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최씨의 이익을 위해 지위와 권한을 남용하고 헌법과 법률을 위배했음을 명백히 했다. 파면의 핵심 사유인 ‘국정농단’은 오래 전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잘못된 만남에서 비롯됐다. 국정농단의 주역으로 꼽히는 최씨와 안종범, 김기춘, 조윤선, 정호성 등 청와대 인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은 이미 구속 기소됐다. 자연인이 된 박 전 대통령 역시 검찰의 강제수사를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사진기자들이 박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 촬영한 사진 속엔 국정농단 사건 피의자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대통령과 그들이 카메라 앞에서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거나 환하게 웃고 있는 사이 국정농단은 철저하게 숨겨진 채 척척 진행되고 있었다. 대통령 파면 사태에 이르러 결정적 순간이 되어버린 장면들, 그들의 환한 미소 뒤에 숨겨진 비릿한 뒷거래와 욕망, 거짓말들을 찬찬히 읽어보자.
#최순실
1979년 6월 10일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제1회 전국 새마음제전에서 당시 박근혜 새마음봉사단 총재와 최순실(왼쪽) 새마음 대학생총연합회장이 다정한 모습으로 웃고 있다. ‘비선실세’ 최순실은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이용해 각종 이권에 개입했고 외교 안보 등 국정운영까지 간섭했다. 최씨는 검찰과 특검 수사를 통해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해 삼성으로부터 430억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드러났다. 최씨는 뇌물죄 외에 직권남용과 사기미수 등으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김기춘
취임 첫 해 인사난맥과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등으로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은 박 전 대통령은 저도에서의 여름 휴가를 마친 후 김기춘 카드를 꺼냈다.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한 몸에 받은 김 전 실장은 이른바 ‘왕 실장’ 또는 ‘기춘대원군’으로 불리며 박근혜 정부의 2인자로 군림했다. 국정농단 청문회에 나와 최순실을 모른다고 잡아떼는 등 법망을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그의 면모가 ‘법꾸라지’라는 별명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결국 특검 수사로 블랙리스트 작성 등을 주도한 혐의가 인정돼 김 전 실장은 구속 기소됐다.
#조윤선
‘박근혜 정부의 신데렐라’로 불린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역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여성가족부 장관을 거쳐 첫 여성 정무수석으로 발탁되는 등 ‘잘 나가던’ 조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덜미를 잡혔다. 조 전 장관은 김 전 실장과 함께 구속 기소됐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책조정수석을 거치며 승승장구하던 안종범 전 수석은 최순실의 사익을 채우기 위한 대통령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랐다. 깨알 같은 글씨로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적은 56권의 업무수첩은 국정농단 의혹을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됐다. 대기업들로부터 재단 기금을 강제로 모으는 등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 기소된 안 전 수석은 특검 수사에서 뇌물수수 혐의가 추가됐다.
#이재용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순실 측에 430억원대 뇌물을 제공하거나 제공하려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경영승계를 위해 국민연금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포괄적 지원을 노려 자금출연을 결정했다고 보고 있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강요에 의한 지원임을 주장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뇌물죄 성립 여부에 따라 뿌리 깊은 정경유착의 적폐를 청산할 수 있을지가 판가름 될 전망이다.
#차은택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8월 27일 ‘문화가 있는 날’ 행사의 일환으로 서울 시내 한 공연장에서 열린 융·복합공연 '하루(One Day)' 관람에 앞서 인사말을 하는 동안 공연의 총연출을 맡은 차은택 감독이 뒤편에 서 있다. 최순실의 영향력을 등에 업은 차씨는 이듬해 3월 창조경제추진단장으로 위촉되었고 이후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며 각종 이권에 개입, 국정농단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문형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메르스 사태 당시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미흡한 대응 등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얼마 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자리에 올랐다. 결국 특검 수사에서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의 합병과정에서 부당한 압력을 가한 혐의가 드러나며 특검 1호 구속으로 기록됐다.
#정호성
정호성 전 제1부속비서관은 이재만, 안봉근과 함께 최순실과 박 전 대통령을 이어준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이다. 18년간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수행한 최 측근으로 꼽힌다. 정 전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의 연설문 등 청와대 문건을 최씨에게 전달하고 최씨의 ‘지시사항’을 다시 대통령에게 전달해왔다. 특히. 정 전 비서관의 휴대폰에 저장된 대통령 또는 최순실과의 통화 녹음 파일은 특검이 국정농단 의혹을 파헤치는데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현
“나도 연설문 쓸 때 친구 도움을 받는다.” 최순실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수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가 한 말이다. 이 전 대표는 박근혜 정부에서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거치며 박 전 대통령에게 헌신했고 여당 대표까지 올랐다. 이 전 대표는 또한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며 대표자리에서 물러나는 날까지 박 전 대통령을 두둔했다.
#김종덕
‘차은택의 은사’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차씨의 추천으로 장관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부당한 권한을 행사하고 국장 3명을 부당하게 인사조치한 혐의, 청문회에서 위증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최경희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은 최순실씨의 딸 정류라씨에게 입학 및 학사 특혜를 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국회 청문회에서 “최순실씨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고 정씨에게 특혜를 주라고 지시한 적 없다”고 말한 최 전 총장은 결국 위증 혐의까지 받게 됐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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