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골리
스웨덴과 친선 평가전에서
유효슈팅 35개 중 32개 막아내
최후 방어선에서 영광의 1승 꿈
달리기•태권도 등 만능 운동 소녀
‘멍투성이’ 골리의 매력에 푹
중학교 1학년 때 첫 태극마크
자신의 영상 캐나다팀에 보내
‘맨 땅의 헤딩’ 유학 생활도
한국인 첫 세계 톱리그서 활약
달리기부터 태권도에 피겨, 아이스하키까지 모든 운동에 ‘만능’이었던 소녀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반도기를 가슴에 달고 남북 단일팀 골문을 당당히 지키는 골리로 성장했다.
4일 인천에서 열린 남북 단일팀(한국 22위, 북한 25위)과 스웨덴(5위)의 평가전은 ‘신소정’이라는 이름을 일반 팬들에게도 깊게 각인시켰다. 객관적인 실력 차가 확연해 단일팀은 일방적으로 밀렸지만 신소정의 눈부신 선방으로 많은 위기를 넘겼다. 그는 단일팀 골대를 향한 유효슈팅 35개 중 32개를 막았다. 아이스하키에서는 골리 비중이 팀 전력의 60% 이상이라고 하는데 신소정의 경우 80%는 될 거라는 평가다.
신소정은 여덟 살 때 과천위니아라는 클럽 팀에서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 당시 신소정을 지도했던 김상준 과천위니아 감독은 “소정이는 이것저것 안 해본 운동이 없는 아이였다. 유소년 선수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는데 또래 여자 아이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운동 신경이 월등했고 남자 아이들보다도 나으면 나았지 절대 뒤지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아이스하키는 초등학교 때 남녀 구분 없이 함께 운동한다.
신소정은 처음엔 플레이어였지만 1년 정도 지나 골리로 전향했다. 아이스하키와 비슷한 축구가 골키퍼를 하려는 유망주가 없어 고민인 것처럼 아이스하키 선수들도 골리는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시속 100km가 넘는 퍽을 막아내느라 온 몸이 멍 투성이가 되기 일쑤인데다 골을 넣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거나 화려한 드리블을 할 기회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소정은 골리의 매력에 푹 빠졌다. 김 감독은 “반사 신경이 뛰어나서인지 실력이 쑥쑥 늘었다”고 말했다.
신소정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고 중학교 1학년 때인 2013년 12월 정식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올해로 국가대표 15년 차다.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한 국가대표팀을 그린 영화 ‘국가대표2’에서 배우 진지희가 연기한 중학생 국가대표 골리 ‘신소현’의 모델이 신소정이다.
초등학교와 중고교는 물론 대학 팀 하나 없는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고3 때 아버지를 잃는 바람에 운동을 그만둘 생각도 해봤지만 결국 빙판을 떠나지 않았다.
2013년 아이스하키 유학을 위해 자신의 경기 영상을 직접 편집해 캐나다 대학에 보내기도 했다. 결국 캐나다 명문 팀 세인트 프란시스 자비에 대학에 입학했고 주전 골리로 활약했다. 2016년엔 북미여자아이스하키리그(NWHL) 뉴욕 리베터스에 입단해 한국 남녀 하키 선수 통틀어 최초로 세계 톱 리그에 진출했다.
신소정은 평창에서 올림픽 사상 첫 승을 꿈꾼다. 단일팀은 10일 스위스(6위), 12일 스웨덴에 이어 14일 ‘숙적’ 일본(9위)을 만난 뒤 3경기 결과에 따라 순위 결정전을 소화한다. 객관적인 전력상 1승도 쉽지 않지만 아이스하키 전문가들은 “신소정이 있기에 가능한 목표”라고 입을 모은다.
신소정은 올림픽 개막을 약 열흘 앞둔 지난 달 3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영어로 “나는 마지막 방어선에 서 있다. 내가 방어하는 골 크리스(골대 앞에 만들어진 구역)는 나의 땅이다. 나는 원칙을 따라 내 골문을 지킨다. 이곳이 나의 집이다‘는 글을 남겼다. 금메달 못지 않을 ’영광의 1승‘을 꿈꾸는 담대한 각오다.
강릉=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ㆍ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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