전의 조선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가 있어요.
그러면 이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이 나라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되겠느냐?
이 사람은 철저한 기독교 신자였어요. 마지막까지 신앙을 놓치지 않았어요. 1946년에 돌아가셨나 그런데, 끝까지 신앙을 붙들고 계셨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일기에 쓴 것을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조선의 급선무는 국민의 지식과 견문을 넓히고, 도덕과 신의를 가르치며, 애국심을 기르는데 있다. 조선의 교육을 도와주며, 백성의 기상을 회복시킬 수 있는 길은 예수교밖에 없다.’
이것이 1889년에 쓴 어떤 날의 일기에요.
그 다음에 아까 제가 조선 민족이 일하기 싫다는 것. 다 게을러서 백성이고, 양반이고 다 일을 안 하는 거야.
‘조선은 노동을 수치라고 안다. 노동은 수치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조선의 미래가 노동에 의존한다는 것을 배우고, 기독교는 노동의 종교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1895년에. 그 당시에 아무도 일하려 그러지 않았어요. 이 사람 돈이 많은 양반집이었어요. 그런데 자기가 열심히 도와주려고 자기 집에다가 벽돌 학교를 세우고, 개성인가 어디에서 학교를 세웠어요.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사람들을 모아서, 우리 젊은이들을 모아서 일을 시키려고. 그래서 일을 시켜서 다 불러서 ‘여기 벽돌을 좀 쌓자.’ 그런데 조선 사람이 일을 안 해. 안 하는 거야.
‘왜 안 하느냐?’ 하니까 그 당시 일당을 아마 80전을 준 모양이에요. 일당이 적다고 일을 안 하는 거야. 조선 사람은.
그런데 누가 그러면 와서 일을 하느냐? 그 당시도 아마 중국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에요. 중국 사람들이 와서 다 일을 다 뺏은 거야.
그러니까 이 사람이 와서 통탄을 하는 거야. ‘아니, 어떻게 조선 젊은이들은 이렇게 일을 안 하느냐?’ 이거예요.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일자리를 만들었는데, 왜 이렇게 안 하느냐? 다 중국 사람한테 뺏기는 구나.’
지금도 사실은 마찬가지이죠. 지금도 우리 일자리, 젊은이 일자리 없다고 그러지만, 사실 눈높이만 조금 낮추면 일자리가 얼마든지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 젊은이들, 웬만한 일자리는 다 안 가려고 그래. 꼭 대기업 가야되고. 그런 것만 생각한다 이거예요.
나는 이런 것이 혹시 우리 피에 그런 것이 좀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좀 들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 사람의 생각은 무엇이냐? 이 사람은 유교라면 아주 치를 떨게 싫어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공산주의, 그러니까 일하기 싫어하고.
그래서 이 사람 얘기가 한국 사람은 ‘공산주의를 좋아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왜 그러냐? ‘일하기 싫어하고, 남이 한 것만 뺏어 먹으려고 그러니까 한국 사람은 체질적으로 공산주의가 하기 좋게 되어 있다’ 이렇게 쓰여 있어요.
공산주의라면 아주 싫어한단 말이에요. 이 사람은 자유, 그 다음에 인권, 그 다음에 개인의 개인주의, 평등. 이런 것이 가장 소중한 가치인데, 그런 가치는 기독교에서밖에는 구할 수가 없다. 그렇게 얘기를 한 사람이었어요.
그 다음에 이승만으로 한 번...
이승만은 그러면 어떻게 했을까? 이승만은 이것보다 한 10년, 20년 뒤에 활동했던 사람이에요.
이승만은 여러분이 잘 알지만, 1906년대 초반에 독립협회라는 것을 이 사람이 운동을 했어요. 그래서 감옥을 한 5년쯤 감옥에 갇혀 있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처음에는 과거를 보려고 준비했던 사람이요. 그런데 과거 가지고서는 이 나라를, ‘과거시험을 가지고서는 이 나라를 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신학문이라는 것에 대해서 눈을 떴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어디로 갔나? 배재중·고등학교를 다녔어요. 배재학교. 배재학교를 이 사람이 다녀서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야, 이것이 참 대한민국을 바꿔야, 조선을 바꿔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 조선은 민주주의 나라를 만들어야 된다. 공화주의.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은 지금 뭐죠? 헌법에 뭐라고 되어 있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 사람이 110년 전에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나라와 공화주의 나라로 만들어야겠다.’ 하고 1900년에 이렇게 떠들고 다녔어요.
고종이 좋아하겠어요? 고종이 ‘아, 이놈 안 되겠구나.’ 해서 잡아넣었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4년 한 반 동안을 형무소에, 유치장. 형무소에 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무소에 가 있으면서 이승만이 기독교 신자로 완전히 바뀐 거예요. 물론, 배제학교 다닐 때 선교사의 설득도 있었지만,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래서 그 감옥생활을 이렇게 적어 놓은 책이 있는데. 이승만 전기 같은 것을 보면. 참으로 놀라워요.
왜 놀라우냐? 이 사람이, 이승만이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에 반드시 일어나면 기도를 하고, 그 다음에 하루 종일 성경을 읽고, 저녁에 자기 전에 또 기도를 하고. 이런 것을 계속 4년 반 동안을 계속 한 거예요.
그것만 했느냐? 안에서 성경번역을 했어요. 성경번역만 했느냐? 거기서 전도를 했어요. 전도를 했는데, 얼마나 전도의 폭발력이 있는데, 죄수들이 그냥 다 빠져 들어가는 거야. 그런데 죄수뿐이 아니고, 간수들도 다 와서 그 전도하는 것, 설교하는 것, 성경 말씀하는 것을 들었다. 이렇게 다 되어 있어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여기서 감옥소에서 40명을 소위 전도를 했대요. 완전히 하나님한테 오게 했어요. 그러니까 선교사들이 깜짝 놀란 거야. 아니, 자기들은 말이지요. 일본이나 중국에서 기독교 신자 한 사람 바꾸는 것이 그렇게 힘드는데, 이승만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감옥에서도 40명이나 이렇게 전도를 해서 이렇게 개종을 시키느냐 말이야. 그래서 굉장히 관심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승만의 마음에도 이 나라를 살리는 길은 뭘까? 하면서 자기가 매일 기도하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기도하면서 이 사람이 독립심...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집필했는데, 거기가 구한말의 정세, 미국 독립선언서는 어떻게 내용이 무엇이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무엇이다. 이런 것을 쭉 했는데, 마지막, 맨 마지막 구절이 여기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한 번 사실증명을 위해서 읽어드리겠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썩고 쓰러진데서 일어나려면 기독교를 근본으로 삼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를 모든 일의 근원으로 삼아 나라를 위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우리나라를 영국이나 미국과 동등한 수준의 나라에 이르도록 최선을 다해야 된다.’
이승만의 ‘독립정신’이라는 책 마지막의 결론이 이것입니다. 이거야.
그러니까 그 두, 우리 믿음의 선조. 저도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라고 해당할 수 있겠죠. 할아버지, 할아버지들이 처음 믿음을 갖고 나라를 위해서 기도한 내용들이 사실은 이것과 일치한다. 제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기독교가 얼마나 그 당시, 썩어져 가는 조선에 얼마나 새 바람을 일으키고, 새로운 희망이었는지.
여러분, 함석헌 옹이라고 아시죠? 돌아가셨지만 함석헌 옹이 ‘뜻으로 본 한국사’라는 책을 썼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읽으신 분은 있을 거예요.
그 분이 그것에 대해서 또 쓴 게 있어요. 이 분이 그 책에 쓴 거예요.
‘찌질이도 못난 조선말 모두의 마음이 헛헛해지고 텅 비어 있을 때 고종과 민비는 무당을 들이고,’ 그러니까 무당을 그때 아마 무지하게 들였던 모양이야. 책마다 무당을 들였다는 얘기가 쓰여 있으니까.
‘곳곳에 선비는 말라비틀어진 유고를 붙들고 있을 때 기독교가 이 나라에 들어왔다. 새 정신이 들어온 것이다. 귀가 번쩍 뜨였다. 눈이 환해졌다. 그렇다. 5,000년 만에 들어온 새 정신이었다. 조선인 마음에 등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다. 그 분이 점점 민중의 마음속에 퍼져갔다. 조선에서 가장 천대받던 평안도 민중으로부터 퍼져나갔다.’
기독교가 제일 처음 전파된 데가 평양으로 해서 평안북도로 선천, 이런 데로 올라갔잖아요.
‘그래서 평안도 민중으로부터 퍼져 나갔다. 기독교가 오지 않았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비틀어지고 베베 꼬인 깡마른 조선의 나무에 생명의 물이 초봄의 버들가지처럼 올라왔다.’
이것이 ‘뜻으로 본 한국사’에서 당시 우리 기독교가 하나님을 믿는 우리 이 믿음이 어떤 것, 조선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라는 것을 한 마디로 얘기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1912년을 보니까 1명도 없던 신자가 한 15년, 20년 만에 25만 명이 되고, 예배당이 500곳이 되고, 기독교 학교가 960개가 됐습니다.
그리고 모든 기독교, 교회에서는 뭘 가르치느냐? ‘놀음하면 안 된다, 술 마시면 안 된다, 담배피면 안 된다.’ 그 대신 조선 민족은 뭘 해야 되느냐? ‘금연해야 된다, 자립정신을 가져야 된다, 정직해야 된다, 교육을 시켜야 된다’ 이렇게 강조를 했어요.
윤치호가 그런 것과 연관되어서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우리 다 여성, 마리아 행전 아닙니까?
‘조선의 여성교육이 성공한 것은 예수 덕분이다.’ 그리고 또 ‘미국의 신앙과 돈이 없었다면, 누가 조선에 병원과 학교를 세웠겠는가!’
그러면서 기독교 당시 1800년대 말에서부터 1910년, 나라가 망할 때까지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하나님 아래서 이렇게 기도를, 이런 기도를 하면서 사셨다. 하는 것을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1910년 되면 나라가 망하잖아요. 일본한테 우리가 먹혔습니다. 그러면 ‘야, 이것 도대체 뭐냐? 기도가 도대체 어디 갔느냐? 그 사람들이 그렇게 기도했는데, 조선이 왜 망했느냐?’ 하고 물어볼 수가 있잖아요.
물론,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500년 동안 썩은 나라에서 단 10년, 단 20년에 그 나라가 힘이 있어질 수 있겠습니까? 안 되는 거야. 너무 시간이 없는 거야. 하나님이 이것을 생각하니까 불쌍해 이 나라가.
그래도 일본한테 먹힐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일본한테 먹혔습니다. 먹혔는데, 이 먹혀서 우리나라 백성들이, 기독교인들이 계속 3.1운동은 계속하지 않았어요? 3.1운동 33인 중에 16명이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하여튼 기독교 사람들은 그 당시 모든 교회, 학교, 병원, 이런 것을 통해서 우리 실력 양성하자. 나라를 뺏겼으니까 실력 양성하고, 우리 또 열심히 근면하고, 술 먹지 말고, 담배 먹지 말고 그 돈으로 애들 교육시키고 그렇게 하자. 그런 것 여러분 위에 우리 선조들이 다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고 가다 보니까 일본은 더욱더 강해지는 것 같아. 만주를 침공하고 중-일 전쟁이 일어나서 중국을 막 침공해서 먹고, 태평양 전쟁까지 막 일으키는. 미국을 상대로 싸우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야, 이것 큰일 났구나. 일본이 영원히 조선을 지배할 것이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탄압을 의심합니다.
그러니까 ‘아, 안 되겠구나. 얘들이 자꾸 회유를 하는데 어떻게 하나? 할 수 없지.’ 그냥 못 이긴 체 하고 할 수 없이 끌려가듯이 끌려갔던 사람이 윤치호 같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결국은 해방 후에 친일이라고 몰렸던 것이 그런 것 때문입니다.
하여튼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는 아주 절망 상태에 빠져 있었어요. 모두가 다. 아무도 독립이 될 줄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정말로 뜻밖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해방을 주신 거야. 미국한테 일본이 패배했기 때문에 우리한테 거저 해방을 갖다 준 거야.
최남선씨가 그때 이렇게 얘기했어요.
‘까마득하던 조국의 광복이 뜻밖에 얼른 실현되었다.’
우리 조상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우리는 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뜻밖의 해방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해방을 주신 다음에 어떻게 됐습니까? 우리나라 독립이 됐죠. 독립이 된 다음에 1945년에서 1950년까지 나라가 어떻게 됐습니까?
1950년은 6.25입니다. 6.25 때 우리가, 이 나라가 완전히 뭉개졌어요. 그러면 이것 어떻게 합니까?
이 나라는 독립을 하나님이 진짜 뜻밖에 주셨는데, 우리가 그 독립을 잘 이용하지 못한 거야. 우리 잘못이야. 그런데 이때에 우리 조상은 어떻게 기도했을까?
제가 여러분, 손양원 목사님이라고 아시죠? 여수에서 애양원을 운영하시고. 문둥이 촌입니다. 문둥이라고 하면 안 되죠. 나병환자. 나병환자촌인데, 저도 가봤어요. 가봤는데, 거기 쫙 사진도 걸려있고 그런데, 진짜 목사님이 그 나병환자 발을 입으로 빨고 있어. 고름을 입으로 빨고 있어.
그렇게 하고 1941년에 우리나라 신사참배 거부했습니다. 목사님이라고 ‘난 안 한다.’ 해서 4년 동안 감옥소에 가 있었어요. 그리고 해방이 됐어. 기도를 얼마나 했겠어요? ‘이야, 잘 됐구나. 해방이 됐구나.’ 그런데 우리나라는 또 좌우로 갈라져서 싸우는 거야.
그래서 손양원 목사님이 그때 어떻게 기도했을까? 하는 것을 제가 손양원 목사님 저기를 한 번 봤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설교집이 있어요.
‘이제 해방이 됐으니 과거를 깨끗이 정리하고, 민족끼리 담합하여 우리 민족정신을 찾아 살아보자. 시기나 섬이나 땅파짓는 일이나 거짓말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지 않은가. 서로 불쌍히 여기고 도와가며 한 식구처럼, 내 집안처럼 살 수 있지 않은가.’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기도를 하면서 크리스천인은 어떻게 되느냐? 그러면 크리스천인에 대해서 이 사람이 한 얘기를 또 간단하게 읽겠습니다.
‘정계에 나간 기독자들’ 그러니까 크리스천인이죠. 기독자들은 기독교를 이용하려고만 말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 된 정치를 하고, 교육계에 나간 기독자는 학생들에게 지식만 가르치려 하지 말고, 지식의 근본인 여호와를 가르치고, 경제계에 나간 기독자는, 크리스천인은 자기 이익만 구하지 말고 정식한 상도를 세워 만인에 편의를 주는 일을 최선을 다하고, 의학에 나선 사람은 병자를 이용해서 돈 벌려고만 하지 말고, 의사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병으로 신음하는 이들을 고쳐주고, 위로해 주며, 육신병뿐 아니라 영혼의 병도 고쳐주고. 공무원들, 관공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권세나 부리지 말고 만인의 종’ 공복이죠. 공무원. ‘만인의 종이 되어 봉사하기를 그리스도가 제자 발 씻기듯이 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되면 행복한 국가에 이를 것이다.’
이것이 그 당시 손양원 목사님의 기도, 설교예요. 설교집에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도를 이렇게 꼭 하셨을 거야. 손양원 목사님은.
그런데 6.25가 났습니다. 6.25가 발발이 됐어요. 6.25 발발 전에 여러분, 여수반란사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수반란사건’은 간단히 얘기하면, 제주도에서 4.3 폭동사태라는 것이 있어서 공산주의자들이 거기서 반란을 일으켰어요. 여수에 있던 부대를 16연대를 제주도에 보내기로 했어요. 진압을 하려고. 그래서 그 16연대 장교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야. 공산주의자들이어서.
그런데 그때 이 반란군에 의해서 아들 2명이 순교를 당해요. 그래서 아들 2명을 다 잃었어. 첫째 아들, 둘째 아들 다 총살을 당했어. 자기 친구들한테. 공산주의자를 신봉하는 친구들한테.
그런데 그 양반 거기 써 놓은 것 보니까 여덟 가지, 자기가 여덟 가지 감사를 쭉 써놨어요. 그런데 왜? 뭐가 감사하느냐?
‘이렇게 죄인의 세대에 태어난 우리가 순교할 수 있는 가족으로 만들어지니 얼마나 감사하느냐? 그리고 내가 제일 사랑하는 첫째 아들, 둘째 아들을 순교하니 이것 얼마나 큰 복이냐?’
또 셋째, 얘가 미국을 가려고 준비를 했는데 아들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얼마나 감사하느냐. 다섯째, 내가 이 새 아들을... 그러니까 아들을 쏴 죽은 아들을 자기 양아들을 삼았어요. ‘내가 새 아들을 얻었으니 이 어찌 감사하지 않으냐?’
여덟 가지 감사를 적어서 매일 그것 놓고 기도를 올렸어요. 그것이 여러분, 지금 여수 엑스포 가시면, 거기 한 번 들려보세요. 거기 가면 다 보실 수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그 당시에 6.25 전에 그런 우리나라를 위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렇게 얘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6.25가 났습니다. 그런 기도에도 불구하고 6.25가 났어. ‘왜 6.25가 났습니까?’, ‘왜 전쟁이 났습니까?’
우리가 정치적으로는 여러 해석을 할 수가 있어요.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빠지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미군들이 다 철수했어요. 그러니까 북한이나 소련이나 중국에서 ‘아, 이럴 때 내려가면 되겠다.’ 해서 내려왔습니다. 전쟁이 터진 거예요. 김일성이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여수에서 혼자 남아 있었어요. 어디 가지도 않고. 그러면서 그 기도를 했습니다. 이 사람이 그때 저기 한 것이 있어. 기도한 것이 있어. 6.25가 일어난 후 9월 23일에. 그러니까 서울이 수복되기 바로 전에 기도를 했는, 설교를 했는데.
‘국가적으로는 수도 서울을 빼앗기고, 교회적으로는 성전을 다 잃었으니 이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냐. 이것이 왜 이러느냐? 우리가 내가 오늘 이 죄악성, 우리의 죄악성을 말하면, 우익이나 좌익에게나 정치가에게나 경관에게나 미국인에게나 교역자나 교인에게나 매 맞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어찌 하나님 명령인데 전하지 않겠느냐?’
하면서 네 가지 조약을 이 사람이 얘기했습니다. 무엇이냐?
‘국가 지도자들이 범죄한 결과다.’ 이렇게 하면서 국가 지도자들 문제라고 그러고.
‘그 다음에 한국 민족이 범죄한 결과다.’ 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하여튼 우리는 민족이 그렇게 역경을 거쳤는데도 정신을 못 차렸기 때문에 6.25를 맞았습니다. 6.25 후에 우리나라가 어떻게 됐습니까? 그 다음에는 우리나라가 다행히 6.25 이후부터 이제 올라가게 됐습니다. 올라가서 미국과 상호안보조약을 맺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안보가 튼튼해졌어요. 여러분 다 아시죠. 지금부터는 현대사에 해당하니까.
우리나라 안보가 튼튼해졌어요. 그 안보 튼튼한 것 바탕으로 해서 우리나라 경제가 지금 일어났어요. 지금 우리나라 경제가 지금 어떻습니까? 세계 10위권 경제국이 됐어요. 그때는 70달러. 아프리카, 가나하고 비슷한 나라였는데, 지금 50년 만에 우리나라는 세계 10위 국가에요. 세계에서 아무도 이런 나라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어떻게 이것이 됐느냐?
하나님의 기도. 그 당시, 선조 때부터 기도, 기도가 쌓여서 그렇게 된 것이다. 경제가 발전이 되니까 그 다음에 우리 민주화를 이뤘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가 민주화, 경제, 그 다음에 안보, 이것이 차례차례 이룬 나라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밖에 없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제가 결론을 내겠습니다. 이러면서 제가 이런 우리 한국 현대사를 보면서 ‘참, 하나님 뜻이 참 굉장하구나. 하나님은 진짜 우리가 모르지만, 우리에게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시구나. 우리를 앞서 가서 내가 내게 천사를 보내 내가 가는 길에 내내 너를 보호하고, 내가 준비한 곳으로 너를 데려갈 것이다.’ 라고 ‘출애굽기’에 말씀을 하셨듯이 ‘우리나라 앞서서, 하나님이 앞서서 우리를 좀 데려가셨다.’ 하는 얘기를 하나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왜? 우리가 지금 일제 때나 그 다음에 1945년에서 1950년이나 이때 보면, 우리가 준비가 안 됐어요. 독립할 준비가 안 되었어요. 독립은 했지만 서로 싸웠어요. 우리가 아무 능력이 없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너희들이 능력이 생길 때까지 도와, 기다려 주겠다.’ 그것은 마치 무엇이냐? ‘출애굽기 23장 29절’에 보면, ‘내가 그들을 1년 내에 내쫓지 않을 것이다.’
그때 가난으로 들어가는 것 아니에요. 왜? 하나님이 기다리는 거야. 이 이스라엘 민족이 준비가 안 되면, 완전히 내쫓지 않는다고 그랬어요. ‘그러면 너희들이 감당을 못한다.’ 왜 못하느냐? ‘땅이 황폐해지고 들짐승이 많아서 그렇다. 내가 그들 앞에 조금씩 네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서 결국의 너희 수가 늘어나 그 땅을 다시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우리의 능력이, 우리의 힘이 기다려지기, 준비되지기를 기다려줍니다. 기다려서 우리가 준비가 되면, 그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쓰신다. 그런 말씀을 제가 드리고 싶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기도, 우리가 무슨 기도를 해야 되겠습니까? 제가 네 가지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아까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은 한국을 내 보물이 될 것이다.’ 라고 저는 말씀... 이미 말씀하셨고, 지켜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이 지금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대한민국이 지금 굉장히 어지럽습니다. 우선, 북한이 굉장히 어지러워서 김정은이가 미사일 발사, 핵 준비해. 이것이 지금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테러가 있을지, 아니면 연평도 같은 그런 포격이 있을지, 아무것도 지금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외부적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지금 굉장히 위험합니다.
두 번째, 내부적으로도 굉장히 위험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잖아요. 지금 주사파, 북한 간첩 경력 있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어서 국회에 들어가니, 안 되니 이런 것 가지고 지금 막 싸우잖아요.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간첩 경력 가진 사람이 국회의원이 될 수가 있습니까?
이것을 지금까지 누가 막지 못했습니까? 지금 이 나라가,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참 보물이 되어야 될 우리 대한민국이 지금 굉장히 위험에 빠져 있다 이거예요.
그래서 나는 첫째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우리 정신이 좀 새로워져야 되겠어요. 이것 아까도 계속 다른 목사님들 우리 말씀하셨지만, 지금 경제위기 아닙니까? 경제위기가 왜 왔습니까? 유럽에서. 일 안 하고 놀려고 해서 사실은 경제위기가 온 거예요. 복지병이에요. 복지병.
우리 옛날 조선 사람들이 일 안 하려고 하고, 친척들한테 기대 살려고 그랬는데, 지금은 친척 대신에 나라에 기대 살려고 그런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러면 안 된다 이거예요. 정신이 똑발라야 돼. 부지런해야 돼. 부지런하고, 근면하고, 절약하고, 성실하고, 이런 정신이 우리가 계승되어야 되겠다. ‘우리 정신을 좀 차리게 해 주십시오.’ 이것 두 번째, 여러분이 기도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셋째, ‘사회통합을 좀 이루어야 되겠다.’ 왜 그러냐?
너무 이 나라가 분열이 되어 있어. 너무 분열이 되어 있어. 그것은 세계경제가 지금 이렇게 다 국경이 터져서 세계화 때문에 경쟁이 너무 심해서 제일 잘난 놈만 먹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1%만 모든 것을 먹고, 99%는 먹을 수가 없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1% 대 99%다.’ 이렇게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가진 사람은 더 가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사회가 분열이 되는 거야. 그런 분열 속에서 간첩출신 같은 사람이 국회의원 되려고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것을 막아야 돼. 사회통합을 이루어야 돼.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 기독교 정신으로 돌아가야 돼. 예수님 정신으로 돌아가야 돼. 가진 사람, 부자, 많이 배운 사람, 그런 사람들이 더 겸손하고, 봉사하고, 더 도와주고, 그런 마음이 있어야 된다 이거예요.
사치하지 말아야 돼. 조금만 잘 살면, 부자면, 교육을 많이 받았으면 얼마나 교만합니까? 그리고 얼마나 다른 사람을 많이 마음에 상처를 줍니까? 우리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부터가 좀 그러지 맙시다. 그래야 이 사회가 통합이 되는 거야. 크리스쳔인부터 그러지 말자. 이것입니다.
넷째, ‘미래세대를 잘 길러야 됩니다.’
지금 일본이 망하고 있습니다. 젊은 애들이 다 정신이 썩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에요. 미국도 지금 무슨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연애를 지금 허용한다, 어쩐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나라가 지금, 기독교가 지금 다 무너지고 있어요. 한국이 그래도 살아 있는 나라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미래세대를 여기서 잘 길러야 돼. 우리가 잘 길러야 걔들이 우리나라를 끌고 가고, 걔들을 바탕으로 해서 중국도 우리가 선교 나갈 수 있고. 또 동남아에서도 한국을 못 배워서 야단인데, 동남아에도 나가고, 중앙아시아에서도 나가고. 우리가 모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도자의 각성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지도자가 각성해야 돼. 우리 백성들은 지도자 따라가는 거잖아요. 주로. 그러니까 앞에서 잘 이끌어주셔야 돼요. 그러니까 우리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를 해야 되겠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너무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제가 말씀을 드리고, 오늘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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