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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논설실장

등록 : 2017.08.07 17:33
수정 : 2017.08.07 17:33

[이계성 칼럼] ‘한민족 멸망’ 시나리오

등록 : 2017.08.07 17:33
수정 : 2017.08.07 17:33

英 시사주간지의 한반도 핵전쟁 예상

강 대 강 부딪치면 터무니없지 않아

무모함과 허세 버리고 살길을 찾아야

커버스토리로 한반도 핵전쟁 시나리오를 다룬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 표지 한국일보 자료사진.

요즘 문득문득 라면과 생수, 부탄가스 같은 생필품을 사둬야 하는 것 아닌지 조바심이 든다.

기자로서 20년 넘게 남북 문제를 다뤄 오는 동안 여러 번 한반도 긴장 고조 상황이 있었고 전쟁 위기설이 나돌았지만 한 번도 생필품 사재기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감이 안 좋다. 30년을 끌어온 북 핵ㆍ미사일 문제가 파국적 종착점을 향해 가는 요즘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좀 생각해 보니 라면과 생수 같은 생필품을 얼마간 사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전쟁이 나도 그 정도의 생필품으로 버틸 그런 전쟁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 초기 최소 30만명 사망’은 미국 연구기관들이 예측한 공인된 인명 피해 규모다. 2,400만명이나 모여 사는 수도권이다. 북한이 개전 초기 어떤 무기를 얼마나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명피해 규모는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북한 공격으로 수도와 전기 공급이 장기간 전면 중단된다면 고층아파트 도시 생활은 그 자체로 지옥이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가 최신호(5일 자) 커버스토리로 ‘한반도 핵전쟁 가상 시나리오’를 실었다. 현재 진행형인 미국과 북한 간 강 대 강 엄포 대결이 어떻게 핵전쟁으로 비화하는지 현실감 있게 그렸다. 시점은 2019년, 북한이 대기권 핵실험을 감행하자 미국은 북한 미사일 발사 기지에 제한적 타격을 가한다. 이에 북한은 화학무기 탑재 장사정포와 단거리 핵미사일로 서울을 공격한다. 그러자 미국은 최신 핵폭탄 4발을 평양에 투하해 전쟁을 종결 짓는다. 그때 우리에겐 뭐가 남을까. 사실상 한민족 절멸을 의미하는 끔찍한 시나리오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 쉽게 얘기하는 것 같아 화가 나지만 전혀 터무니없는 얘기가 아니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북한이 장거리 핵미사일을 개발하도록 내버려 두기보다는 북한과 전쟁을 하겠다”고 말했다. “전쟁이 나더라도 거기(한반도)서 나고, 수천 명이 죽더라도 거기서 죽는 것”이라고 했다 한다.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엊그제 “대북 예방 전쟁”을 언급했다. 이코노미스트의 가상 시나리오에도 나오는 북한 미사일 기지 공격이나 참수작전 가능성을 시사한 거다. 앞서 그는 김정은을 향해 “밤에 편히 자서는 안될 것”이라고 경고도 했다.

유엔안보리가 북한의 두 차례 ICBM급 화성 14형 발사에 대해 대북제재 결의 2371호를 채택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적극 협조하면 북한의 연간 수출 3분의 1 정도인 10억달러를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한다. 원유 공급 차단이 빠졌지만 김정은 정권에 주는 타격이 막대할 것이다. 니키 헤일리 주유엔 미국대사는 우리 세대가 채택한 최강 제재라고 평했다. 북한주민들의 고통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김정은 정권이 물러서면 좋겠는데 전혀 그럴 태세가 아니다. 7일 정부성명을 통해 안보리 결의 채택을 비난하고 "미국이 경거망동한다면 우리는 그 어떤 최후수단도 서슴지 않고 불사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물러서기는커녕 추가 장거리미사일 발사나 6차 핵 실험을 감행하고 나설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이코노미스트지 시나리오대로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전면전 비화에 따른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 김정은 제거 참수작전 또는 중국에 김정은 정권 교체 외주를 주는 방안 등이 미국 조야에서 현실주의적 선택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하지만 의도대로 상황이 전개될지는 미지수다. 뇌관을 잘못 건드렸다가 한반도에서 어떤 참화가 벌어질지 모른다. 물론 김정은은 김정은대로 밤에 편히 잘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대화와 협상이다. 김정은 체제의 숨통을 죄는 제재와 압박 강화는 일단 불가피하다. 대신 출구를 열어 놓은 압박이어야 한다. 즉 최대의 압박을 최대의 관여로 이어 가는 반전의 전략이 필요하다. 김정은도 이미 많은 것을 확보했다. 노자 도덕경에 “만족을 알면 욕됨이 없고(知足不辱), 그칠 줄 알면 위태로움이 없다(知止不殆)”고 했다. 무모함과 허세를 버리고 함께 사는 길을 찾을 때가 됐다.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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