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 관심 모으는 ‘안철수 신당’
중도ㆍ완충세력 대변할 여건 필요
세 다리가 받치는 균형 ‘삼정지세’
새삼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생각한다. 1,800년 전 중국에서의 일이다. 삼고초려(三顧草廬), 초야에 묻혀 지내고 있던 제갈공명을 유비가 세 번째 찾아간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마당에 놓여있는 솥을 가리킨다. 화덕을 겸하게 되어있는 당시의 솥은 세 개의 발로 지탱한다. 삼정(三鼎)이다. 세워놓고 국을 끓이거나 밥을 짓거나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균형이 잡히도록 돼있다.
당시 중국은 기득권을 가진 북쪽의 위(魏)와 독자적인 기반을 유지하던 남쪽의 오(吳)가 대치,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피폐해졌다. 양국 모두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서쪽지방을 중심으로 촉(蜀)을 세워 대륙의 평화를 도모하자는 의미였다. 위가 세력을 확장하자 오ㆍ촉 두 나라가 연합하여 적벽대전(A.D.208)을 치르고, 중국은 삼국정립지세(三國鼎立之勢)로 굳어진다. 강국과 약국 사이에, 강국끼리 약국끼리, 전쟁이 그치지 않았던 시대에 향후 60여 년 동안 삼정(三鼎)의 균형이 이어졌다. 어느 한 나라도 나머지 두 나라를 충분히 제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연말,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 신당’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관심의 근거는 두 가지 축이다. 정치적 성향으로 보아 새누리당이 싫은 보수층과 새정치민주연합에 실망한 진보세력이 그 하나다. 지역적으로 호남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유권자들의 세력이 그렇다. 성향과 지역은 겹칠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지만 새누리당이 싫은 보수층과 수도권, 정권교체를 바라는 세력과 호남지역은 상당부분 공감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 공감대는 확산되는 분위기다.
개인적 견해를 먼저 밝히면, 안철수 신당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아가 신당이 어느 정도의 세력을 얻어 다소 기우뚱하더라도 삼정(三鼎)의 모양을 갖추었으면 한다. 우선적인 이유는 현재와 같은 배타적 대립을 상당부분 희석시킬 수 있으리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선거가 끝난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사회는 여전히 대선 직전의 죽기살기 식의 대결양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50+α’와 ‘50-α’만이 존재하는 듯한 상황이다. 중도층, 완충세력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위 ‘안철수 현상’은 항상 있어왔고, 지금도 있다. 다만 지난 대선 당시의 안철수 현상은 개인 안철수가 스스로 흐지부지 돼버리는 바람에 흩어지면서 물밑으로 잠복해 버렸다. 그 결과 현존하는 안철수 현상은 개인 안철수와는 상당부분 유리돼 있다. 안철수 개인을 떠나 그 현상을 담아내고 구체화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일에 국민은 상당한 기대를 갖고 있다. 제외되고 방치되는 세력은 자칫 선거 이후에는 어느 편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욕구불만 세력’으로 남기 쉽다.
신당이 내년 총선에서 어느 수준의 기반을 마련할 지는 순전히 유권자의 선택이다. 앞서 총선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여부조차도 온전히 국민의 몫이다. 신당이 출범을 선언하면서 밝혔던 약속들이 제대로 이행될 것으로 완전히 믿기도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편 네편에만 빠지는 이분적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당 출범의 의미는 찾을 수 있다. 정치적 관심도 부활하고, 투표율도 높아질 것이다.
총선은 총선이고, 대선은 대선이다. 불과 몇 달 전에도 오늘의 현실을 예측하지 못했는데, 지금의 모습으로 2년 후의 상황을 예단할 수는 없다. 내년 4월 총선을 삼정(三鼎)의 구도로 치르는 게 낫겠다는 것은 어느 한 쪽이 다른 두 세력을 완전히 압도할 수 없도록 하는 결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솥의 세 다리 가운데 하나가 다소 길거나 짧더라도 솥은 뒤집어지지 않는다. 다리가 두 개만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견고하더라도 솥은 끊임없이 뒤뚱거리고, 자칫 넘어져 국과 밥을 쏟게 된다.
/정병진 논설고문 bj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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