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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와 한국인 관점에서 쓴 과학사 책 2권 동시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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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와 한국인 관점에서 쓴 과학사 책 2권 동시출간

입력
2014.12.1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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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무정한 세계 / 정인경 지음

돌베개ㆍ 280쪽ㆍ1만4,000원

보스포루스 과학사/ 정인경 지음

다산에듀ㆍ432쪽ㆍ2만원

동양과 서양, 한국과 서양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한국인의 관점에서 쓴 과학사 책 2권이 나란히 나왔다. ‘보스포루스 과학사’는 인류의 탄생에서 현대 과학기술의 융합까지 동서양을 넘나든다. ‘뉴턴의 무정한 세계’는 뉴턴이 열어젖힌 근대과학부터 20세기 과학혁명까지 서양 과학사를 일제 침략 이후 근대과학에 ‘상처입은’ 한국의 입장에서 재구성한 책이다. 한국과학사를 전공한 정인경씨가 쓴 이 두 권의 책은 통합적인 접근이 특징이다. 과학사를 다룬 책이 흔히 지역을 가르고 분야를 쪼개서 서술하는 것과는 크게 다른 점이다.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도 알기 쉽게 써서 더 돋보인다. ‘삶이 보이는 과학사’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과학이 바꾼 삶의 이야기를 담아 ‘과학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식민지 조선, 근대과학에 상처 입다

‘뉴턴의 무정한 세계’는 읽다 보면 가슴이 아픈 책이다.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 들어온 근대과학이 한국인의 삶과 의식을 어떻게 왜곡했고 그 영향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설명한 대목에서는 분통이 터진다.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한 조선인 과학기술자들의 삶이나 식민 지배의 도구가 되어버린 과학기술에 짓밟힌 조선인의 눈물을 소개한 부분에 이르면 울컥해진다.

제목의 ‘무정한 세계’는 당시 한국인이 마주친 근대과학의 차가운 얼굴을 가리킨다. 이광수가 쓴 일제시대 베스트셀러 소설 ‘무정’과, 법칙에 따라 무정한 기계처럼 작동하는 세계를 발견한 뉴턴의 근대과학을 연결했다. ‘무정’에서 이광수는 과학의 중요성을 부르짖었지만, 식민지 조선이 실제로 접한 서양의 근대과학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 삶의 뿌리를 해체하는 무정하고도 잔혹한 세계였다. 증기선, 전기 등 서양과학의 놀라운 성과에 대한 감탄과 두려움은 열등감과 무력감으로 이어졌고, 일제는 이를 조장했다. 만국박람회를 열면서 조선인 남녀를 돈 내고 보는 구경거리로 전시하는가 하면 과학기술을 일제 식민 통치의 성과로 선전했고, 개발의 이름으로 대규모 과학기술 공사 현장에 조선인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착취했다. 식민지 공업화의 현장이 된 일제의 공장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이 부르던 아리랑에 “공장의 기계는 우리의 피로 돌고”라는 가사가 나올 만큼 참혹했다. 저자는 일제의 통치 덕분에 조선이 발전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강하게 규탄한다.

일제가 왜곡한 ‘과학기술의 가치중립성’

뉴턴부터 20세기 과학혁명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까지 다루는 이 책에서 저자는 과학의 이론적인 면과 사회적인 면을 아우르며 과학이 한국인의 삶에 미친 영향을 추적한다. 조선인은 고등과학을 배울 기회조차 뺏겼던 일제의 강점 아래 김용관이 펼친 과학기술운동의 좌절과 외로운 죽음, 합성섬유 비날론을 개발하고도 손기정의 일장기 말소 사건을 떠올리며 “조선아, 조선아, 어디로 갔느냐”고 밤새도록 통곡한 리승기 등의 이야기는 절통하다.

특히 본격적인 과학연구기관을 세우자는 김용관의 주장이 묵살된 경위는 오늘의 한국 과학 풍경에 고스란히 이어진다. 일제가 선전하는 과학기술의 중립성을 믿는 과학자들이 이를 반대했다. 서양이나 일본이 해놓은 것을 이용하면 됐지 독자적인 민간연구소를 세울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에 동조했던 과학기술자들은 일제의 비호를 받으며 친일의 길을 걷고 해방 후에도 출세가도를 달렸다. 덕분에 ‘과학기술의 가치중립성’은 우리 사회에서 과학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방기하는 알리바이로 굳건하게 자리잡았다.

이 책에는 발명왕 에디슨이 얼마나 잔혹한 사기꾼이었는지 전하는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식민지 조선에서 과학의 의미를 살피기 위해 염상섭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 박태원 소설 ‘구보씨의 하루’, 시인 이상의 시 등 일제시대 문학작품도 적절히 인용하고 있다. 특히 이상은 과학을 겉핥기로 배웠으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시로 풀어낼 만큼 뛰어났지만, 식민지 상황에서 결국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로 요절했다. 반면 이상보다 3년 일찍 태어난 일본 과학자 유카와 히데키는 일본 최초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저자는 한국의 과학기술이 식민 지배와 근대화의 도구였다는 비판 끝에 과학을 알아야 하는 참된 이유를 말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고 있다. 사실과 허구를 구별하게 해주는 과학의 눈으로 불의와 거짓에 분노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 그게 핵심이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과학을 바라보다

터키의 보스포루스 해협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통로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의 문물이 이곳을 통해 오간다. ‘보스포루스 과학사’는 이 해협처럼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학서다. 유럽 혹은 서양 중심주의를 벗어나 세계사적 관점에서 서술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책은 인간이 자신과 세계에 대한 궁금증에 답을 찾기 시작한 것을 과학의 탄생으로 보고, 인류의 출현부터 현대 과학기술까지 서술한다. 핵심 주제는 서양의 근대과학 혁명이지만, 그 이전에 그리스와 중국이 만들어낸 동서양 지적 전통의 기반과 동서양 과학기술의 교류사를 조명하고, 이슬람과 한국의 전통과학을 함께 탐구한다.

서양의 중세 암흑기에 이슬람이 고대 그리스 과학의 유산을 보존하고 발전시켜 전해준 덕분에 유럽의 근대과학이 가능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럽은 이슬람뿐 아니라 중국과 인도에도 많은 빚을 졌다. 중국이 수출한 종이, 인쇄술, 나침반, 화약 같은 발명품이 대표적이다. 조선 또한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함께하며 독자적인 과학기술을 발달시켰다. 세종 시대의 과학기술은 중국에 버금가는 세계적 수준이었고, 조선 건국 초기에 제작된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 또한 세계적 걸작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전통과학은 일제의 침략으로 단절됐다.

이 책에는 과학이 삶을 바꾼 사례가 많이 나온다. 지동설은 지구 중심의 세계관을 바꿨고,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을 지구상 수많은 동물 중 하나로 새롭게 인식시켰으며, 유럽의 근대과학은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근대사회로 변혁을 일으켰다. 인간 스스로 세계를 앎으로써 삶을 바꾸고 역사를 바꾸어 온 과정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과학의 사회사이기도 하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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