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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대통령 출마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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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대통령 출마의 윤리

입력
2017.01.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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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서울청사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서울청사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한대행의 권한대행 체제가 말이 되는 소리인가.”

지난해 연말 정치권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대선 출마 가능성이 처음 거론될 때만해도 난센스라고 여겼다. 조기 대선이 유력한 상황에서 그가 대선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30일 전까지 권한대행 직을 던져야 하는데, 이 경우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권한대행의 권한 대행을 맡아야 한다. 유 부총리의 직함은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권한대행 경제부총리’쯤 되려나.

물론 법적으로 못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 도의적으로는 상식 밖이다. ‘국정 공백 최소화’를 입에 달고 있는 황 권한대행이 국정을 코미디로 만들 만큼 개념 없는 공직자는 아닐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한국 정치의 매트릭스에선 황 권한대행의 출마가 가능성 제로의 영역은 아닌 것 같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레이스에서 중도 낙마하거나 혹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기각되는 등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그가 보수 진영의 대표 주자로 호출 받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이다.

고약한 것은 황 권한대행의 태도다. 딱 부러지는 법조인의 절도 있는 어법을 구사하는 그가 유독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서만은 모호한 정치적 화법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연말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에 “출마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 않고 되레 자신이 무수저임을 강조하더니, 이달 2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지금은 여러 생각을 할 상황이 아니다”며 ‘지금’이라는 단서까지 달았다. 마치 ‘정치는 생물 아니냐’며 정치판의 격동을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여론조사기관의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만 봐도, 대선 지지율이 상승하는 최근의 상황을 즐기며 대권 야심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황 권한대행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국정공백 사태를 메우기 위해 여야의 협력을 다 받아도 모자라는 상황에 있다. 그런 그가 대권 야심을 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향후 국정 행보마다 사전 선거운동 논란에 휩싸여 권한대행의 직무 수행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국정공백 최소화를 내건 그가 스스로 국정혼란의 장본인이 되는 셈이다. 법적으로 그의 대선 출마를 금지하는 규정이 없긴 하지만, 그의 출마는 국정 안정화를 책임진 권한대행의 직업 윤리를 어기는 것이다.

이 같은 직업 윤리를 저버리고 있는 또 다른 이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다. 사무총장 퇴임 후 모국(母國)의 공직을 제한한 유엔 총회 결의가 구속력이 없는 권고 조항이라 하더라도, 그 권고 조항을 솔선 수범해야 할 직업 윤리적 책무가 있는 이가 유엔 사무총장이 아닌가. 북한인권결의안을 비롯해 유엔 총회 대부분의 결의가 권고 사항이다. 주권 국가와 달리 강력한 법적 집행력을 갖고 있지 않은 유엔으로선 고도의 윤리 의식으로 결의안 이행을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 꼭지점에서 모범을 보여야 할 이가 당연히 사무총장이다. 유엔 총회 결의를 “별 것 아니다”고 치부하는 것은 유엔 자체가 별 거 아니라고 우습게 여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유엔 사무총장을 자신의 대권가도에서 가장 큰 아우라로 삼는 반 전 총장이 스스로 유엔의 도덕적 권위를 무너뜨리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 나라의 보수 진영이 아무리 ‘선수’가 없다고 이처럼 대선 출마의 윤리적 문제를 인식조차 못하고 반 전 총장이나 황 권한대행을 미는 것은 결국 보수 진영의 윤리의식이 집단적으로 마비됐다는 또 다른 증거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고위 공직자들이“대통령이 시켜서 했다”는 이유로 대기업을 강박하고, 입 바른 공직자를 쫓아내는 일을 스스럼 없이 한 것에서 보수 진영의 윤리가 어느 정도 추락했는지를 보여준 바 있다. 대통령 탄핵 소추 사태를 겪고도 보수 내부 어디서도 각성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암담한 일이다.

송용창 정치부 차장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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