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경 기자

등록 : 2018.06.12 15:36
수정 : 2018.06.12 18:37

서울 지하철 맥가이버 “수능일 되면 긴장 극에 달해요”

[일터애(愛)ㆍ12] 서울교통공사 이영선 검수팀 과장

등록 : 2018.06.12 15:36
수정 : 2018.06.12 18:37

2만개 부품이 움직이는 지하철

1ㆍ2호선 하루 평균 50대 점검

“구의역 사고 지금도 마음 무거워

365일 무사고 운행이 목표죠”

이영선 서울교통공사 검수팀 과장이 지난 7일 군자차량사업소에 들어온 지하철 2호선 전동차 운전석에 앉아 간단한 운행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자식이 다쳐서 들어왔는데, 속은 타 들어가죠. 휴우~.”

근심이 가득했다. 갑작스런 이상 징후로 급히 귀가한 자식 때문이다. 보통 자식도 아니다. 몸값만 수 십억원대다. 지난 7일 오전 서울 성동구 천호대로 군자차량사업소에서 만난 이영선(47) 서울교통공사 검수팀 과장은 자신을 지하철 전동차의 부모로 비유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20분쯤 2호선 합정역에서 홍대입구역 방향 내선 구간 터널에서 연기가 발생, 약 25분간 지하철 운행이 지연됐다.

“현재까지 나타난 증상으로 봤을 땐 큰 결함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자세한 건 정밀 진단과 시험 운행까지 진행해 봐야 알 수 있습니다.” 1량에 10억원대로 알려진 지하철 사고 전동차의 1차 점검 상태를 전한 이 과장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는 “다행스럽게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가뜩이나 바쁜 출근길에 시민들은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며 “우리가 이 사고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현재 군자차량사업소에서 매일 평균 50여대의 지하철 1,2호선 전동차 점검 업무를 맡고 있다.

이영선 서울교통공사 검수팀 과장이 지난 7일 군자차량사업소에 들어온 지하철 2호선 전동차 내부 점검 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2년 전 구의역 사고 아직도 가슴 아파”

이 과장은 서울메트로(1~4호선)와 도시철도공사(5~8호선)의 통합으로 출범한 서울교통공사가 합병 1주년을 맞아 지난달 수여한 첫 번째 ‘맥가이버상’의 수상자였다. 1985~92년 국내 방영된 맥가이버는 미국의 TV 드라마 시리즈로, 주인공은 물리학이나 화학 지식을 활용해 사건을 해결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서울교통공사는 맥가이버상을 안전 문제에 기술적인 공헌을 한 사원에게 수여한다. 지난해 서울 지하철 1~8호선의 철도 사고 발생 건수는 5건으로, 2016년(12건)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었는데, 여기에 이 과장의 공로가 인정됐다.

때문에 이번 사고에 대한 자책감은 이 과장에겐 어느 때 보다 컸다. 그는 “이쪽 계통의 일이 손에 익고 시간도 지나다 보면 무뎌질 수 있는데 그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고 자책했다. 그는 가슴 아팠던 2년 전 기억을 떠올렸다. 2016년 5월28일 당시 19세였던 김모군은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오작동 신고를 받고 점검에 나섰다가 승강장에 진입하던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숨졌다. “아직도 그날만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거든요. 저에겐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이 과장은 부친의 택시 사업 실패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매년 방학이 되면 아버지와 함께 막노동판에 나가 일해야 했던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이영선 서울교통공사 검수팀 과장이 지난 7일 군자차량사업소의 스마트 상황실 벽에 걸린 모니터를 보면서 2호선 지하철 운행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대입 수능일’엔 긴장 상황 극에 달해

이 과장은 갈수록 자신의 책임감이 무거워진다고 했다. “지하철이 한번 움직이려면 2만개가 넘는 부품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이 과정을 모두 살펴야 해요. 지하철은 1,000만 서울 시민의 ‘발’이기도 하잖아요. 1개량에 많을 땐 200여명이 탑승하기 때문에 10개량이면 산술적으로는 2,000여명이 지하철 1개 라인으로 움직인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는 스마트 상황실 벽에 걸린 모니터를 보면서 2호선 지하철 운행 상황 등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긴장이 극에 달하는 시점을 ‘대입 수능일’로 꼽았다. “머리털이 곤두서죠. 젊은 학생들의 장래가 걸려 있는 날이잖아요. 1분, 1초라도 지하철이 지연되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으니까요.” 매년 수능일 1개월 전부터 이 과장은 비상 상황에 돌입한다.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도 적지 않다고 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가면 꼭 경험해봐야 할 것으로 ‘서울 지하철’을 꼽는다는 말을 들으면 저도 모르게 어깨가 올라갑니다.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고 하니까요.” 서울 지하철은 지난 2013년 11월 런던과 세계 주요 도시의 지하철 현황을 소개한 영국 BBC 방송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바 있다. 하나의 교통카드로 환승과 요금 정산이 가능한 데다, 실시간 도착 정보를 미리 알려주는 행선안내 게시기와 근거리무선통신(와이파이) 등은 차별화 된 서비스로 꼽힌다.

이 과장은 그에게 주어진 지상 과제를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고 했다. “사고엔 예고가 없잖아요. 그래도 우리의 최종 목표는 ‘365일 무사고’ 지하철 운행입니다. 시민들이 1년 내내 편안하고 안전하게 이용하는 그날까지, 우리의 점검은 계속됩니다.” 글ㆍ사진=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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