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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의 입기, 읽기] 오가닉 코튼을 입는 것, 나보다 남을 위한 소비

입력
2017.03.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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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오가닉 코튼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오가닉(Organic)이라는 말은 유기농이라는 뜻이므로 오가닉 코튼으로 만든 옷이라고 하면 입는 사람의 몸에도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티셔츠나 속옷, 어린 아이의 기저귀나 손수건 등 몸에 직접 닿는 제품들에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그런 생각엔 오해의 여지가 있다.

면 섬유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대략적으로 보자. 우선 목화를 기른다. 목화는 자라면서 씨앗의 표피 세포가 순백색 털로 발달하는데 이걸 채취해 공장으로 보낸다. 이후 여러 공정을 거치면서 면사가 되고 섬유가 되고 이윽고 옷을 비롯한 제품으로 만든다. 이런 과정 중 오가닉이라는 말은 맨 앞 목화를 재배하고 채취하는 과정에서 의미가 있다.

사실 목화 농사는 제초제, 비료, 살충제 같은 화학 약품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기는 하지만 수요와 소비가 워낙 많고 대량으로 생산하는 곳도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 농무부(USDA) 자료에 따르면 면화 재배지 1에이커(4,000㎡)에 살충제 0.36㎏, 제초제 1.2㎏, 성장 억제제 등 수확용 농약이 0.8㎏, 살균제 3g 정도가 사용된다고 한다. 이 양은 전 세계 농약 사용량 중 약 7% 정도다.

그런데 코튼은 전 세계 130여개국에서 경작하고 있다. 주요 생산ㆍ수출국은 미국을 비롯해 터키, 중국과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나라들이다. 기후와 종자에 따라 면의 특성 차이가 조금씩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1차 산업 생산물이기 때문에 수출량을 결정하는 큰 변수는 가격이다.

특히 개발도상국은 생산 단가를 낮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여러 국제 단체의 감시를 피해 노동자와 환경을 위해 취해야 할 여러 조치들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여기서 농약에 의한 노동자의 건강 문제와 환경 파괴의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오가닉 코튼 인증 제도’가 시작됐다. 즉 나쁜 짓 하지 말고 제대로 생산하면 더 높은 가격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가닉 코튼은 ‘유전자 조작을 하지 않은 종자의 사용’ ‘적어도 3년간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토지에서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재배’로 정의된다. 생산지 노동자의 건강과 생산지 주변의 환경을 관리하는 게 가장 큰 목표다.

하지만 면은 유기농 생산이 아니라고 해도 수확으로부터 일정 기간 전의 농약 살포가 금지돼 있는 경우가 많고, 대규모 생산지의 경우 국제 기관이 잔류 농약 검사를 꾸준히 한다. 그리고 채취해 공장으로 넘어간 다음 세정과 정련 과정이 반복되기 때문에 재배 과정 중에 뿌린 농약 등 화학 약품은 거의 제거된다고 한다. 오가닉이라고 해서 일반 면 섬유에 비해 사용자의 신체에 특별히 다른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오가닉 코튼은 재배 과정의 농약 제한으로 인해 수확량은 줄어들고, 투입되는 노동량은 늘어난다. 노동자의 생산 환경 보호 등 고려할 사항도 많아진다. 즉 일반 코튼 생산 방식에 비해 품이 많이 들고 그만큼 비용이 증가한다. 이렇게 보다 비싸게 생산되는 만큼 오가닉 코튼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는 소비자 건강에 더 큰 영향을 주는 염색 등 공정에서도 주의를 기울일 가능성이 크다. 비싼 가치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오가닉 코튼 제품을 구입한다는 건 소비자 자신의 건강보다는 어딘가에서 면화를 재배하고 있는 모르는 사람들이 농약으로 병들거나 그들의 주변 환경이 황폐해지지 않도록 약간은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이타적 행위다. 즉 오가닉 코튼은 세계가 좀 더 나은 노동 조건과 환경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성금, 그리고 몸에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가능성 정도라고 생각하는 게 보다 더 현실에 가깝다.

박세진 패션 칼럼니스트 macrostar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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