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메르켈에 한국 견제 외교전
"이웃나라와 화해를" 쓴소리만 들어
위원국 여론도 돌아서자 결국 백기
교도통신 "방문자 자료에 기재 검토"
尹외교, 아베 면담 후 NKH 인터뷰
"위안부 분명히 해결땐 재론 안될 것"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2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윤병세 외교부장관을 만나 “한일 양국 국민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다음 반세기를 향한 관계를 개선ㆍ발전시키고 싶다”고 밝혔다. 윤 장관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라는 뜻 깊은 해를 맞아 관계 진전을 봄으로써 한일관계 새로운 50년의 원년이 되도록 하자”는 박근혜 대통령 메시지를 전달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 도쿄에서 한국정부 주최로 열린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 참석에 앞서 윤 장관과 면담했다. 아베 총리는 “양국 사이에 여러 과제와 문제가 있을수록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장관은 면담 후 기자들로부터 정상회담에 관한 질문을 받자 “신뢰가 쌓이고 여건이 익으면 정상회담 시기도 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면담에 앞서 윤 장관은 아베 총리의 선친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무장관이 1984년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의 사진을 선물했다. 오전 11시15분쯤 시작한 면담은 예정을 15분을 넘겨 25분 가까이 진행됐다.
윤 장관은 이후 NHK와 인터뷰를 갖고 “위안부 문제를 우리가 분명하게 해결한다면 그 자체로 더 이상은 재론될 이유가 없다”며 “피해자나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그런 방향으로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윤 장관은 “50분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이분들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날 외교장관 회담 분위기는 상당히 거침없고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회담 후 만찬장에선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양국현안에 대한 얘기도 했지만 두 장관의 친분을 서로 확인하는 선물교환도 이뤄졌다. 윤 장관은 일본과자인 전병(센베이)을, 기시다 외무장관은 바둑알 세트를 받았다. 각각 두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이다. 이 같은 친밀도를 바탕으로 양국간 껄끄러운 난제들도 두 사람이 허심탄회하게 입장을 교환했다는 전언이다. 특히 위안부 현안이나 8월 ‘아베 담화’에 대한 대일 압박과 관련, 한국측은 추측가능한 요구를 다 거론했다고 보면 될 정도로 실질적 대화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윤 장관은 아베 총리 예방 후 도쿄 제국호텔에서 가진 주일 한국특파원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일본정부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문제에 관해 “앞으로 협상 대표가 가까운 시기에 적절한 형식으로 협의를 마무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반도 출신 징용자가 하시마(端島ㆍ일명 군함도) 탄광 등에서 강제노동을 한 사실을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 어떤 형태로든 반영하는 것에 대해 사실상 합의가 끝났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가 조선인의 강제 징용 역사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시설의 방문자 자료에 기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원국을 상대로 한일간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진 과정을 소개했다. 아베 총리는 의장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올 3월 방일했을 때 “한국이 세계 유산 등재와 관련한 거부권을 갖게 해도 좋은가”라며 한국을 견제했다. 이에 맞서 한국도 독일 설득에 나섰다. 산업혁명 유산을 유대인 강제수용소, 히로시마 원폭 돔 등과 같은 ‘부(負)의 유산’으로 자리매김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 것.
회원국 여론이 한국측으로 기울자 기우치 미노루(城內實) 외무성 부대신이 5월13일 독일을 방문해 국무장관에게 등록 찬성을 호소했지만, “독일은 이웃나라와 화해해왔다, 일본도 노력해달라”고 쓴소리만 들어야 했다. 이어 복수의 회원국들로부터 ‘일본 입장은 지지하지만 이대로라면 기권할지 모른다’는 입장이 일본 외무성으로 날아들었다. 결국 일본은 지난 19일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외무성 외무심의관을 서울에 급파, 한국의 요구를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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