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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12 14:19
수정 : 2018.05.12 14:21

잦은 민원에 촬영까지… ‘스마트폰 테러’에 괴로운 교사들

등록 : 2018.05.12 14:19
수정 : 2018.05.12 14:21

초등학교 교사 장모(29)씨는 최근 오전 등교 지도 중 한 여성이 스마트폰을 들고 자신의 모습을 동영상 촬영하는 걸 발견했다. 동네에 한 두 명 쯤 있는 이상한 사람이겠거니 여기고 동료 교사에게 이야기했더니 당황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1학년 일부 학부모가 아이들의 등교 모습과 함께 교사들의 지도 모습을 주기적으로 촬영한다고 했다. 자식 걱정하는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했다. 감시받는 것 같았고, 내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학부모 사이에서 공유된다고 생각하니 불쾌했다.

장씨는 "학부모에게 오는 카카오톡 메시지에 답장 보내기도 벅찬데 이제는 동영상 촬영 걱정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들면 우울해진다"며 "교권이 점점 내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초등학교 교사 8년차인 이모(35)씨는 새 학기 들어 전보다 더 많아진 각종 민원 메시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4학년 담임 교사인 이씨는 최근 학년 전체 학부모가 포함된 메신저앱 단체 채팅방이 있다는 걸 교감에게 들었다. 일부 친한 학부모가 채팅방을 만들어 학교 문제점을 이야기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학년 전체 '단톡방'이 생겼다는 건 처음 알았다. 학부모들이 그곳에서 나눈 학교와 교사에 관한 온갖 불만이 교사 개인 메시지로 전달되는 것은 물론 민원 전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씨는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문제점이 있다면 지적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정당한 문제 제기가 아닌 걸러지지 않은 사소한 불만까지 단톡방을 통해 공유되고 일일이 스마트폰으로 전달되다보니 교사에게 일임해야 할 부분까지 간섭받는 느낌이 강하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한국교총)가 9일 발표한 교권 침해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교권 침해 상담 건수는 508건으로 10년 전인 2007년(204건)과 비교해 약 2.5배 늘었다. 한국교총에 접수된 교권 침해 건수는 해마다 느는 추세다. 2010년 초까지만 해도 200건대였다가 2012년 300건을 넘겼고, 2016년에는 572건을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 교권 침해 중 학부모에 의한 사례는 267건으로 절반 이상이었다. 학부모들은 주로 ▲학생지도(115건) ▲학교폭력(49건) ▲학교안전사고(30건)에 대한 불만으로 교권을 침해했다.

일선 교사들은 스마트폰이 교권 침해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시도 때도 없이 전달되는 메시지로 인한 스트레스와 함께 장씨 사례처럼 카메라 촬영 등으로 인한 고통도 호소한다. 물론 교사 폭행 등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기 때문에 명확히 교권 침해로 분류하기는 어렵지만, 학교와 교사가 해야 할 업무에 과도하게 참견하고, 학교 행정을 지나치게 감시하는 듯한 일부 학부모의 행태는 교권에 상당 부분 상처를 입히고 있다는 지적이다.

초등학교 학년 부장을 맡고 있는 교사 김모(39)씨는 "학교가 정해진 계획과 기준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학부모 민원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며 "처음 교사 생활을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스마트폰과 SNS가 확산된 이후 정도가 심해졌다"고 했다.

김씨는 최근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을 받던 아이들을 교실로 불러들였다. 미세먼지 관련 민원이 들어와서다. 그날은 미세먼지 수치가 야외 활동 가능 수준이었지만, 한 학부모가 미세먼지 측정 앱을 보니 '나쁨'이 나왔다며 당장 체육을 중단하라고 했다.

교사와 학부모가 개인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직접 주고받게 된 이후 일부 학부모가 교사를 너무 쉽게 대한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중학교 1학년 담임 교사인 최모(35)씨는 늦은 시간에 학부모에게 카톡 메시지가 와 놀라서 열어봤더니 게임 초대였다.

최씨는 "가끔 학생들이 게임초대 메시지를 보내서 타이른 적이 있는데, 학부모가 보내오니 더 화가 났다"고 했다. 이어 "일부 학부모는 메시지를 보내올 때 마치 친구와 대화하는 것처럼 이모티콘을 써가며 이야기하기도 한다"며 "친근감의 표시라기보다는 예의 없다고 느껴지며, 무시받는 것 같다. 이렇게까지 응대를 해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교사 개인 번호를 알려주는 것은 대부분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학교를 통해 학부모의 말을 교사에게 전하는 등 학교 상황실 역할을 하는 부서를 거치는 정식 절차를 밟는 게 일반적이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 교사들은 대개 학부모와 직접 소통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사는 "카톡으로 준비물이 뭔지, 숙제가 뭔지 물어보는 일이 하루에도 몇 번"이라며 "이 때문에 일부 교사들은 휴대 전화를 두 개 가지고 다니면서 업무용 휴대폰은 학교에 두고 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문제는 일부 학부모의 '스마트폰 테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처럼 원칙적으로는 모든 학교 관련 업무는 교사 직통 번호가 아닌 학교 대표 번호를 통하게 돼 있지만, 교사와 적극적인 소통을 강력하게 원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개인 번호를 알려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학교 자체적으로 교사를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도 전무하다. 이 때문에 표면적인 소통은 늘고 있는 반면 교권은 자꾸만 후퇴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각 학교가 스마트폰 관련된 학칙을 만들 필요가 있다"며 "아이를 걱정하는 학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학교 업무에 관한 지나친 간섭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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