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결정 이후 탈퇴협상 개시 시점을 두고 영국과 유럽연합(EU)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일부 회원국들이 추가 이탈 움직임을 보이자 EU 정상들은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일제히 ‘빠른 협상’을 촉구한 반면, 영국은 협상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려고 시작 시점을 되도록 늦추려는 분위기이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EU 주요 6개국 외무장관들은 2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긴급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브렉시트 절차를 속히 이행하라”고 영국 측에 촉구했다. EU 주요국들이 브렉시트 결정 하루 만에 빠른 움직임을 보인 것은 네덜란드, 덴마크 등 다른 회원국들에서 높아지고 있는 탈 EU 목소리와 경제적 타격을 하루빨리 잠재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 마르크 에로 프랑스 외무장관은 “(탈퇴 협상에 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금융시장 혼란과 정치적 후폭풍이 지속되길 원하지 않는다”며 속내를 밝히는 동시에 27개 회원국을 향해 EU 창립 정신을 되새길 것을 호소했다. 이번 회담에 참여한 6개국은 EU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의 창립 멤버로 EU 핵심국들로 평가된다.
EU 진영이 이와 같이 공세를 퍼붓는 이유는 탈퇴 협상 시기가 법적으로 명문화돼 있지 않아서다. EU가 2007년 승인한 리스본조약 50조는 EU를 떠나려는 회원국이 탈퇴 의사를 밝힌 시점부터 2년 간 신규 협정 조인 등 협상을 진행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투표 후 언제부터 리스본조약 50조가 발동되는지에 대해선 명확한 규정이 없어 협상 개시 시기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오는 10월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후임 총리가 정해질 것이라며 “새 총리가 리스본조약 50조 발동 시기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지만, EU 측은 협상 개시 후에도 5년 이상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며 가능한 한 빠른 착수를 요구하고 있다.
양측 공방에 EU의 브뤼셀 본부는 협상 태세를 갖추며 적극 가세하고 있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26일 독일 주간 빌트 암 존타크와 인터뷰에 “영국이 28일까지 EU 탈퇴 신청서를 제출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영국에 압박을 가했다.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2012년 헤르만 밤 롬푀이 전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의 보좌관을 지낸 디디에 세외 벨기에 외교관을 브렉시트 협상팀 총책으로 임명하며 “현재 세외가 협상 준비 작업 중”이라고 밝혔다.
양측 간 충돌은 이번 주 내내 예정된 국제회의를 통해 격화할 전망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8, 29일 개최되는 EU 정상회의를 앞두고 27일 서둘러 독일 베를린에서 프랑스ㆍ독일ㆍ이탈리아 정상 회담을 소집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 자리에서 독일과 프랑스 주도의 EU 개혁안을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캐머런 총리는 이어진 EU 정상회의에서 추가 입장 발표를 할 것으로 예측된다. 협상 시기가 이른 시일 내에 확정되지 않을 경우 내달 15, 16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도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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