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지금 물어보신 질문 같은 것들이요.”
‘조선의 비행기, 다시 하늘을 날다’(사이언스북스)를 쓴 이봉섭(36)씨는 지난달 31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멋쩍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책을 쓸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뭐였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책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싸움에서 정평구라는 인물이 외부와 연락하고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 썼다고 기록된 비행기 ‘비거(飛車)’가 실제 존재했다고 주장하고, 이 비거를 재현하는 데 도전한 기록이다. 그러나 비거의 형태, 구조, 제작법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없다. 그러니 다들 똑같은 질문을 했을 게다. 근거는 있냐, 결국 추정이지 않느냐, 지금 가능하겠느냐, 라이트 형제보다 300년 앞서다니 대책 없는 ‘국뽕’아니냐 등.
아재 개그 식으로 하자면 이씨는 ‘비행청소년’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글라이더 대회에서 1등 한 뒤 비행기만 파고 들었다. 잡지 ‘월간 항공’을 교과서 삼아 공부했고, PC통신 시절 비행기동호회 부시삽이었으며, 고2 때는 아예 초경량비행기 운전자격증까지 땄다. 대학은 당연히 항공대를 택했고, 항공기제작연구회에 들어가 설계ㆍ제작기술을 익혔다. 하늘을 훨훨 난다는 게 대책 없이 마냥 좋았다.
방산업체로 한정된 국내 상황에 한계를 느껴 러시아로 유학, 모스크바국립항공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러시아를 택한 이유도 “항공ㆍ로켓 기술이 최고 수준”이어서다. “나로호 1단 로켓이 1961년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 시절 개발된 러시아 로켓과 똑같다”는 거다.
비거 얘기는 처음엔 이씨도 흥미로운 얘기 정도로 생각했다. 도전해볼 결심을 굳힌 건 2002년 발견된 ‘산가요록(山家要錄)’ 덕이다. 1450년에 쓰여진 이 책엔 구들과 기름먹인 한지를 이용한 온실건축법이 담겼다. 이 책의 발견으로 세계 최초 온실은 1619년 난로와 유리를 이용한 독일 온실이라는 통념이 깨졌을 뿐 아니라, 실제 재현해보니 오늘날 비닐하우스보다 더 효율적이란 결과까지 얻었다. 겨울철 왕실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생화의 존재를 이 책이 풀어준 셈이다. 그렇다면 비거도 가능하지 않을까. 비행청소년 출신 이씨의 가슴이 뛰었다.
도전기의 구체적 내용은 책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거북선으로도 널리 알려진 조선의 평저선 구조와 현대 비행기 동체를 만들어내는 세미 모노코크 구조간 유사성, 조선 선박 돛대의 3대 1 황금분할과 현대 비행기 날개가 양력을 이용하는 원리간 유사성 등 비행의 과학적 원리를 차분히 짚어나간다. 제작ㆍ시험비행 등 전 과정을 찍은 사진도 있다. 책이 주는 묘미의 90%는 이 부분이다. 이씨도 “비거는 안 믿더라도 이 책이 시도하는 과학적 추론 방법, 비행의 원리 같은 건 눈여겨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 흥미로운 건 이 과정에서 이씨가 미래 비행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점이다. 이씨의 꿈은 ‘친환경적인 2인승 초경량 전동비행기 회사 사장님’이다. 비행청소년 아니랄까봐 회사 이름은 고1 때 ‘봉에어’, 첫 비행기 이름은 대학 2학년 때 ‘P20’(‘2020년에 비행할 푸르기’라는 의미)이라 이미 정해뒀다. 요즘 환경에 해로운 대형 비행기의 대안으로 나무를 소재로 한 소규모 전동 비행기가 모색되고 있다. “독일ㆍ중국 같은 곳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게 이씨의 말이다. 우선 유럽 시장을 타진해볼 생각이다. ‘덕업일체(德業一體)’가 미덕이라는 21세기, 이씨도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